무비스님
2011.12.17 14:24

육조단경 강의 66 - 무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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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6 강 - 頓漸品- 1

 

 
     八 頓漸品

 
   時에 祖師는 居曹溪寶林하시고 神秀大師는 在荊南玉泉寺하시니 于時에 兩宗이 盛化하야 人皆稱南能北秀라하니 故로 有南北二宗頓漸之分하야 而學者- 莫知宗趣러니 師- 謂衆曰, 法本一宗이로되 人有南北이요 法卽一種이로되 見有遲疾이니 何名頓漸고 法無頓漸이언만 人有利鈍故로 名頓漸이니라

 
   然이나 秀之徒衆이 往往譏南宗祖師하되 不識一字어니 有何所長이리요하면 秀- 曰, 他得無師之智하야 深悟上乘하니 吾不如也며 且吾師五祖- 親傳衣法하심이 豈徒然哉리요 吾恨不能遠去親近하고 虛受國恩하노니 汝等諸人은 母滯於此하고 可往曹溪?決이어다

 
**************************************************

  

      八 頓漸品

 
   돈점품 이라 해서 頓(돈)은 깨달음의 문제를 한꺼번에. 순식간에. 그래서 “몰록 돈”그래요. 사회에서는 잘 안 쓰는 말인데, 절에 오니까 이것을 쓰더라고요. 그런데 “몰록” “몰록”하니까 무슨 말인지 몰라서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단박에. 또는 순식간에. 그렇게 됐더군요.

 
   漸(점)자는 “점점”이라고 하니까요. 점 점 점 점 나무가 자라듯이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냐? 그런 것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이 있고, 아니야 이것은 알면 알고 모르면 모르는 것이지, 점점 되는 것 하고는. 진짜 道(도)하고는 거리가 멀다. 진짜 도는 알면 알고 모르면 모르고, 동쪽으로 알았다가 서쪽이라고 아는데 무슨 점 점 점 점 알아야겠다는 시간적인 것이 거기에 왜 해당 되느냐 이겁니다.

 
   시간 하고는 아무 관계없다 이겁니다. 의심하고 모를 때 까지는 철저히 몰랐고, 아는 것은, 아! 그래 알고 보니까 이것이 동쪽이구나. 이렇게 확실하게 알면 아는 순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지요. 이제는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더 이상 증명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아! 이것이 동쪽이구나. 나는 서쪽인줄 알았는데 동쪽이구나.” 또는 “동쪽인줄 알았는데 서쪽이구나.” 확실하게 알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 공부 끝난 것입니다.

 
   구름이 끼었든지 밤이 되었든지 간에 동쪽을 동쪽으로 알았으니까 동쪽으로 알고 살면 그 뿐인 것입니다. 동쪽으로 알고 살면 그 뿐인 것이지요. 그 다음에는 다른 이유가 아무 것도 없다고요. 집을 돌리고 싶으면 돌리는 것이고 그 때는 알아서 하는 것이지요. “아는데 대해서 맞추어 산다.” 이 말입니다. 그 말이... 집을 돌리고 싶으면 돌리라는 것은 “아는데 맞추어 산다.” 모를 때는 몰랐으니까 그렇게 살았지만, 알았으면 아는데 맞추어 산다. 이겁니다. 그러면 자기 자신이 진짜 부처님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면 그대로 살면 되는 겁니다. 부처로 살면 그 뿐이지요. 그것뿐이에요 불교는...

 
  예를 들어서 아, 내가 서쪽을 동쪽으로 알고, 동쪽을 서쪽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쪽이 분명히 동쪽이다.”라고 알게 되면 모든 것을 거기에 맞추어서 살 거란 말입니다. 만약에 객지에 어두운 밤에 도착해서 객지의 벌판에서 방향을 대충 잡아서 텐트를 쳤는데, 그 이튿날은 알고 보니 아니었다. 그러면 텐트를 돌려 치든지, 집을 지어도 거기에 맞추어서 짓겠지요. 그러면 거기에 방향에 대해서는 아무 문제가 없거든요.

 
  “우리 인간이 본래로 아무 문제없는 부처님이다.”라는 사실에 대해서 정말 철두철미한 확신이 서면 더 이상 문제가 없어요. 이 사람은 부처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당장 다른 것이 안 딸려 오면, 그거는 시간문제입니다. 그거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세월이 가면 저절로 척척척척 맞아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맞게 되어 있다고요. 잠깐 착각 했다가도 금방 돌이킬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방향을 정확하게 알면 무슨 빨래를 넌다든지 뭘 한다든지, 뭘 해도 전부 거기에 맞추어서 하겠지요. 그런 식으로 이해를 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돈과 점은 쉽게 설명 하면 그런 것입니다. 옛날 점적에 있는 것을 가지고 어려운 용어 써 가면서 해봐야 더 어렵기만 하고요.

 
   時(시)에 祖師(조사)는 居曹溪寶林(거조계보림)하시고→ 중국 광주에서 조금 더 가면 소주라는 데가 있고요. 소주에서 조금 더 10~20분쯤 가면 조계산이 있고, 거기 가면 “보림사”라고 써져 있어요. 그 옆에 조계산 보림사에서 멀지 아니한 데는 “丹霞山(단하산)” 이라는 아주 아름다운 산이 있습니다.

 
   테마여행 같은걸 우리가 생각 한다면 육조스님만을 생각하고 간다하면 소주에 가서 광주. 소주. 보림사. 그 옆에 있는 단하산 보고 오면 아주 딱 좋지요. 단하산이 참 아름답습니다. “보림사” 여기는 아무것도 뭐 육조스님이 계셨던 곳. 육조스님에 대한 행적 이라든지 이것이 가서보는데 의미가 있고 그 외에는 산이고 뭐고 크게 뭐 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단하산” 이라는 산은 아주 아름다워서 정말 볼만 합니다. 중국 천하에 계림이 있다고 자랑 하는데 단하산이 있다는 것을 모르면 너희들 큰 코 다친다. 라는 식으로 시를 써 놨어요. 계림 못지않다는 것이지요.

 
   어떤 의미에서 보면 계림보다 더 낫다는 식으로 단하산을 이야기 해놨는데 마침 그 전에 한번 갔을 때는, 안개가 끼었는데 단하산이 안개가 끼니까 아주 더 멋있어요. 거기는 전부 산이 붉어요. 붉을 丹(단)자 거든요. 바위가 암석이 붉어요. 붉은 그 암석에다 어떻게, 어떻게 구멍을 파서는 법당을 만들고, 그 높은데다 절을 짓고... 거기가면 아주 사찰이 盛(성)합니다. 남쪽이 대체로 불교가 성 하지요.

 
   “居曹溪寶林”에 살고 계실 때, 神秀大師(신수대사)는→ 五祖弘忍大師(오조홍인대사)밑에... 처음부터 공부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처음에 “行由品(행유품)” 자기 행적을 이야기할 때, 자기는 오조스님 밑에 가서 살았는데 마침 신수대사 라는 이가 敎授師(교수사)입니다. 오조스님 밑에서 사람들을 전부 가르치는 교수사로서 누가 봐도 오조스님의 법을 이어갈 사람이라고 인식이 된 상황에서 어디서 나타난 떠꺼머리 무식한 노 행자라는 행자가 와 가지고는 오조스님의 법을 밤에 이어서 발우떼를 가지고 멀리 도망을 간 사실이 있었지요.

 
   그렇지만 이 신수스님은 그 당시 워낙 권위가 있고, 덕이 있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많이 받고 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몰락할 그런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대로 신수스님의 법이 전해 내려오고, 또 그 큰 회상이 그대로 형성이 되어 있고 그랬어요. 육조스님은 오랫동안 15년인가요? 사냥꾼들 틈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숨어 살았지요. 그럴 때 신수스님은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지도를 하고 살았던 시절입니다.

 
   神秀大師(신수대사)는 在荊南玉泉寺(재형남옥천사)하시니→ 형남 옥천사라는 절에 있었는데, 于時(우시)에→ 그 때에 兩宗(양종)이 盛化(성화)하야→ 南頓北漸(남돈북점)이라 해서 남쪽에는 육조 혜능스님이 한참 교화를 크게 일으키고, 북쪽에는 신수스님이 그대로 계시면서 역시 신수의 종파를 크게 일으켰다. 盛化. 아주 번성했다 이것이지요.

 
   人皆稱南能北秀(인개칭남능북수)라→ 남쪽에는 혜능. 북쪽에는 신수. 南能北秀라. 이렇게 일컫게 됐는데 故(고)로 有南北二宗頓漸之分(유남북이종돈점지분)하야→ 그랬기 때문에 그걸로 인해서 남북에 두 宗派(종파). 頓宗(돈종)과 漸宗(점종)이지요. 그것이 나뉘어져서

 
   而學者(이학자)→ 여기서 학자라는 것은 오늘날의 학자가 아니고, 수행하는 사람. 공부하는 사람을 흔히 이렇게 일컫습니다. 莫知宗趣(막지종취)라→ 공부하는 사람들이 宗趣를 알지 못하더라. 도대체 어디가 옳은 사상인가 어디가 우수한 사상인가를 도대체 알 수가 없더라. 그래서

 
   師 謂衆曰(사 위중왈)→ 대중에게 일러 말하기를 法本一宗(법본일종)라→ 법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하나의 宗旨(종지)라. 그런데 人有南北(인유남북)이요→ 사람에게는 남과 북이 있다. 法卽一種(법즉일종)이로되→ 법은 곧 하나의 종자이지만 見有遲疾(견유지질)이라→ 소견에 있어서는 所見(소견). 개인에 따라서는 소견은 더딤도 있고 빠름도 있다 이겁니다. 그렇지요.

 
   우리가 육조단경 하나를 두고라도, 육조단경에 대한 뜻을 제대로 얼른 캐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말만 들어도 도대체 아삼삼하게 느껴지고, 도대체 열줄 중에 한줄 알까말까,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저 보다 열개 정도 앞서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遲疾이 있는 겁니다. 빠르고 더딤이 있는 것이지요 소견은...

 
   何名頓漸(하명돈점)고→ 무엇을 이름 해서 돈이니. 점이니 하느냐? 法無頓漸(법무돈점)이언만→ 진리에 있어서는 돈과 점이 있을 수가 없지요.

人有利鈍故(인유이둔고)로→ 사람에게는 남도 있고 북도 있고 또, 영리한 사람. 둔한 사람이 있지요. 사람은 본래 마음자리 하나는 똑 같다 하더라도, 마음을 쓰고 펴고 활용하는데 있어서는 천차만별 이지요.

 
   정말 둔한 사람도 있고, 너무 답답할 정도로 둔한 사람들이 있고, 아주 총명한. 10배 20배 총명한 사람도 있고. 10배 20배 총명해도 남보다 또 어떤데 둔한 면에는 고양이 두 마리라고 문구멍을 두 개 뚫어놔야 되는 그런 사람도 있는 겁니다. 고양이 두 마리라고 나가는 구멍을 두 개 뚫어놓은 사람이 있다니까요. 그런데 천하의 천재입니다. 그러니 참 재미있고 연구꺼리가 많은 것이 인간 이예요. 어떤 분야보다도 사람의 문제가 제일 아주 연구꺼리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부처님은 사실은 인간문제 연구가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연구해 끝내니까 다른 사람도 다 끝나더라는 겁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연구가 끝나면, 인간은 거의 같으니까요. 똑 같으니까요. 그러니까 다른 인간도 연구가 다 끝났더라는 겁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나아가 가서 알 필요가 없더라는 겁니다. 그것을 사람들의 마음을 다 안다 그랬어요. “온갖 한량없는 중생들의 마음을 내가 다 안다.” 이래 버렸습니다.

 
   경전에 그런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그 뭐 다 알지요 빤하지요 뭐..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 사람에게 있어서는 영리하고 둔한 사람이 있는 까닭으로, 名頓漸(명돈점)이니라→ 이름을 頓이라 漸이라 한다.

 
   然(연)이나→ 그러나 秀之徒衆(수지도중)이→ 신수스님의 徒衆들. 그 제자들이 往往譏南宗祖師(왕왕기남종조사)하되→ 譏는 놀린다 이겁니다. 비웃고 놀리는 것을, 기롱할 기자인데, 기롱한다는 것은 아주 비웃고 놀리는 것을 “譏” 라고 합니다. “南宗祖師”를 놀리되 不識一字(불식일자)어니→ 아주 무식한 육조 혜능.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고 중 된 사람이 뭘 안다고, 이런 이를 不識一字라. 글자 하나도 몰라서 게송도 동자보고. 다른 사람에게 써 달라고 하고, 그 뭐 어린아이에게 놀림이나 당한 그런 사람이,

 
   有何所長(유하소장)이리요→ 무슨 長技(장기)가 있겠는가? 지가 잘 해본들 뭐 잘하는 것이 있겠느냐? 신수스님은 아주 뛰어난 분이거든요. 敎授師(교수사). 수백 명 대중을 가르친 분이니까요. 秀曰(수왈)→ (이 육조단경은 육조스님 제자가 편집한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감안하고 들어야 되겠지요.) 신수스님은 말하기를

 
   他得無師之智(타득무사지지)하야→ 그 분은 스승 없는 지혜를 얻었다. 이것이 本智(본지)예요. 본래 가지고 있는 지혜가 “無師智”입니다. 스승으로부터 받은 지혜는 스승이 없으면 영험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불교공부 라는 것은, “無師智” 본래 各自(각자)가 가지고 있는 지혜를 찾도록 일깨워 주는 것이지, 무슨 내가 경전을 아나, 아니면 경전이나 부처님이나 어떤 선지식이 특별한 지식을 주입시켜 주고, 특별한 정보를 주고, 아주 기상천외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불교공부 라는 것은 그렇습니다. 사회교육도 그래야 옳지요 사실은... 본래 가지고 있는 재능을 일깨워 주는 역할만 해야지, 무슨 정보 계속 제공하고 새로운 지식 제공해서 그것 잔뜩 쌓아가지고 있으면, 그것은 기계이고 사전이지 그거 뭐 인간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교육이 그런 것이 아니지요. 본래 사람들이 무슨 天才(천재)가 아닙니다. 저는 佛才(불재)라고 합니다. 불재. 부처의 재능. 부처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인격인데, 그것을 잘 개발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이고 불교공부지요.

 
   불교공부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철두철미해야 불교공부는 그래요. 부처님이다. 경전이다. 무슨 어떤 스승이다 해서 특별한 지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無師智” 스승이 필요 없는. 본래 가지고 있는 지혜를 얻도록 해주고 일깨워 주는 것이지요. 佛性(불성)을 얻도록 해주는 것이지, 찾는 것은 자신이 찾는 것입니다. 우리 보통 일반 교육도 그런 방향으로 자꾸 잡아나가야 할 텐데...

 
   자꾸 그냥 지식만 그렇게 많이 쌓아서, 그래 가지고는 뒤떨어지는 것이지요. 남한테 자꾸 뒤떨어지는 것이지요. 교육열이 세계에서 제일이라고 해도, 우리나라 서울대학이 세계의 오백대 대학에도 안 든다 하던가요? 천개 대학에도 안 든다 하던가요? 그러니까 본래 가지고 있는 사람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워 주는 거기에 주안점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불교는 말할 것도 없이 “無師智”를 얻는 것입니다.

深悟上乘(심오상승)이라→ 上乘. 최상승을 깊이 깨달았다. 그 분은... 吾不如也(오불여야)라→ 나는 그 분만 같지 못하다. 신수스님이 그렇게 이야기 했어요.

且吾師五祖(차오사오조)가→ 또 우리스승 5조.

親傳衣法(친전의법)이라→ 가사하고 법을 친히 전했다.

豈徒然哉(기도연재)리요→ 어찌. 한갓. 그냥 일자무식해서 어쩌다가 심심풀이로. 저절로 그렇게 됐겠는가? 그런 말입니다.

 
   “徒然哉” 이 “徒然”이란 말은 참 좋은 말입니다. “徒然” 한갓 도자. 그러할 연자. “徒然” 우리말로 정확하게 표현이 안 됩니다. “徒步(도보)”할 때 이 도자를 쓰지요. 그냥 “걷기만 한다.” 이 뜻이거든요. 그냥 어떤 인위적이거나 조작이거나 억지거나 이런 것이 전혀 없는 것이지요. 제가 제일 많이 산책이 “徒然草(도연초)”라는 일본 스님이 5~600백 년 전에 썼는데, 아주 조그마합니다. 요즘 조금 큰 책이 나왔더군요. 그 책을 제가 제일 많이 샀어요. 아마 한 50권은 샀을 것입니다. 근래에 나온 책 말고, 그 전에 나온 책을, 파란 문고판 한 50권정도...

 
   어쨌든 서점에만 가면 무조건 그 책은 한두 권씩 사 왔으니까요. 아무리 있어도 사고... 그래서 남도 많이 주고 그랬습니다. 그것이 한 20년쯤 전인가 30년쯤 전인가 그래요. 그 책이름이 마침 “徒然草(도연초)”입니다. 못 읽어본 분들은 사서 한번 읽어보십시오. 스님이 쓴 책인데 일본에서는 교과서에도 실리는 글이라는데요. 이것을 연구한 분들도 많아요. 아주 간단 간단한데 우리 성격에 너무 잘 맞대요 그 때 읽을 때는 하도 좋아서 새카맣게 노트해 가면서 읽었는데 너무 쉽고 그래요. 거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할까 말까 하는 일은 대체적으로 안 하는 것이 좋다.” 얼마나 멋집니까? 저는 그거 기억나서 그렇게 많이 했습니다. 망설여질 때는 꼭 그 생각이 납니다. ‘아 할까 말까 망설여지는 일은 대체로 안 하는 것이 좋다.’고 했으니 아이고 안 해야지, 안 하고 나니 그것이 진짜 좋아요 했으면 안 좋을 뻔 했어요. 자기 소신이 없고 확신이 없는 일은 하면 안 되지요.

 
   어디 가는 일도, 법회에 오는 일도 그래요. 확신을 가지고 오며는 소득이 있고, 갈까 말까 가기도 싫은데 아이구 자꾸 전화 오니까 할 수 없이 간다. 이렇게 해서 올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 오는 것 보다는 낫지마는, 그래도 이런 데는 안 오는 것 보다는 낫지만 대개 다른 일은 안 가는 것이 낫다고요. 괜히 여러 가지 경제적으로도 손해보고, 잘못하면 망신하고, 그런 일들이 세상에 아주 허다합니다.

 
   그리고 “출가” 라는 것은 뭐냐? 그러면서 출가는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이겁니다. 복잡하게 살지 마라. 일을 많이 하고 그렇게... 그것이 “출가” 아니다. 단순하게 살려고 출가 해놓고 뭘 또 그렇게 복잡하게 사느냐? 할 말이 없어요. 숨이 팍팍 막혀요. 아주 그 소리... 그런 구절에 탄복을 하겠더라고요 옛날에... 한 30년 전에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 된 것이 아마 한 30년쯤 됐을 겁니다. 20년인가 30년인가 하여튼 그 무렵쯤 됐는데요. 그 후에 또 다른 판본으로 나온 것을 제가 봤습니다.

 
   옛날 일본에 어떤 선승이 이거 “도연” 그랬어요. 자기가 혼자 공부하고 있다가 너무 심심해서, 너무 심심해서 정말 공부도 하기 싫고, 책도 보기 싫고, 너무 심심해서 그냥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 그냥 스쳐가는 생각을 긁적여 놓은 것. 그냥. 정말 그냥 장난삼아 낙서처럼 긁적여놓은 글이라는 말입니다. 이 “徒然草(도연초)”라는 것이요.


   너무 할 일이 없어서, 너무 심심해서 장난삼아 긁적거려 놓은 글이 “도연”이라는 말입니다. 심심해서. 아무할 일이 없어서. 우리말로는 그런 표현입니다. 육조스님 이야기가 너무 딴 데로 많이 나갔는데 그 책에 또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는.

 
   어떤 스님은 토란을 하도 좋아해서, 일본 사람들 토란을 많이 먹잖아요. 토란을 하도 좋아해서는, 집에서 물려받은 유산을 아예 토란집 에다 다 갖다 줘 놓고, 지금 시세로 치면 아마 최소한도 몇 억은 되겠지요. 아예 다 갖다 줘 놓고, 평생 내가 토란 먹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는 그런 괴짜도 있었고요.

 
   또 어떤 스님은 항상 엉덩이를 들고 앉아 있는데, 양발만 중간쯤 서 있는 겁니다. 왜 그렇게 있느냐? 하니까 아~ 인생이 무상한데 어떻게 주저앉아 있을 수 있느냐? “어떻게 주저앉아 있을 수 있느냐?” 이겁니다. 편안하게 주저앉아 있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자기는... 그래 주춤하게 평생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크게 도를 이룬 그런 이야기도 있고요.

 
   너무 그렇게 퍼지게 앉지 마세요. 퍼지게 앉으면 뭔가 사람이 그렇잖아요? 나태해 보이고 마음이 풀어진 것 같고... 참 그런 것들도 정말 뭔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더라고요. 그런 말 한 마디가... 그냥 무심심하게 항상 이렇게 앉아 있다는 거예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吾恨不能遠去親近(오한불능원거친근)하고→ 나는 좀 한이 되는 것이 능히 저 멀리 가서 친근하지 못하고,

虛受國恩(허수국은)이라→ 헛되게 나라의 은혜만 입은 것 을 한탄한다. 내가 육조스님한테 가서 멀리라도 가서 친견하고 법을 배워야 하는데, 괜히 존경만 받고 이렇게 천하에 “신수스님”하면 명성만 높고 존경만 받는 것. 이것을 나는 사실 한탄한다. ←이것이 육조스님 측에서 써 놓은 겁니다.

 
  이 “國恩”이라고 하는 것이요. 앞에서 부처님 이야기하고, 대혜 종고스님 이야기도하고 그랬는데, 역대 왕들로부터 제일 존경을 많이 받은 이는 이 신수스님입니다. 4대 왕의 국사를 지냈습니다. 4대 왕의 국사를 지냈어요  이분이... 측천무후 때부터요. 측천무후가 여걸로서... 불심은 대단 했어요 그 분이... 역사적으로는 그 분을 곱게 그리지는 않지만, 불심은 아주 불교에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측천무후가요.

 
   측천무후가 이 신수스님을 국사로 모셨습니다. 그 후 4조까지. 4조의 국사를 지낸 겁니다. 왕이4대. 그러니까 나이가 120까지 살았던가 그래요. 이분이. 신수스님이... 복도 많고... 그러니까 조정이 4대에 걸쳐 내려갈 때 까지 국사를 지냈지요. 왕이 네 번 바뀔 때 까지 국사를 지낸 겁니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지요. 한 대에 국사 지내기도 어렵잖아요.

 
   국사를 지내도 대개 왕이 바뀌면 바꾸거든요. 그런데 4대에 내려갈 때까지 국사를 지냈으니 이것은 신수스님이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그래 “虛受國恩(허수국은)”이라는 말이 그 말입니다. 이것은 육조스님 쪽에서 다 아는 일이니까요. 너무나도 역사에 기록도 분명하고 대단한 분이었으니까요.

 
   그 당시로는 육조스님은 인지도로 보면 명함도 못내요. 인지도로 보면 신수스님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육조스님은 제자들이 훌륭한 제자가 그래도 소수이지만, 저 앞에서 우리가 봤듯이 두 분이 계셨고, 그 외에도 다른 이들이 있었지요? 그 밑에 또 내려가면서 3세. 4세 내려가면서 크게 번창하기 시작하지요. 육조스님의 제자들은... 그리고 이쪽으로는 쭈그러들기 시작하고요. 그렇게 됐습니다.

 
   虛受國恩(허수국은)하노니 汝等諸人(여등제인)은→ 너희들 모든 사람은 母滯於此(무체어차)하고→ 여기에 “滯”해 있지 말고, 母= 없을 무자예요. 어미 모 자가 아니고, 이렇게 쓰면 없을 무자라고 합니다. 여기에 막혀 있지 말고, 可往曹溪?決(가왕조계참결)이로다→ 조계산에 가서 참배해서 해결하기를 바란다. 그런 뜻입니다. 가히 조계산에 육조스님한테 가서 참배하고 결단을 풀도록. 모든 문제를 풀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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