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2011.12.17 14:25

육조단경 강의 67 - 무비스님

조회 수 569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제 67 강

 
   “사람이 부처님이다”

無比큰스님의 법화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입니다.

 

   오늘 육조단경 들어가기 전에 나눠드린 책 이야기 조금 할까요?

무슨 책인지 알고 가서 읽어야 되니까요.

그 책은 제가 법화경 강의를 불교신문에 연재를 하고 있던 것을 보충할 것 더 해서 며칠 전에 책으로 나왔습니다.

 
   법화경을 아주 소량만 간추려서 싣고, 거기에 대해서 제가 이해한 대로 거기다 강의를 사이사이에 좀 달고 그랬어요.

법화경을 해석한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수 천. 수만이 됩니다.

근래에 한글로 되어서 읽을 수 있는 것만 하더라도 수십 종이 되고요.

그런데 다른 해석에서 읽지 못하던 해석도 틀림없이 있을 겁니다.

 
   제 나름대로 법화경을 보는, 제 안목으로 법화경을 이야기한 것이고,

그런 점이 법화경 강의의 특색이고,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 특색은 단순하게 한 개인의 강의에 대한 특징으로 이야기하고 말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보면 상당이 아주 충격적인 해석으로...

 
   법화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 충격적인 해석으로 받아 들일만한 내용이 있습니다. 법화경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의 많은 경전 중에서 법화경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최후에 부처님이 일생동안 설법 하신 것을 “총정리해서 들려준 내용이다.” “결론이다.” “평생 설법의 결론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내용이 법화경에도 있습니다.

 
   과거 부처님도 평생 교화를 하시다가 열반을 앞두고 설하신 경전이

“묘법연화경이다.” 그랬어요. “나도 또한 이제 열반을 앞두고 최후로 설하게 될 경전이 법화경이다.” 그렇게 “과거부처님. 당신 현재부처님. 미래부처님도 역시 그럴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법화경이 모든 부처님이 최후에 유언처럼 정말 비장해 두었던, 가슴속에 간직해 두었던, 아끼고 아끼던 가르침이라는 내용을 수차에 걸쳐서 합니다.

 
  敎菩薩法(교보살법). 佛所護念(불소호렴). 이요지장. “교보살법”은 불교공부를 해서 최고 수준에 달한 사람들. 그들만을 위한 가르침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교보살법” 이라는 말은 그런 뜻입니다.

또 “불소호렴”이라. 부처님이 늘 가슴속에 간직해 두고, 아끼던 이야기를 이제야 비로소 한다. 그런 식으로 되어있습니다.

 
   그 표현을 가지고 보면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가 법화경에 실려 있는가를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 중요한가? 이것을 제 나름대로 거기다 밝혔는데요. 법화경의 한 3분의1 이상 내용이. 어쩌면 거의 한 반에 가까운 량의 내용이 授記(수기) 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언제의 부처님이다. 또 어느 나라에서 무슨 이름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그리고 또 그 正法(정법)은 몇 년간 갈 것이고, 또 像法(상법)은 몇 년간 갈 것이다.

 
   그 정법. 상법 연한에 대한 문제는 석가모니부처님에 대해서도 그래요. “正法(정법)” 하면 부처님 당시에 똑같은 법이 몇 년까지 지속이 될 것인가?

그것이 지속되는 年限(연한)을 “正法時代(정법시대)”이래요.

그 다음에 “像法時代(상법시대)” 하면, 거기에서는 비슷할 상자라고 그래요. 사람 인 변에 코끼리 상 쓰는 형상 상자지요? 닮았다 이것이지요. 정법은 아니지만 정법과 아주 유사한 법이 또 얼마를 간다는 그런 연한까지도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수기를 주는데, 그렇게 구체적으로 밝히는 경우도 있고 밝히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밝혔든 안 밝혔든, “사람이 부처님이다”하는 이야기가 거의 3분의1 이상, 반에 가까운 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법화경입니다.

우리 보통 사람들의 생애에 있어서 최후에 말하자면, 전부 자기가 가졌던 재산들을 자식들에게 상속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요. 상속하는 이야기입니다.


    “授記(수기)를 한다.”고 하는 말은 내 재산 네가 갖고, 어디에 있는 어떤 논과 어떤 산. 어떤 토지는 누가 갖고, 그렇게 해서 이것은 법적으로 보증을 받아 놓는 그런 말하자면 보증하는, 성불한다는 것을 보증하는 이야기인데요. 대개 “앞으로 성불할 것이다.”라고 이렇게 옛날 사람들은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화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앞으로 성불할 것이다.”고 하는 그 말은 너무 충격적인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근기 따라서 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 표현을 했지, 어떤 곳에는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라. 그랬습니다.

제가 법화경에서 아주 좋아하는 대목중의 하나가, 망상이 부글부글 끓는데도 부처님 앞에 가서 절 한번 한다든지, 손을 한 번 번쩍 든다던지, 아니면 “나무 불” 이렇게 한 마디 염불한다던지 하는 그 인연으로 이미 “성불을 했다.”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개이성불도 라.” 이미 불도를 이뤄 마쳤다 그랬어요. 경전에...

그런 말의 속뜻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은 본래로 부처다.” 하는 뜻입니다. “본래로 부처다.”라고 하는 것을 일일이 들어내기가 뭣 하니까 “앞으로 성불할 것이다.” 이렇게 되어 있는 대목들이 많이 있지요.

그런 것들이 해석상의 차이인데, 저는 아주 시종일관 거침없이 그대로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다.” 더 이상 닦을 것도 없고, 더 이상 수행할 것도 없고, 더 이상 다듬고 장엄할 것도 없다. “현재 상태 그대로 부처님이다.”라는 이야기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법화경은 이야기되었다고 저 나름대로는 아주 자신하고 있고요. 그것이 그 동안의 해석과 다른 점입니다. 일본의 아주 유수한 수행자들이 그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는데, 여러 책을 봐도 저처럼 그렇게 다 들어내서 이야기한 대목이 잘 없더라고요.

그런데 여기서는 분명히 그렇게 했고, 제가 본 법화경은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을 우리불교에서는 “제바달다”라고 그러거든요. 부처님을 살해 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던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우리불교 교단을 다 파괴해 버리려고 하는, 일도 여러 번 시도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하여튼 불교에서는 제일 나쁜 사람으로 되어 있는데, 법화경 안에 “제바달다 품”이라는 데는 제바달다를 수기하거든요.

 
   부처님으로 수기하는 거예요. 심지어 부처님의 스승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나의 스승”이라고 표현해 놨거든요.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을 만약에 우리가 제대로 이해한다면, 제바달다 같은 악독한 사람도 그대로 “부처님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 이상 달리 해석할 길이 없습니다. 더 이상은...

 
   그 사람이 언제 참회하고. 수많은 세월을 참회하고 수행을 철저히 한 뒤에 그때야 “나의 스승”이 될 것이고 “우리 부처님.”이 될 것이다. 그런 이야기 없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랬기 때문에 가장 핵심이 되는 이야기를 책 뒷면에다가... 우리 인간의 몸은 병고로 시달리고, 마음에는 온갖 탐 진 치뿐만 아니라 8만4천 번뇌가. 남을 헐뜯고 미워하고 인간의 좋지 아니한 번뇌 망상이 잔뜩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부처님이다.

“그 모습 그대로 부처님이다.”라는 사실에 눈을 떠야 된다는 것입니다.

 
   조사스님들의 말씀을 가만히 들어 보면, 거의가 사실 알고 보면 그래요.

“無修證佛(무수증불) 이라.” “無次諸佛(무차제불) 이라” 점 점 점 점 닦아서 된 부처는 이 세상에 없다. 이렇게 표현 하고 있고, 닦아서 증득한 부처는 이 세상에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 조사스님들의 법문이 많습니다.

어록을 읽어보면 그렇습니다.

 
   여기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것이 “頓漸品(돈점품)”이고, 또 “頓”이라는 것이 “한꺼번에”라는 뜻인데, “순식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순식간에 견성하고 순식간에 부처가 된다고 하는 말은 무슨 뜻이냐? 이겁니다. 본래 부처라는 뜻밖엔 달리 다른 해석이 없습니다.

 
   본래 부처라는 사실을 아는 것. 그것을 아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거든요. 전번에 방향을 우리가 착각을 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동쪽을 서쪽으로 알고 서쪽을 동쪽으로 알고 있다가, 어느 순간 그것을 정확하게 알게 됐으면 그러면 끝이라 이것이지요. 그것을 아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지요.

알고 나서 차츰차츰 그것이 이해가 되어서, 며칠 후에야 비로소 그것을 서쪽을 서쪽으로 인정하고, 동쪽을 동쪽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 이쪽이 동쪽이었구나!’ 그냥 느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지요. 그것이 頓입니다.

 
   “한꺼번에 된다.”는 몰록 돈 자. 그것은 수행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깨달으면 되는 겁니다. 그냥 확실하게 알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수행한다는 것은 뭐냐? 뼈 빠지게 참선하고 고행하는 것은 뭐냐? 그런 사실을 알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온갖 모순과 병고와 번뇌 망상이 있는 그대로 부처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요. 그것을 아는 것이 그렇게 또 힘든가 봐요. 쉬운 사람은 그냥...

 
   육조스님 같은 이들은 정말 불교가 뭔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이, 말 한마디 듣고는 그냥 알아 버리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몇 생을 공부를 해도 그것이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 있는 것이지요. 뼈 빠지게 참선해야 되는 겁니다 그거는... 그거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참선해서 아는 것은 아닌데 그 방법이 그래도 제일 좋다고 하니까 하는 것이지요. 그것을 아는데 있어서 그 방법이 제일 좋다고 하니까...

 
   그래서 그런 점들이 법화경의 가장 중요한 정신인데, 그래서 제가 제목을 “사람이 부처님이다.” “사람”하면 온갖 병고와 모순과, 사람 같지 않는 사람도 많지요. 그래도 사람이지요. 사람 같지 않는 사람이라도 사람이니까요.

사람 같지 않는 사람으로도 그대로 부처님이다. 이겁니다.

사람이라는 데는 이유 없습니다. “이러이러한 사람이라야 부처님이다.” 하는 이런 이유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됐든 무조건 사람이면 부처님이다. 이겁니다.

 
  이것을 읽어서 제대로 이해를 하면, 아주 한 순간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내용이고, 그리고 또 사이사이에 제가 주장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 어떤 입장에서 보더라도 부처님이 말씀해서가 아니라, 어떤 입장에서 보더라도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모두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겨야 된다.” 이렇게 이야기해 놨습니다.

 
   모두 받들어 섬기면 그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고 세상이 모두 행복하다. 세상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정신이. 이 사상이 빨리 퍼져서 부처님한테 미사일을 들이댈 일도 없는 것이고, 총을 쏠 일도 없는 것이고, 부처님에게 테러할 일도 없는 것이고, 그러면 결국은. 정말 부처님으로 이해했다면 부처님한테 사기 칠 일도 없을 것 아니냐? 사람을 억울하게 하지도 않을 것 아니냐? 그러면 행복하고 평화로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겁니다.

 

   정말 제대로 행복하고 평화로울 수 있는 하나의 열쇠라는 생각에서 제가 그 얘기를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서문에서도 쓰고, 마지막 결론에서도 쓰고, 사이사이에 잊어버릴까봐 계속... 그럼 사람이 부처님이라면 어쩌자는 말이냐? 우리가 모두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겨야 됩니다. 서로서로...

 
   그렇게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겼을 때, 첫째 가정의 모든 문제가 해결 되고, 인간과 인간관계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 되고, 사람의 불행이라는 것은 대부분 사람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다른 것 아니거든요.

거의 다 사람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의 존귀함을 정말 제대로 깨닫지를 못하고 무시함으로서 불행이 거기서부터 싹트는 것이지요.

사람의 불행은 대개 그래서 옵니다.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들을 함으로서 행복하게 살자는 것. 인간의 존귀함을 어떻게 하더라도 우리가 깨닫자고 하는 것.

 
   그래서 어떤 사형수의 詩(시)도 앞부분에다 제가 소개해 놨어요. 어떤 사형수가 죽을 날을 며칠 앞두고, 자기가 갇혀있는 방 안을 가만히 보니까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겁니다. 그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을 보고서 얼마나 부러운지 생명의 소중함을 거기서 깨닫고 ‘아~ 내가 저 벌레가 되어서라도 이 생명을 연장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아주 진실입니다.

정말 며칠 후에 죽는다고 했을 때 그 절실함이라는 것은 이루 말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는 전혀 모르니까 지금 아주 태평하게 살지만, 며칠 후에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벌레가 되어서라도 사는 것이 낫지요. 백 번 낫지요. 산다는 것이 백 번 나은 겁니다.

죄인이 되어서 사형을 언도 받아 놓으니까 자기가 눈을 기증을 해도 누가 받아가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 시도 써 놨다고요.

그 나쁜 사람의 눈을 못 쓰겠다는 겁니다. 내가 차라리 봉사로 살았으면 살았지 나쁜 놈 눈을 떼어서 세상 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지요.

기증을 해도 아무도 안 받아간답니다. 그런 이야기를 시로 그 사람이 써 놓아서 소개를 했는데요.

 
   어쨌든 제가 그 글을 읽고 너무 감동해서 아! 사람 산다는 것이 참 소중하고 존귀하고 무엇보다도 제일 값진 일이구나!

사람의 삶에 대한 그 실상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을 우리가 서로 소중하게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나아가서 받들어 섬기는 차원으로 나아간다면, 한 가정이 행복하고 이웃이 행복하고 세상이 행복하고, 그래서 사람 죽이는 무기들 다 걷어치우고는 세월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기대감에서...

참 꿈 한번 좋지요? 어쨌든...

 
  그런 큰 기대감에서 자꾸 그렇게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자.” 또 부처님이기 때문에... 부처님이 보니까 어떤 의미에서든지 인간은 존귀한 부처님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밖에 갈 수 밖에 없지 않느냐? 하는 뜻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 그것이 행복운동. “평화운동 선언서”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 책이...

 
   그런 것을 주로 많이 담았고, 그러려면 철저히 사람이 부처님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런 것을 드러내는 데는 법화경이상 가는 것이 없어요. 선사스님들의 선어록도 간혹 참고를 하고 인용도 하고 선시 같은 것도 인용을 하고, 그러면서 확고하게 인식시킨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많이 읽어서 그 사상이. 특히 선생님들의 몸에 푹 베어서 아이들 한사람. 한사람을 아이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공부 못한다고 윽박지르지 말고 “아~ 이 부처님은 어찌 공부를 이렇게 하실까?” “아이고 우리 부처님은 숙제도 어찌 이렇게 잘 해올까?”←이렇게 이런 마음으로... 아 말로 이렇게 해보세요.

 말로 이렇게 해보면 자기한테 훨씬 그 믿음이 더 깊어집니다.

 
   “말”이란 것이 무서워요. “말의 위력”이란 것이... 농담으로라도 말을 그렇게 하면요? 농담 한 마디에 가슴이 바르르 떨리는 사람도 많아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겠지요? 그렇듯이 “아이고, 우리 부처님은 어찌 숙제를 이렇게 해왔을까?”하고 그런 식으로 하면 그것이 하나의 정말 眞言(진언)입니다. 그거야말로 정말 좋은 진언이라고요. 정말 그것은 살아있는 진언입니다.

 
   그래 제가 천수경 진언 다 해석 했잖아요. 사실 진언도. 행동도 뜻이 있는데 말에 왜 뜻이 없겠어요? 행동도 다 뜻이 있습니다.

이렇게 손 한 번 흔드는 것도 다 뜻이 있는데, 말에 왜 뜻이 없겠습니까?

어떤 말도 전부 뜻이  있습니다. 그것을 몰라서 그렇지...

표현이 사실 뜻이 다 있습니다.

 
   뜻이 있는, 그런 정말 좋은 뜻을 가진 그 진언은 그것이 효과가 있다니까요. 아주 효과가 있습니다.

제가 행자들 교육 하는데 가면, “出家眞言(출가진언)이다.” 해서 제가 만들어낸 진언. 지금 만들어도 잘못 될 것 하나도 없어요.

옛날 사람들만 진언 만듭니까? 그래서 “출가진언”은 뭐냐?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우파니사타니 있지요? 거기에 있는 글을 제가 다시 변형을 시켜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출가한 사람이 여기저기 걸려서, 아이고 어떤 사람들은 “은사 출가를 못했다.”고...

“집에서는 출가했는데 은사 출가를 못했다.”고... 은사에 또 꼭 매어가지고 옴짝달싹 못하는 겁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우려고 출가했으면 좀 자유롭게 살자 이것이지요.

"쾅"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당당하게. 그렇게 좀 “당당하게 살라.” 이겁니다. 이것저것 눈치 봐 가면서 주저주저 하고 그렇게 살지 말라. 그런 등등을...

 
   이것이 진짜 “출가진언”이다. 외우라고 했습니다. 그런 진언이 훨씬 더... “나모라다나다라” 보다 훨씬 효과 있지요 사실... 훨씬 효과 있다고요.

그 책 여러 번 읽어서 몸에 베이게 하고, 마음에서 우러나게 해서 좀 우리들부터라도 스스로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고, 또 따라서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이라고 생각해서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운동이 자꾸 확산이 되면, 비방하는 이야기. 사람 죽이는 무기를 돈을 많이 들여서...

 
   모든 산업사회 되어서 우리 삶에 기여한 바는 있지만, 거의 사람 죽이는 무기 만드는데다가 거의 다 쓰고 있으니... 선진국이라는 나라가 더욱 더 그러니 참 큰 문제입니다. 그런 데에 쓰는 힘을 아끼고, 그 경비로, 사람 사는데 좀 더 편리하고 편안하게 여러 사람이 다 같이 누리면서 살 수 있고, 물질 때문에 억울함을 받지 않는 그런 세상으로 만들면 참...

요순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어쨌든 그런 세상이 좀 됐으면 좋겠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4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80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5376
93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79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4852
92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78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4921
91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77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4727
90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76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5454
89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75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4647
88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74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4487
87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73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4410
86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72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4884
85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71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4897
84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70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4949
83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69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4365
82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68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4760
»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67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5697
80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66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4978
79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65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3822
78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64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3756
77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63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4489
76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62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4406
75 무비스님 육조단경 강의 61 - 무비스님 短長中庸 2011.12.17 433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Next
/ 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