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2011.12.17 14:29

육조단경 강의 70 - 무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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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0 강 - 頓漸品- 4

 

 
   僧志徹은 江西人이라 本性은 張, 名은 行昌인데 少任俠이러니 自南北分化로 二宗主는 雖亡彼我나 徒侶競起愛憎이라 時에 北宗門人이 自立秀師하야 爲第六祖 忌祖師傳衣- 爲天下所聞하야 乃囑行昌하야 來刺於師케하니

 
   師- 心通으로 豫知其事하시고 師置金十兩於座間이러니 時夜暮에 行昌이 入祖室하야 將欲加害할새 師- 舒頸就之하시니 行昌이 揮刀者三이로되 悉無所損이라 師曰, 正劍은 不邪요 邪劍은 不正이니라 只負汝金이요 不負汝命하노라 行昌이 驚?라가 久而方蘇하야 求哀悔過하고 卽願出家어늘 師遂與金言하시되 汝且去하라 恐徒衆이 ?害於汝일가하노니 汝可他日에 易形而來하면 吾當攝受하리라

 
   行昌이 ?旨夜遁하야 後에 投僧出家하야 具戒精進이라가 一日은 憶師之言하고 遠來禮覲이어늘 師曰, 吾久念汝러니 汝來何晩고 曰, 昨蒙和尙捨罪하야 今雖出家苦行이나 終難報德이오니 其惟傳法度生乎리이다 弟子- 常覽涅槃經하오나 未曉常無常義하오니 乞 和尙은 慈悲로 略爲解說하소서

 

  師曰無常者는 卽佛性也며 有常者는 卽一切善惡諸法分別心也니라 曰, 和尙所說이 大違經文이로소이다 師曰, 吾- 傳佛心印이어늘 安敢違於佛經이리요 曰, 經說은 佛性이 是常이어늘 和尙은 却言無常하시고 善惡諸法과 乃至菩提心이 皆是無常이어늘 和尙은 却言是常이라하시니 此卽相違라 令學人으로 轉加疑惑이니이다 師曰, 涅槃經을 吾昔에 聽 尼無盡藏의 讀誦一?하고 便爲講說하되 無一字一義도 不合經文이었으며 乃至爲汝하야도 終無二說이니라

 
*********************************************************

 
   육조단경 돈점품 안에도 스님들에 대한 인연을 근거로 해서 돈과 점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禪家(선가)에서 돈이다. 점이다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육조스님 당시 때부터 지금까지 서로의 수행에 대한 견해에 따라서 이야기가 분분 하지요. 오늘 공부할 대목은 지철이라는 스님 이야기를 하면서 돈과 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僧志徹(승지철)은 江西人(강서인)이라→ 승려 지철이라는 이는 강서 사람인데, 本性(본성)은 張(장)이고 名(명)은 行昌(행창)이었다→ 장 행창이라는 사람이 등장을 합니다. 少任俠(소임협)이러니→“任俠”이라는 것은 “아주 용맹스럽고 협기가 있다.”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 정의감이 있어서, 弱子(약자)들을 돌보고 강한 사람을 억제하는 성품을 지닌 사람을“任俠”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정의감이 좀 남달랐던 사람이지요.

 
   自南北分化(자남북분화)로→ 저 앞쪽에서도 이야기가 있었습니다만,“南頓北漸(남돈북점)”이라고 해서 혜능스님은 남쪽에서 돈 사상 을 주장하고, 신수스님은 북쪽에서 점수 사상을 주장해서, 그 당시 나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남쪽과 북쪽이 分化. 나누어서 교화함으로부터 二宗主(이종주)는→ 두 분 종주.


   그러니까 북쪽에는 신수스님이고. 남쪽에는 혜능. 육조 혜능스님. 두 분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한 宗派(종파)의 주의를 “宗主”라고 이야기합니다. 또 근래에 큰스님들 열반 하시면 어지간하면 그냥“宗師(종사)”라는 말을 쓰는데요. 종사라고 하는 것도 마루 宗(종)자와 스승 師(사)자를 쓰는데 한 종파의 큰 스승쯤 되어야 宗師(종사)”라고 할 수가 있지요.

 
   그냥 스승정도 가지고는 종사라고 하기는 그렇고, 하나의 어떤 사상을 확립해서 그 사상으로 사람들을 교화를 하고, 그것이 세상에 상당히 성행이 됐을 때, 그것을 종사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큰스님이라고 함부로 덮어놓고 종사라고 하는 말은 안 맞지요. 宗主. “宗主”라는 것도 역시 그런 뜻입니다.

 
   雖亡彼我(수망피아)나→ 비록 그 사람들은 彼我에 대한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 말입니다. 혜능스님도 신수스님에 대해서 크게 신수스님을 무시하거나, 또 자기 자신의 사상만을 주장 하거나 하고, 신수스님도 역시 혜능스님에 대해서도 그렇고, 혜능스님도 역시 신수스님에 대해서도 彼我相(피아상)이 없다 이겁니다. “너”니 “나”니 하는 서로 “잘 났다.”고 하는 생각이 없는 처지인데, 요는 제자들이 대개, 잘 모르니까 싸우게 되는 것이지요.

 
   徒侶(도려)들이 競起愛憎(경기애증)이라→ 徒侶. 그 무리들이. 신수스님을 따르는 무리들. 혜능스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다투어서 서로 자기 것만 애착하고, 상대방 것은 시기한다든지 질투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더라. 그래서 상당히 그 당시 남북이 수행에 대한 사상적인 견해를 가지고 왈가왈부를 많이 하고, 또 미련한 중국 사람들이, 그냥 사람을 헤치기도 하는 그런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時(시)에 北宗門人(북종문인)이 自立秀師(자립수사)하야→ 北宗. 그러니까 신수스님을 추종하는 문인들이 스스로 신수스님을 내세우기 위해서, 내세워서 秀師. 신수스님을 내세워서, 爲第六祖(위제육조)→ 6조로 삼았다 이것이지요.

 
   달마로부터 혜가로 이어지는 그 순서가 혜능에게 와서 보통 “육조” “육조” 하는데, 북쪽으로 전해진 사람은 법이 5조 스님 에서부터 신수스님으로 전해졌다고 해서 신수스님을 6조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삼을 수가 있습니다. 신수스님 쪽으로 흘러가면 신수스님이 6조가 되고, 혜능스님 쪽으로는 혜능스님이 6조가 되고, 혜능스님 제자는 7조가 되고, 신수스님 제자 역시 7조가 되고, 그것은 당연히 그렇게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꼭 한 사람만 6조가 되라는 법은 사실은 아닙니다.

 
   忌祖師傳衣(기조사전의)→ 그런데 가섭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袈裟(가사). “信標(신표)”라고 하는데, “법을 전했다.”고 하는 그 표시로서 가사를 전해 내려 주는데, 그것을 혜능스님이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것을 시기질투 하는 것이지요. 법으로서는 신수스님에게 갔다고 주장해도 상관은 없는데, 단 5조 스님이 혜능스님에게 신표로서 가사를 전해 줬으니까요. 옷을 전해주는“祖師傳衣(조사전의)”를 시기해서

 
   爲天下所聞(위천하소문)하야→ 천하에 다 퍼졌다 이 말입니다. 천하에 다 알려진 그것을 시기해 가지고서

乃囑行昌(내촉행창)하야→ 행창이라는 사람. 이 사람이 아주 정의감이 넘치고 약자를 돕는, 좀 무술도 뛰어나고 아마 그런 사람이었던가 봐요. 자객 역할을 한 이 사람을 시켜서는,

 
   來刺於師(내자어사)라→ 육조스님을 헤치도록 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육조스님에게 온 것입니다. 그런데

師(사) 心通(심통)으로→ 육조스님은 뛰어난 도인이라서 마음으로부터 그런 상황을 환히 꿰뚫어 아시고. 他心通(타심통)으로서, 豫知其事(예지기사)라→ 그런 일을 꾸며서 어떤 사람이 올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래요. 그 사람과 당신과의 과거 생에 깊은 인연에 대한 것도 알고 있는 그런 처지였던가 봐요. 그래서

 
   師置金十兩於座間(사치금십량어좌간)이라→ 금을 열량이나 자기 앉아있는 그 옆에다가 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時夜暮(시야모)에→ 한 밤이 되어서 行昌(행창)이 入祖室(입조실)하야→ 다른 사람. 대중들은 전부 잠자고 있는 시간에 행창이라는 사람이 “祖室”에 들어온 것이지요. 칼을 들고...

 
   들어와서는 혜능스님을 헤치고, 혜능스님이 가지고 있는 가사를 뺏어가려고 했던 것이지요. 처음부터 가사를 가지고 도망 나올 때도 저 앞에 행유품 에도 있었습니다만, 가사를 받아서 몰래 도망 나올 때도 우여곡절이 상당히 있었지요? 혜능스님은 일생에 그런 걸로 보면 파란만장한 사람입니다.

 
   본래 先祖(선조)는 좋은 집안 출신이었는데, 가세가 몰락을 해서 아주 가난하게 살고, 또 아버지를 일찍이 잃어버리고 외아들로서 어머니만 모시고 나무장사 하면서 살다가 선근이 있어서 스님이 경전 읽는 소리를 듣고 마음의 눈이 열려서, 그 길로 5조 스님에게 찾아 가서 불과 1년도 안 된 그 시간에 5조 스님한테서 법을 전해 받고, 가사를 보존하기 위해서 몸을 숨기고, 15년이란 세월을 사냥꾼들 틈바구니에서 있으면서, 사람이 어름하게 그렇게 행동하니까, 몰이는 사냥꾼들이 하고 그물을 지키라고 했지요.

 
   사냥꾼들이 안 볼 때는 얼른 그물을 들어서 짐승들을 다 보내줘 버리고, 왜 짐승들이 이쪽으로 안 왔느냐고 하면 ‘글쎄 이쪽으로는 안 오더라.’고, 이렇게 거짓말을 해가면서 그런 생활을 무려 15년이란 세월을 하면서 자기 수행도 많이 했겠지요.

 
   그러나 그런 파란만장한 생활을 하다가 그런 피난 생활이 끝나고 법성사에 가서는, 바람이 움직이는가? 깃발이 움직이는가? 하며 다투는 스님들 틈바구니에 들어가 가지고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그대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하는 아주. 유명한 불가에서 그 소리야 지극히 초보적인 소리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런 이야기를 해서, 비로소 남의 눈에 띄어서 비로소 그때야 머리를 깎고 계를 받고 정식으로 스님이 되는...

 
   見性悟道(견성오도)하고도 15년이란 세월을 피난 생활을 하다가 그때야 비로소 승려가 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살아왔던 분이지요. 또 여기서 행창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목이 베일번한 그런 사실이고... 나중에 우리나라 사람이 가서 목을 베어 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쌍계사에 모셔놨잖아요. 혜능스님의 목을 베어와서요. 어째 火葬(화장)도 아니 했는가? 혜능스님은... 목을 베어 왔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쌍계사에다 모셔서, 【六祖頂相塔(육조정상)】이라 하고 탑까지 모시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지금 육조스님이 계시는 광하사. 광주 소관에 있는 지금은 寶林寺(보림사)지요. 거기 가면 육신이 그대로 있거든요. 멀쩡해요. 얼굴도 다 있고 목도 그대로... 어떻게 된 심판인지 모르겠어요. 중국에는 육신을 그대로 보존하는 기술이 아주 뛰어났는가 옛날부터... 수백 년 전부터... 여기 육조스님 경우는 천년 넘었지요. 천년도 더 된 때부터 육신을 보존을 잘 해서 그대로 改金(개금)을 해서 모셔놓는 그런 관례가 많습니다. 아주 많지요.

 
   신라의 왕자 김교각. “지장보살”이라는 그 분도 광하사. 거기 가면 그 분도 아직도 그대로 계십니다. 그런 예들이... 금년에도 대만으로 피난 온 어떤 큰스님이 한 2~30년 전 일인가 그런데 그 스님도 역시 그런... 장안법산가요? 보통 스님도, 일반 居士(거사)인데요.“장안법사”라고. 그 분도 아직도 육신으로 계시고... 돌아가신지 벌써 30년이 넘은 그런 세월인데도... 하여튼 그런 관례들은 많습니다.

 
   여기도 목을 베어 가서 그렇게 했는데, 여기서는 베지는 못하고 나중에 돌아가신 이후에 탑을 열고, 한국 사람이 목을 베어 왔다는 기록도 있고 그래요. 어쨌든 그 참 팔자가 기구한 분이기는 합니다사실은... 죽은 뒤에도 그런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니까요.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여기는 질투심에서 했지만, 우리나라 스님은 부처님과 다를 바 없는 분이라고 해서“목이라도 모셔다 놓고 공양하겠다.”는 뜻에서 베어 왔어요. 한국에서는... 취지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는 보면 알지요. 밤에 행창이 입실 하고서. 조실방에 들어와서,

將欲加害(장욕가해)할새→ 加害하려고 했다 이 말입니다. 師(사)→ 스님이 그런 사실을 알고,

舒頸就之(서경취지)하시니→ 목을 베어 가라고 내밀었다 이 말입니다.

 
   行昌(행창)이 揮刀者三(휘도자삼)이라→ 세 번이나 칼을 쳤는데, 悉無所損(실무소손)이라→ 하나도 손상되는 바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깜짝 놀랐겠지요? 그 잘 드는 칼을 가지고 와서 목 을 세 번이나 쳤는데, 목은 하나도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였다. 이런 이력이 서두에도 있었지 않습니까? 가사하고 발우를 바위에 얹어놨는데, 혜명이 라는 힘센 그 사람도 장군 출신이었지요?(12강) 장군 출신이 와서 가사와 발우를 가져가려고 했으나, 한 손으로도 가뿐하게 들 수 있는 가벼운 발우가 바위에서 떨어지지 않더라는 기적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여기도 역시 그런 이야기지요?

 
   師曰(사왈)→ 육조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正劍(정검)은 不邪(불사)요→ 바른 검 은 삿되지 않는다. 너는 바른 검이 아니다. 정의로운 칼이 아니다 이겁니다.

정의로운 칼은 삿되지가 않다 이것이지요. 그리고 邪劍(사검)은 不正(不正)이니라→ 삿된 칼은 바르지 못하다. 정당 하지 못하다.

只負汝金(지부여금)이요→ 다만 내가 너한테 빚진 것은 돈에 대해서 빚진 것이 있다 이겁니다 金錢(금전)... 돈에 대해서 빚진 것이 있고,

 
   不負汝命(불부여명)이라→ 목숨에 대해서는 빚진바가 없다. 그러니까 이것은 육조스님만 아는 아마 과거생에 돈을 빌려 쓰고는 못 갚았던지, 아니면 육조스님도 옛날에 前前生(전전생)에 이 사람 돈을 훔쳤던지 빌려서 안 갚았던지 어쨌든 그런 사실이 있었겠지요. 그래서 네한테 돈을 빚진 것은 있지만 목숨을 빚진 것은 없다. 그래서 돈 열 냥을 옆에다 놔 둔겁니다. 늦었지만 그것을 갚으려고요.

 
  行昌이라는 사람이 그런 상황을 맞으니까 놀랐지요?

驚?(경부)라→ 놀랄 驚(경)자. 엎어질 ?(부)자. 그 자리에서 놀라서 엎어져버린 겁니다. 그 상황에 안 놀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상황이 되면 아무리 지가 豪俠(호협). 협기가 있고,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久而方蘇(구이방소)라→ 오랫동안 기절해 있다가 바야흐로 소생을 하게 됐지요. 정신을 차리고...

 
  求哀悔過(구애회과)하고→ 자기의 허물을 뉘우치고. 슬퍼하면서 자기의 허물을 뉘우치고 말하자면 사정사정 하겠지요. 卽願出家(즉원출가)어늘→ 곧 출가하기를 원한다. 그런 도인 만나고 출가 아니 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 정도 감동 하면 의당히 당연히... 또 이 사람은 호협한 사람이니까 이런 사람들이 그릇이 크거든요. 한번 마음 돌이켜 먹으면 이런 사람들이 法器(법기)가 좋으니까요. 출가하기를 원하거늘,

 
   師遂與金言(사수여금언)하되→ 혜능스님이 그 사람에게 드디어 돈을 주면서 말하기를, 汝且去(여차거)하라→ 그대는 또한 돌아가라. 恐徒衆(공도중)이→ 이 사실을 우리 대중들이 만약에 알면 너를 그냥 둘 줄 아느냐?

 
   ?害於汝(번해어여)일가하노니→ 도리어 그대를 해칠 것이다. 이 대중들 말이지, 내 목을 베러 왔다는 소리를 듣기만 해봐라. 수백 명. 수천 명 되는 사람들이 너를 그냥 둘 줄 아느냐? ?害於汝다. 너를 해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汝可他日(여가타일)에→ 너는 가히 돌아갔다가 다른 날. 易形而來(역형이래)하면→ 형색을 바꾸어서 와라. 그러면 吾當攝受(오당섭수)하리라→ 내가 마땅히 그대를 잘 받아 들여서 승려로 만들겠다. 이렇게 했습니다.

 
   行昌(행창)이 ?旨夜遁(품지야둔)하야→ 뜻을 받고는 밤에 돌아가서, 後(후)에→ 그 후에 投僧出家(투승출가)하야→ 돌아가서 출가를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具戒精進(구계정진)이라→ 具足戒(구족계)를 받고 정진을 열심히 하고... 다른데서 승려가 됐다는 이야기지요. 딴 데서 승려가 됐는데,

 
   一日(일일)은→ 하루는 憶師之言(억사지언)하고→ 스승의 말을 기억하고, 육조스님의 말을 기억하고, 遠來禮覲(원래예근)이라→ 먼데서 와서 예배하고 뵙게 됐다는 겁니다. 다른데서 승려가 되고 왔으니까 모양도 완전히 바뀐 상황이지요.

 
   師曰(사왈) 吾久念汝(오구염여)러니→ 내가 오랫동안 그대를 생각 했는데, 汝來何晩(여래하만)고→ 그대가 오는 것이 어찌 이렇게 더디냐? 육조스님이 그런 상황으로 돌려보냈으니까 ‘오늘이나 올까’ ‘내일이나 올까’ 하고 늘 기다렸겠지요. 그런데 이 사람이 상당히 세월이 지난 뒤에 왔었나 봐요.

 
   曰(왈) 昨蒙和尙捨罪(작몽화상사죄)하야→ 지난 날 화상이 죄를 묻지 아니한 것을 입어서, 今雖出家苦行(금수출가고행)이나→ 지금 비록 출가를 해서 고행을 하고 있긴 있지만, 終難報德(종난보덕)이오니→ 마침내 스님의 은덕을 갚을 길이 없으니, 其惟傳法度生乎(기유전법도생호)리이까→ 오직 어떻게 해야 법을 전해서 중생을 제도 하겠습니까?

 
   弟子(제자) 常覽涅槃經(상람열반경)하오나→ 어디서 승려가 되어서 열반경을 열심히 공부했나 봐요. 항상 열반경을 제가 보기는 했지만, 未曉常無常義(미효상무상의)하오니→ 常과 無常한것. 무엇이 무상하고 무엇이 항상 한지 거기에 대해서 그 뜻을 未曉. 알지를 못하니, 乞 和尙(걸 화상)은 慈悲(자비)로서 略爲解說(략위해설)하소서→ 비노니 화상께서는 자비로서 간략히 해설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물은 겁니다.

 
  “열반경”이라는 것은 부처님의 열반을 그려놓은 열반하시기 전후. 열반 하시고 나서 사리를 나눈 이야기. 그것이 상당히 量(량)이 많습니다. 무려 40권이나 되는 이야기인데요. 부처님께서 그 참 훌륭하신 부처님이 열반하시니까 부처님도 열반하신다. 육신이 허망한 줄은 알기는 알지만 그래도 믿어지지 않는 것이 인간의 감정이지요.

 
   그러니까 항상 한 것은 무엇이고 무상한 것은 무엇이다 하는 것을 주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도 죽으니까요. 죽으면 불에 태워야 되고 태우면  한줌의 재로 돌아갈 수밖에 없고 그러니 “無常(무상)하다.”이겁니다. 그럼 부처님께서 “항상 하다.”고 한 것은 도대체 뭐냐? 이것이지요. 그런 문제를 아주 심도 있게 다룬 것이 열반경입니다.

 
   최고의 공양 올리는 이야기에서부터, 부처님의 前生史(전생사). 과거에 수행할 때 어떤 이야기라든지 등등 이야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한 것과 항상 하지 아니한 것에 대한 이치를 주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이분도 아마 거기에 의심이 갔든가 봅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師曰 無常者(사왈 무상자)는 卽佛性也(즉불성야)며→ 무상한 것. 항상 하지 아니한 것은 불성이며, 有常者(유상자)는→ 항상 함이 있는 것은 卽一切善惡諸法分別心也(즉일체선악제법분별심야)니라→ 일체선악과 모든 것을, 모든 사항들을 분별하는 마음이다. 이렇게 대답했어요.

 
   이것이 질문한 행창이라는 사람. 지철이라는 스님도 그런 말을 하고 있지만, 보통 우리들의 상식하고는 정반대거든요. 대개 불성은, 부처의 성품. 우리의 근본 마음이니까 그것은“영원한 것이다.”흔히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그 외에 우리가 사물을 분별 한다든지, 춥다 덥다 를 분별 한다든지, 좋다. 나쁘다 를 분별 한다든지, 이런 마음은 금방 좋다가도 나쁠 수도 있고, 나쁘다가도 좋을 수가 있으니까 사실은 그것은 변화무쌍한 것이지요.

 
   금방 일어났다 사라지고 일어났다 사라지는 그런 그 찰나. 찰나의 심리현상인데요. 반대로 오히려 그것을 “항상 하다.”고 그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항상 한 것은“무상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해하는 기준.“항상 하다.”“무상하다.”라는 것.

 
   이것은 그렇게 불성은 우리가“항상 하다.”고 생각 했던지, 아니면 뭐 선악을 분별하는 마음이 “항상 하다.”고 생각 했던지 간에, 내가 무상한 마음으로 생각하면 아무리 항상 한 것도 무상한 것입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항상 하다.”“무상하다.”하는 이것은 어디까지나 말일 뿐이지요.

 
  “항상하다.”고 집착하던지, “무상하다.”고 집착하던지, 그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집착하는 것. 그것이 문제이지, 그 말이 무엇은 “무상하다”하고 무엇은“항상하다.”하고 그것이 둘로 나눠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따로 이 동네 저 동네 나눠져 있는 것도 아니고, 남북이 나눠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불성”이니 선악을 분별하는“사량분별심”이니 하는 그것이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七識(칠식). 八識(팔식). 六識(육식). 前五識(전오식). 이런 우리의 심리현상을 層(층)마다 層層(층층)이 갈라서 하지만 그것도 그렇게 계단처럼 꼭 그렇게 층층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설명을 하자니까 편의상 그렇게 나누어서 이야기를 해서 그렇지, 그것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컨대 우리의 마음 자세가 항상 하냐 아니 하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항상 하다 고 하는 마음만 준비되어 있으면 무엇을 봐도 항상 한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하고 대상이 뭐든지 아무 상관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항상 하지 못한 마음은 불성 아니라 又(우)불성이라도 그것은 무상한 것입니다.

 
  육조스님은 다른 데서도 그랬지만, 그런 生滅心(생멸심)으로 부처님 법문을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그것은 生滅法(생멸법)에 불과하다 이겁니다. 생멸심 으로서 淫談悖說(음담패설)을 해도 그것은 “영원한 진리의 법이다.” 이랬어요. 思量(사량)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느 정도 어느 상태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무슨 말을 하느냐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경전이라든지 조사스님의 어록이라든지 이런 것을 읽을 때, 또는 공부할 때 꼭 마음에 유의를 해야 할 대목이지요. 여기도 보면 그런 것을 조금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행창이라는 사람이 曰(왈)→ 말하기를 和尙所說(화상소설)이 大違經文(대위경문)이로소이다→ 화상이 말씀하신 것이 경문하고 크게 어겼다 이겁니다. 우리 상식하고도 그렇지요?

 
   師曰(사왈) 吾 傳佛心印(오 전불심인)이어늘→ 나는 부처님의 心印을. 부처님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마음의 도장을 전해 받은 사람이다 이겁니다.

安敢違於佛經(안감위어불경)이리요→ 어찌 감히 佛經을 어길 수 있겠느냐? 아니다 이겁니다. 네가 잘 몰랐다 이겁니다.

 
   曰(왈) 經說(경설)은 佛性(불성)이 是常(시상)이어늘→ 경에서 말한 것은 부처의 성품.“불성은 항상하다”고  했거늘, 和尙(화상)은 却言無常(각언무상)하시고→ 화상께서는 도리어 “무상하다”고 말씀하시고, 善惡諸法(선악제법)과 乃至菩提心(내지보리심)이 皆是無常(개시무상)이어늘→ 보리심을 “발했다.”“안 발했다.”하는 이것도 변하는 마음이니까요. 이것도 변하는 마음이니까 이것도 “무상하다.”이겁니다. 선악은 말할 것도 없고요.

 
   和尙(화상)은 却言是常(각언시상)이라하시니→ 화상께서는 그것을 도리어 “항상하다”고 하시니,

此卽相違(차즉상위)라→ 이것이 서로 어기는 도리다.“상이한 경우다.”이것이지요. 令學人(영학인)으로→ 학인으로 하여금 轉加疑惑(전가의혹)이니이다→ 도대체 의심스러워서 못 견디겠다 이겁니다. 더욱 더 의심스럽기만 할 뿐이다. 육조스님 말씀을 안 믿을 수도 없고, 경의 말씀을 또 안 믿을 수도 없고 그렇습니다.

 
   師曰(사왈) 涅槃經(열반경)을 吾昔(오석)에→ 처음 聽 尼無盡藏(청 니무진장)의 讀誦一?(독송일편)하고→ 저 앞에서(47강) 무진장비구니 이야기가 나왔었습니다. 그때 무진장비구니가. 그 당시 아마 열반경을 많이 읽었나 봐요. 우리나라에는 열반경산림이 별로 흔치가 아니합니다. 열반경을 그렇게 잘 읽지를 않는데 간혹 읽는 경우가 있고, 열반경산림이 그전에 더러 있었는데요. 그전에 없어져 버리고 그랬어요.

 
   무진장이라고 하는 비구니가 열반경을 읽고는 뜻을 몰라서 육조스님에게 한번 왔었는데, 그때 이 혜능스님이 열반경을 처음 만난 것이지요. 그래서 비구니보고 네가 한번 읽어라. 내가 가만히 듣겠다. 경이라는 것이 자기들 말로 번역을 해놓으니까 읽으면 다 아는 것이지요. 그래서 열반경을 한번 들은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비구니 무진장이 讀誦一?(독송일편)하는 것을 듣고,

 
   便爲講說(변위강설)이라→ 강설을 했는데

無一字一義(무일자일의)도 不合經文(불합경문)이었으며→ 一字一義도 경문하고 합해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겁니다. 전부 경문하고 딱딱 들어맞게 내가 강의를 했다는 것입니다. 乃至爲汝(내지위여)하야도→ 내지 그대를 위해서도

終無二說(종무이설)이니라→ 마침내 두 가지 말이 있을 수가 없다 이겁니다. 일단 믿고 들어가라는 것이지요. 내가 열반경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이겁니다. 일찍이 한번 무진장보고 “읽으라.” 해서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강의도 한적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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