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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타는 어진 여인이다.
단 한번의 생각으로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살생까지도 버렸으며, 마음 밖에 따로 한 물건도 없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도리를 사유하여 팔만 사천가지의 삿된 논변들을 물리치고 항상 중력의 힘과 같이 마음을 몸 가까이에 두어 멀리 가지 않게 잡아 당기며 사유의 대기권 밖으로 탈출 하지 못하도록 한다.

어느 여름 날,8월의 열대야가 대지의 틈새에서 연기처럼 솟아 오르던 밤,잠 안 오는 밤의 무르익는 사유의 기쁨을 간직한 채 시장에 사는 흰머리를 한 유마라는 장사꾼을 찾았다.

수자타가 유마의 집 마당에 들어 섰을 때에 마침 유마는 마당에 한가롭게 나와 앉아 밤하늘 저 멀 리서 보내 오는 존재의 증명들인 별빛들을 말 없이 바라보며 노쇠해져 가는 기운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 별빛들의 언어인 숨을 들이 마시고 있었다.

수자타가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다가오는 향기 만으로도 친근한 이의 인기척을 느낀 유마는 돌아 보지도 않고 독백하듯이 물었다,

유 마: 수자타야,무엇이 빠르냐?

수자타: (마침 유마가 별빛을 바라 보고 있는 것을 보고..) 빠르다면 빛이 빠릅니다. 째깍 하는 순간에 30만 킬로미터를 달린다 하지 않습니까?

유 마:수자타야,빛이 빠르다 하지만 저 너머의 우주에 나의 소식을 배달하기엔 너무나 더딘 물건이다.아직도 도달 하지 못한 곳이 있는 까닭에 앞으로 영겁을 달려도 도달하지 못하는 곳이 있다.

수자타: (눈치 빠르게 유마의 뜻을 감지하여..)내 코를 행하여 날아 오는 화살이야 말로 내게는 너무 빠르다 할 것입니다.

유 마: 수자타야, 눈 앞의 죽음의 화살이 빠르다지만 세월이 나르는 것이므로 더딘 세월에는 오히려 굼벵이일 뿐이다.

수자타: 그렇다면 당연히 세월이야 말로 빠른 것입니다.

유 마: 수자타야,세월이 빠르다지만 마음이 나르는 것이므로 마음 만큼 빠르지 않다.
수자타야,이 마음이야 말로 신속하기가 견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마음이야 말로 잽싸기가 마치 숲속의 원숭이가 한 나무 가지에서 다른 나무 가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옮기는 것과 같이 잠시도 머무르지 아니 하고 빛보다 더 빠르게 공간을 움켜쥐고 달리느니라.

이 마음은 또한 주인 없는 허공 같으니, 아무런 걸림 없이 이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번쩍번쩍 옮기느니라. 이 마음은 또한 굵은 밧줄과 같으니 온갖 상념들을 묶어 벗어나게 하지 못하며,이 마음은 또한 깨끗한 거울 같으니 온갖 번뇌의 티끌들이 다 들러 붙어 떨어지지 않을새 사람들이 닦아냄과 같으니라. 이 마음은 또한 왕과 같으니 앞으로나 뒤로나 위로나 아래로든지 그 행보에 걸림이 없고 머물지 못할 곳이 없고 취하지 못할 것이 없는 까닭이니라.
수자타야, 이 마음은 또한 그 나라에서 가장 큰 부자와 같으니 온갖 즐거움과 괴로움과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것들을 다섯 창고(5온)에 풍부히 쌓아 놓고 팔만 사천의 종들을 부리며 쉬임 없이 손님(대상:법)들을 불러다가 즐거움과 괴로움과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것들을 날라다 먹고 마시며 주고 받고 하느니라.

수자타야 ,또한 이 마음은 한꺼번에 다섯 주인을 섬기는 피곤을 모르는 강건하고 부지런한 종과 같으니 아침으로 밤까지,밤에서 아침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여 몸(色) 주인이 부르면 몸 주인을 따라가고,느낌이(受) 부르면 느낌을,생각이(想) 부르면 생각을,움직임이(行) 부르면 움직임을,그리고 알음알이가(識) 부르면 알음알이를 따름이 마치 부싯돌이 부딪힘을 따라 불을 내듯 부지런히 섬기느니라.

수자타야,이 마음은 모든 형상이요 모든 개념 그 자체이니, 넓은 들판에 형형색색의 유형무형, 드러남과 감춤,큰 것과 작은 것, 밝음과 어둠이 다 들어 있기에 비로소 들판이라 하는데,이것은 민들레 저것은 들국화요, 이것은 화강암, 저것은 현무암이요, 이곳은 동산 저것은 계곡이요, 이것은 산 저것은 티끌이요, 이것은 밤 저것은 낮이요, 이곳은 동쪽 저곳은 서쪽이다 할 때에 그 전체를 하나로 꿰뚫어 들판이라 함과 같으니라.이 들판을 제외 하고는 따로 들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이 이 마음을 제외하고는 따로 유무단상(有無斷常)이 없느니라.

수자타: 유무단상(有無斷常)이라 함은 무엇입니까?

유 마:有라 함은 있다 하는 견해의 늪이니 이 사바세계에서 이 보다 더 깊고 진득한 늪은 없느니라. 만일 너의 오른 쪽 발이 여기에 빠진다면 왼쪽 발이 빠지지 않았다고 무사하지는 못하리라. 왠고 하니 수자타야,「내」가 있다,「내」가 있으므로 「나의 것」이 있다,「나의 것」이 있으므로 「나의 구원」이 있다 「나의 구원」이 있으므로 「나의 천국」이 있다 「나의 천국」이 있으므로 「나의 영생」이 있다 「나의 영생」이 있으므로 「나의 주」가 있다 「나의 주」가 있으므로 「나의 믿음」이 있다 「나의 믿음」이 있으므로 「나의 구원」이 있다 하고 돌고 도는 끝없는 無間 업에 종사한다면 그는 有의 늪에 빠진 자니라.

「내」가 결정 코 있다 하므로 영생한다 함인데 이것은 중복이거나 자기 부정의 말이다. 있다 함은 그것 자체로 이미 영생이라는 말이다.그렇지 않으냐? 「내」가 이미 있는데 따로 무슨 영원히 있을 것이고 말고 가 어디 있느냐? 이것은 중복이다. 또한 있다고 하면서 영원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있는 것이 없어지거나 변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는 말인데 이것은 자기 부정이다. 이러한 유(有)에 빠진 자는 무(無)의 약으로도 건질 수 없느니라. 독을 마신 자와 같아 뱉어내어도 그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느니라. 有란 그렇게 무서운 독이니라. 이러한 有의 견해는 나중에는 멀쩡히 있는 머리통을 없다고 하며"내 머리가 없어졌다"고 소리치며 마을로 뛰어 나가는 과보를 만나나니,이는 「항상 있다」 하는 것이 미친 소견이기 때문이니라.

無라함은 「나」는 없다 하는 견해들의 늪이니,이 사바세계에서 이 보다 더 깊고 진득한 늪은 없느니라. 만일 너의 왼 쪽 발이 여기에 빠진다면 오른쪽 발이 빠지지 않았다고 무사하지는 못하리라. 왠고하니 수자타야, 「내」가 없다 「내」가 없으므로 「내」가 할 것도 없고 못할 것도 없다. 내가 할 것도 없고 못 할 것도 없으므로 이것은 하지 말아야 하고 저것은 하리라 할 것도 없다.살생이나 주지 않은 것을 가짐이나 사음이나 망령된 말이나 탐욕이나 성냄이나 심지어는 내가 어리석은들 무슨 잘못이며 지혜를 구한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하는 무간(無間)의 업에 빠져 있다면 그는 無의 늪에 빠진 자니라.

「내」가 결정 코 없다 하므로, 없다 하는 그 「나」도 없어야 할 텐데 이것은 중복이거나 자기 부정의 말이다. 그렇지 않으냐? 이미 「내」가 없는 데 따로 누가 「나」는 없다고 말을 한단 말이냐? 이것은 중복이다. 또한 없다고 하면서 그 없는 것을 설명 할 때에는 만물을 들어 비유하는 데 「나」는 없다 하면서 「만물」은 있다 하는 것이니 이것은 자기 부정이다. 이러한 무의 늪에 빠진 자는 有의 약으로도 구 할 수 없느니라. 콩크리트에 못을 박은 것과 같아 부러지면 모를까 뺄 수가 없느니라.이러한 無의 견해에 빠진 자는 멀쩡히 있는 머리통을 어느 날 갑자기 있다고 하며 "나에게 머리가 있다!"고 하며 소리치며 마을로 뛰어 나가는 과보를 만나나니. 마땅히 있는 것을 「모든 것이 없다」하는 고로 이는 미친 소견인 까닭이니라.

斷이라 함은 이「나」와 저「나」가 다르다 하는 견해의 늪이니, 이 사바세계에서 이 보다 더 깊고 진득한 늪은 없느니라. 만일 너의 두 발이 여기에 빠진다면 몸이 빠지지 않았다고 무사하지는 못하리라. 왠고하니 수자타야, 「내」가 있다,살생하여 지옥에 간 나와 방생하여 천국에 간 나가 각각 다르다 하는 것이니라.업이 다르므로 과보가 다른 것이지 「나」가 다른 것이 아니니라. 마치 팥을 심고 팥을 얻고 콩을 심고 콩을 얻은 것인데 얻어진 콩과 팥이 다르다고 심은 사람까지도 둘로 나눠 보는 것이니라.또한 요즘 사람들은 특히 천주(하나님)의 무리들은 내가 과거도 없이 현재를 얻었다고 박박 우겨대는데 아주 진력이 날 정도로 우겨댄다.

이것은 단견이다.과거가(전생이) 없다면 현재도(금생도) 없을 것이요,현재가(금생)이 없다면 미래도(내생도)없을 것인데,어느 생으로 천국엘 간다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천국 가는 몸만 있다 하고 그 몸에는 과거도 없다는 것이니 이것은 내생(미래)만 있다 하고 그 미래의 원인인 금생(현재)은 없다 하는 것과 같아 원인도 없는데 결과만 있다는 것이라 우기는 것이니라.

이는 수자타야,원인도 없이 결과는 있다 하는 단견이니라.그러나 이러한 세계란 없느니라.그러므로 알아라,너의 지금 받는 것이 있으므로 너의 과거의 지음이 있고 과거의 지음이 있다면 짓는 몸과 마음이 있었느니라.너의 지금 지음이 있는 고로 너의 다음 받음이 있고 받음이 있으므로 받을 몸과 마음이 있느니라.이 삼세는(과거현재미래)는 온 우주에 편재하여 있는 존재함 그 자체이니라.

이를테면 수자타야,지구로부터 빛 속도로 측량하여 50억 광년 밖의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어느 별에서 보는 현재는 지구의 50억년 전의 모습인데, 50억년 전 지구는 이제 막 태어 나기 시작한 별에 불과 한데 그들이 아는 지구라는 별은 누가 뭐래도 이제 막 태어나기 시작한 별에 불과한 것이다.그들에게는 지금의 찬란한 문명지구는 먼 미래의(50억년 후의)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지금 현재이다.

수자타야,우리에게는 지금이 현재이지만 또한 50억 광년이 지난 후의 중생들에게는 지금이 50억 광년 전의 과거가 되느니라. 그렇다고 50억 광년 후가 없겠느냐? 있다면 이 우주 그 자체는 삼세(과거현재미래)를 그냥 그대로 한 라인에 간직한 공간일 뿐이니,마치 어린 아이가 하얀 종이 위에 길게 선을 그으면 긴 선이 그어지는 것처럼 우주에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것이 하나의 일직선 처럼 그냥 길게 늘어서 있는 길이일 뿐이다.이것을 일러 세계라 하느니라. 그 세계(어린아이가 그어 놓은 선) 위에 마침 우리가 여기 있으므로 그것을 현재라 하는 것 뿐,내가 있는 곳을 현재라 하고 내가 없는 곳을 과거 또는 미래라 하는 것이다.

현상의 법에서 내가 없다고 한다면 모를까 있다고 한다면 이 우주의 법칙에서 벗어나서 내가 있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마땅히 나의 현재가 있으므로 나의 미래가 있고,나의 현재가 있는 걸로 보아 나의 과거가 있다는 것을 왜 모른다는 말이냐?
지금의 목숨을 금생이라 하고 미래의 목숨을 내생이라 하고 과거의 목숨을 과거생이라 하는데 이 이치가 그리도 어려운 것이길래 그렇게 길고 긴 종교의 터널 속에 갇혀 이치를 부인하다니 실로 우매한 저 고대인의 사고방식이 현대에까지 살아 남은 문명의 흔적이라 할 만 하도다.

자기 기억을 너무 의존하다 보니 그런 것이다.내 기억에 없으니까 나는 간 밤에 아무 꿈도 꾸지 않았다고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주장이다. 이것은 단견이다. 이 斷見에 빠진 자는 고집이 황소와 같아 좋은 목동이 와도 이끌기가 쉽지가 않으니라. 매를 들어도 안되고 귀에다 대고 크고 아름다운 운율로 경을 읽어줘도 안되고,앞에서 힘으로 밀어도 꿈쩍도 않느니라.

이러한 斷見에 빠진 자는 살아있을 때에는 천지만물이 다 자기의 적대자가 되어 가는 곳 마다 환난을 만나고,어느 날 모든 계율의 힘과 선정의 힘과 지혜의 힘이 다 빠지면은 진리에 심한 목마름에 빠져 마침내 죽음의 마왕앞에 이르러 삶을 구하되 마치 목마른 자가 물을 구하듯이 애타게 구하는 과보를 받게 되나니, 이는 짧고도 단절된 소견으로 자기의 목을 스스로 죄어 진리의 물을 한 모금도 받아 마시지 않았던 연고니라.

상(常)이라 함은 단(斷)과는 거꾸로 이번에는 이 「나」와 저 「나」가 똑 같다고 하는 견해의 늪이니 ,이 사바세계에서 이 보다 더 깊고 진득한 늪은 없느니라. 만일 너의 몸이 여기에 빠진다면 머리가 아직 빠지지 않았다고 무사하지는 못하리라. 왠고하니 수자타야, 살생하여 지옥에 간 「나」와 방생하여 천국에 간 「나」가 같다고 주장하는 것이니라.업이 같으므로 과보가 같은 것이지 「나」가 같은 것이 아니니라.마치 팥을 심으니 팥을 얻고 콩을 심으니 콩을 얻은 것인데 얻어진 팥과 콩을 사람과 같다고 하여 무정물과 유정물을 가리지 못하는 것이니라.
이 「나」가 그 「나」이고, 그 「나」가 이 「나」이면 이「나」는 어디서 나온 「나」이고 그「나」는 어디서 나온 「나」인가? 이 또한 원인도 없이 결과만 있다 하는 것이거나 또는 원인 속에 결과가 포함 되어 있다 하는 것이니,모든 것이 영원하다 또는 영생이다 하는 견해들이니라. 이 또한 천주(하나님)의 무리들이 숭상하는 견해이니 한편으로는 (위에서 말한)단견을 가지고 한편으로는 이와 같이 상견을 가지니 하나만으로도 이미 결함이 가득한데 둘을 다 가졌으므로 뒤죽박죽으로 결함을 다 가진 것이니라.

앞에서 단견을 주장 할 때에는 원인 없이 「나」가 창조되었다고 하더니만(과거생 없이 금생이 있다고 하더니만),이번에는 어쩌다 「내」가 있다고 앞으로도 영원무궁 영생복락을 주장하니 이 또한 원인은 없이 결과만 있다고 주장 하는 소견이거나 또는 원인 중에 이미 결과가 나타나 있다고 하는 소견이니라.

왜 원인 없이 결과만 있다고 하는 것인가?
영원하다는 것은 원인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니라.원인이 만일 있다면 원인에 따라 결과도 다르나니 결과가 다르면 그것은 영원하다는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수자타야,결과가 다르다는 것은 한 결과에서 다른 결과로 (원인에 따라)변한 것이므로 이는 어떤 것이 변치 않고 영원히 처음과 중간과 나중이 똑 같은 체로 있다는 영원성이 부수어지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러므로 원인 없이 결과만 주장한다 함이니라.

또한 왜 원인 중에 이미 결과가 나타나 있다 함인가? 영원 불멸한 생명이 창조는 되었는데- 창조라는 말은 그것 자체로 실은 하나의 변화이다.없었던 것이 생겼으므로.... 없었던 것이 생겼으면 생긴 것이 다시 없어지지 말아야 하는데 보다시피 생긴 것이 없어지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즉, 창조 또는 스스로 존재 함 이라는 제1원인은 있는데 그 창조 또는 스스로 존재 함 속에 영원이라는 결과가 함께 내포 되어 있다고 해야 만이 영생을 주장 할 수 있으므로 이는 원인 속에 결과가 함께 나타나 있다고 해야 성립 되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저 앞의 원인 없이 결과만 있다고 하는 견해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질그릇은 만들어 졌을 때에 이미 깨어 짐이 함께 있는 것이지만, 원인이 없으면 만들어 짐도 깨어짐도 없다.아직 깨어지지 않은 것에 깨어짐이 있다고 하는 것도 잘 못이요,깨어지는 소질을 항상 갖추어 있는 것에 영원하다고 하는 것도 잘 못이다.

이를테면 수자타야,지구로부터 빛 속도로 측량하여 50억 광년 밖의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어느 별에서 보는 현재는 지구의 50억 년 전의 모습이 아니라 처음 모습이 곧 중간 모습이요 중간 모습이 곧 나중 모습이어야만 비로소 영원하다 할 만 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우리 지구는 부단히 변하고 있는데 그들이 변하지 않는 한결 같은 영원한 지구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니라.

이 常見에 빠진 자는 살아 있을 때에는 어리석은 돼지와 같아 진주 목거리를 걸어 주어도 안 되고 금과 은을 갖다 주어도 소용없으며 ,어느 날 모든 계율의 힘과 선정의 힘과 지혜의 힘이 다 빠지면은 진리에 심한 포만감에 빠져 마침내 죽음의 마왕앞에 이르러 삶을 구하되 마치 물놀이를 좋아 하는 사람이 바다 한가운데에 빠져 하늘을 원망하며 삶을 구하듯이 애타게 영생을 구하는 과보를 받게 되나니, 이는 자기의 소망을 억제 하지 못하여 지나치게 깊은 곳까지 몰고 간 연고니라.

수자타야,네가 길을 가다가 이들 有無斷常(유무단상)의 견해의 늪에 빠진 자들을 만나면 오른 발이 빠지고 아직 왼 발이 아니 빠져 있더라 도 곧 왼발이 빠져 들어 갈 것이요,두 발만이 빠져 아직 몸이 빠지지 않았더라 도 곧 몸이 빠져 들어 갈 것이요,몸 만이 빠져 아직 머리가 잠기지 않았더라 도 곧 머리가 잠기게 되리라 알고 비록 네가 꺼내 보려고 수고하여 힘을 쓰지만 헛 된 일이 될 것이므로 가던 길 계속 감만 못하리라.

수자타: 유마님, 그렇지만 이 유무단상에 빠져 있는 자들을 가만 놔두면 어떻게 중생들을 옳게 제도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부처님의 뜻에도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유 마: 그렇다고 부처님도 못하시는 일을 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은 아니지 않느냐? 부처님께서 여러 중생들을 다 제도하셨지마는,이 유무단상에 빠진 중생들 만은 제도 하시지 못 하셨느니라.어찌 하여 그런가? 유무단상이 바로 부처님이 가르치신 바 마음 그 자체인 까닭에 부처님께서 “일체가 다 한 마음의 소작이다”고 하신 말씀을 만나지 도 못하고, 만났어 도 귀가 없어 듣지를 못하고, 들었어 도 믿지를 못하고, 믿는다 하여 도 행하지 않으니 어떻게 이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단 말인가?

제도 받은 모든 중생들치고 「일체유심조」의 이 도리를 믿지 않고 제도 받은 중생이 없는데 오늘 날 누가 있어 떳떳하게 “일체가 다 한 마음이다” 하는 이 사자 후를 대하여 오금을 저리지 않고 코끼리처럼 마주할 수 있단 말인가? 사자가 내는 소리에 여러 가지 연약한 짐슴들,들소,무소,얼룩말,영양,누,기린,하이에나,치타,들개,심지어는 코뿔소까지 덜덜 떨면서 도망가기에 바쁠 뿐, 다만 늠름한 사자와 코끼리만이 그 사자 후를 받아 도망 치지 않고 바쁘지 않게 걸으며 듣느니라.

수자타: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유무단상에 빠지지 않게 되겠습니까? 만일 그 것을 안다면 혹시 누가 압니까?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그리고 무소의 뿔처럼 마음 하나 달랑 들고 혼자서 갈 수 있을 지……

유 마: 어려운 일이다,
수자타야 이는 어려운 일이다.
늪 한가운데에 빠진 사람은 결국은 애는 쓰지만 점점 빠져 죽느니라.
바다 한 가운데 빠진 사람은 힘이 모자라 빠져 죽느니라.
하지만 이들에게는 천우신조로 바다 한가운데서 큰 거북이를 만난다 던가 하여 빠져 나올 수가 있을지 모르지만 저 유무단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결단코 빠져 나오지 못하리라.왜냐하면 스스로가 빠져 있다는 것 조차 모르기 때문에 눈 앞의 거북이가 보여도 잡아 먹을 거리로만 보일 뿐 아무런 의지도 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라,그런 청도 하지 말라. 인연 없는 자는 부처님도 못 구한다 하셨느니라. 저 유무단상에 빠져 있는 자들은 다 인연이 없는 자들이니라.이름하여 잇찬티카라 하느니라. 비유컨대,수자타야,네가 부처님의 몸에서 피를 내게 하여 부처의 도를 이룰 수 있겠느냐?

수자타: 어림없습니다 유마님, 부처님을 일평생 받들어 모시며 가까이 한다 하더라도 마음이 없으면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게 한 인연으로 부처님의 도를 이룬다는 것은 땅이 입을 열어 불의 혀로 삼켜 버릴 것이므로 도를 이룰 짬이 없을 것입니다.

유 마: 그러면 네가 너를 낳아 준 부모님을 살해하여 도를 이룰 수가 있겠느냐?

수자타: 어림 없습니다 유마님, 자기를 낳아준 부모의 뜻을 거스리는 것 만으로도 도를 이루기가 어렵겠거늘 하물며 살해하여서 이겠습니까?

유 마: 그러면 네가 부처님의 아들들인 사부대중을 핍박하고 꾸짖으며 흩어지게 하고 그 아들 중에서 장자인 아라한을 욕을 보이고 살해한다면 도를 얻을 수 있겠느냐?

수자타: 그것 역시 어림 없는 일입니다. 부처님의 자녀(불자)들을 핍박하고 꾸짖으며 흩어지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도와는 먼 곳에 있을 것인데 하물며 그 장자인 아라한을 욕까지 보이고 살해 한다면 그는 반드시 도와는 거리가 멀어질 것입니다.

유 마: 내가 말하건대 이러한 사람들은 차라리 과보를 다 하고 도를 구할 수 있지마는 저 유무단상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결단코 제도하지 못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내 말하기를 이런 사람들을 만나거든 그가 승복을 입었던지 속복을 입었던지,보살의 칭호를 받고 있던지 랍비의 칭호를 뒤집어 쓰고 있던지 가만히 등을 돌려 떠남 만이 유일한 방책이라고 한 것이다.

수자타야, 네가 만일 사람들로 하여금 이 유무단상에 빠지게 하지 않으려거든 마땅히 먼저 마음을 설해야 하리라.동서남북 상하좌우 안과 밖이 다 이 마음의 소작 임을 안다면 죽음의 마왕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죽음의 마왕이 사라지므로 병마가 사라지고 병마가 사라지므로 늙음이 사라지고 늙음이 사라지므로 태어남이 사라지고 이와 같이 차례로 모든 두려움과 전도몽상을 아주 떠나 궁극의 적멸의 낙을 누리리라.

수자타: 유마님, 오늘 제가 들은 바, 有라고 함은 「내」가 있다고 함이요,「내」가 있다는 것은 「내」가 항상 하여 영원하다 함이고 항상하여 영원하다 함은 원인 없이 결과만 있다는 것이니 세상의 이치로 보아 합당하지 않다 하셨으며, 無라 함은 「내」가 없다는 말이요,「내」가 없다는 말은 「남」도 없다는 말이니 내가 스스로야 「내」 없다고 하면서 정작 말 하는 자신은 누구인지 설명할 수 없으므로 이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 라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양 극단은 다 원인과 결과를 스스로 파괴하는 힘을 가진 것이므로 원인과 결과를 물리 법칙으로 가지고 하는 이 세상의 이치와는 맞지 않는 견해들이다 함인데 제가 들은 것이 이와 같습니까?

유 마: 그렇다. 그와 같이 나도 들었고 그와 같이 나도 알고 그와 같이 나도 믿으므로 그와 같이 내가 말했다.

수자타야. 발걸음 하나하나에도 다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 졌느니라. 원인과 결과가 있기에 나는 이러이러한 원인 된 일을 하여 저러저러한 결과를 보리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악한 일은 하지 않음으로써 온갖 괴로움을 차단하고,모든 착한 일은 받들어 행함으로써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즐거움을 생산하고,자기 뜻을 깨끗이 함으로써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과 이런 것들에서 나오는 생로병사의 거친 망상 바다에서 무난히 도리어 적멸의 고요함을 즐길 수 있는 결과를 얻느니라. 이미 태어난 자들로서 늙음을 피하지는 못하느니라. 늙으면 반드시 병이 드느니라. 병들면 반드시 죽느니라. 이것은 괴로움이니라.

수자타야, 괴로움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즐거움이라 할 만한 즐거움은 다 잠간의 일이요 꿈과 같은 일이요 환상과 같은 일이요 물거품과 같은 일이요 그림자와 같은 일이요 이슬과 같은 일이요 그리고 번개불과 같은 일이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찰하여야 하리라. 이와 같이 관찰 한다 함은 바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만나 뵙는 일이요,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만나 뵙는 일은 우주삼라만상 천상 지옥 원인 결과 시간 공간 모두가 다 이 마음이 만든다는 것을 바라 봄이니라.

과거의 부처님도 이와 같이 말씀 하셨고 현재의 모든 부처님도 이와 같이 말씀 하시며,그리고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이와 같이 말씀 하실 것이니라. 나는 그 부처님의 멀리 있는 변방제자로써도 이와 같이 듣고 이와 같이 받아들이는데 하물며 더 가까이에 있는 사부대중 어진 분들이겠는가! 힘써야 하리라.

수자타: 예, 유마님, 변방으로 말하자면 제가 비록 축생의 몸이나 지옥 중생의 몸이나 귀신의 몸은 아니 오나 여자의 몸으로써 남자의 몸에 비하면 변방 중에도 변방에 있는 몸일 것입니다만, 이와 같이 듣고 이와 같이 받아 지니면 도에는 멀고 가까움,서울과 변방이 따로 없으리라 여기고 힘쓰겠습니다.

(어느덧, 밤은 깊었고 달은 중천에 떠 구름을 밟고 가비얍게 서 있었다. 수자타는 유마가 마련해준 곁방 한 칸에서 잠을 청하면서 가끔씩 들려오는 유마의 잔 기침 소리에 걸터앉아 스르르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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