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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타는 어진 여인이다.
마음에 그립다 하여 보이지 않는다고 원망 하지 아니 하며,잠간 보였다고 오래 보이지 않는다고 성을 내지 아니 하며, 사랑하는 이 오직 사랑함만으로 사랑할 뿐, 그가 죽지 않았다거나 그가 병들지 않았다거나 또는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맹세하였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그를 사랑한다.

어느 8월, 마지막 더위에 놓인 철로 위에 길게 깔린 두 줄의 평행선에 의지하여 비 내리는 첫 만남의 추억을 곱씹으며 시장에 사는 흰머리를 한 유마라는 장사꾼을 찾았다.

수자타가 들어 서는 유마의 집 마당은 언제나 텅 비어 있다.그것은 유마가 몹시도 좋아 하는 텅 빔, 바로 그것이다. 수자타는 그 텅 비어 있는 마당을 가로 질러 시장과 연결되어 있는 유마의 안채를 지났으나 유마를 발견하지 못했다. 유마는 채소들을 쌓아 놓은 가게 한 켠에 앉아 물끄러미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수자타: 안녕하세요 유마님,저 왔어요.(생긋!)

유 마: 웅, 수자타 왔구먼. 아직 덥지? 여기 이 부채로 좀 시원하게 해.


(수자타는 유마가 내어 준 부채로 휘휘 바람을 만들어 가느다랗게 이마를 쓸어 내린 머리카락들을 흩날리며 ‘유마의 바람’을 느낀다. 8월의 그것은 한 줌의 미풍으로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는 열기들이었다. 수자타는 아주 잠간 동안이지만 잠자코 그 미풍들의 애무를 받으며 황홀한 침묵에 들어 가 있었다. 유마의 음성이 그 황홀 감을 깨울 때 까지…. )

유 마: 수자타야, 너는 무엇이 가장 손쉬우면서도 가장 큰 이익을 주는 것인지 아느냐?

수자타: ???(뜬금 없이 무슨 말씀이실까?)

유 마: 그것은 바로 악을 그치는 것이다.
이것은 그치기만 하고 따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것만으로 너는 악한 세계에 떨어 지는 것을 면할 수 있다. 무엇을 그친다 함인가?

수자타야, 살생을 그침은 참으로 모든 그침 중에서 으뜸가는 좋은 그침이다. 스스로 는 물론 남으로 하여금 나를 위하여서 하는 살생을 그치게 한다면 그의 목숨은 중간에 요절하지 아니하고 몹쓸 병에 걸리지 않고 마음이 늘 어진 소와 같이 여유가 있으리라.

이와 같이 살생을 그친다면 그는 부처님 법에 해당하는 참회를 몸으로 함이니 반드시 시절을 만나면 꽃을 피우듯이 부처성품을 보게 되리라. 이를 잘 알아 스스로 먹기 위해서나 즐기기 위하여 일체의 중생들의 목숨에 위해를 가하지 말라. 만일 네가 이것을 소홀히 하여 함부로 다른 생명을 해치고 죽이고 잡아 먹는다면 때가 이르면 네가 다른 힘 있는 중생에게 잡아 먹히고 핍박을 받으며 까닭 없이 중병에 들어도 백약이 무효하여 목숨이 사그러들 때의 모진 고통이 어떠한 것인가를 경험하여야만 하리라.

수자타야, 세상 사람들은 저 밖의 네발 가진 짐승들과 배로 기어가는 짐승들과 지느러미로 헤엄치는 짐승들과 날개로 움직이는 짐승들을 대할 때에 입에 군침을 삼켜가며 총과 칼과 올가미로 잡아다가 여러 친한 벗들과 형제와 처 자식들을 불러 모아 그 피와 살을 발라 먹이는데,이는 짐승들이나 하는 업이니라. 언젠가는 반드시 그 빚을 갚되 모년 모월 모일 모시가 반드시 네게 당도 함과 같으리라. 그 때가 되면 바로 이 세상의 종말의 징조가 네게 한꺼번에 다 보이리니, 길을 가다가도 문득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것을 보겠고,잠을 자면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꿈으로 쉴 날이 없으며, 너를 만난 다른 친구들의 꿈에서까지 너의 창백한 얼굴이 나타나 도움을 청하지만 방법이 없으리라.

수자타야, 이 일은 신속하게 이를 것이므로 어서 참회하여 다시는 그러한 살생의 업을 짓지 말라..저 기어 가는 작은 개미 몸이 바로 너의 마음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것은 마음이 들어 살기엔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다고 생각 되느냐? 마음은 신묘하여 줄이면 한 티끌속도 넓은 우주처럼 넉넉하고 펴면 삼천대천세계도 오히려 바늘 구멍 만큼 작으니라 네가 이것을 믿지 않고 함부로 살생 한다면 반드시 네 마음은 네가 한 것을 그대로 그려내어 그에 알 맞는 몸을 갖추게 되리라. 네 마음은 네가 깨닫던지 못 깨닫던지 그러한 신묘함이 있느니라. 마치 네가 깨닫던지 못 깨닫던지 네 마음이 너를 농락 함과 같으니라. 네가 이러한 것들을 참회 하지 않고 부처님을 마주 함이 옳지 않으니라.

아무리 높은 도덕과 심오한 철학과 사랑을 말하고 행한다 하여도 만일 그것이 끼리끼리(사람끼리) 하는 것 뿐이라면 소승의 법일 뿐이니라.

부처님은 종(種) 종(種)의 생명들의 어진 아버지 시니라. 하늘을 나는 것,물 속을 가는 것, 땅 위를 걷든 것들 중에서 모태로 태어 나는 것,알로 태어 나는 것,물기에 젖어 태어 나는 것,화현하는 것들의 어진 아버지시니,어찌하여 그런가? 수자타야, 부처님은 그 모든 것들이 다 마음이 들어가 이루어진 몸들임을 아시는 까닭이니라. 마음이 업을 짓고 그 보를 받는 것임을 눈 밝혀 아시고 그 마음들의 거취에 연민하사 마침내 몸소 이 사바세계까지 오시어서 一切唯心造의 도리를 높이 개창 하시었거늘 어쩌다 네가 사람 몸을 입었다고 기어 다니는 것들을 업수히 여긴다면 네 마음에 아직 마음의 평등성을 이해하는 마음이 없는 연고니라. 마음이 들어 있지 않은 생명들은 없고, 마음은 평등하므로 모든 종류의 생명들은 다 평등하니라. 네가 이 이치를 알지 못하고서는 아무리 어진 사람의 흉내를 내어 자비를 행한다고 하더라도 모자랄 뿐이니라.

수자타야, 부처님 법 만난 이는 반드시 이것을 몸소 깨우치고 실천 해야 하느니라.보통 부처님 법은 만나기도 어렵고 만나서도 받아 지니기도 어렵고 받아 지녀서도 믿고 행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것은 다만 그치기만 하면 될 뿐이므로 이 얼마나 손쉬운 일이냐? 이제까지의 생에 있어서는 몰라서 그랬다 할지라도 이제 마침내 네가 부처님 법을 만났으니 이후의 태어 날 때 마다 세세생생의 목숨으로는 결코 살생하지 않으리라 다짐 하고 차라리 태어 날 때마다 설혹 어리석기가 그지 없어 게송 하나도 외우지 못하는 무지랭이로 태어날 망정 발원하되 이 불살생의 계를 스스로 기억할 수 있기를 발원하라.

수자타야, 네게 외 아들이 있다면 너는 그 외아들이 일찍 죽기를 바라느냐?

수자타: 말도 안됩니다 유마님,외아들이 일찍 죽기를 바라는 부모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겠습니까?

유 마: 그러면 그 외아들이 병들기를 바라느냐?

수자타: 그런 부모는 없습니다 유마님.

유 마: 네게 말하거니와, 네가 네 몸으로 자손들을 낳아 기르면서 다른 중생들을 죽여 함부로 잡아 먹고 가지고 놀게 까지 한다면 이는 알아라,바로 네 아들이 일찍 죽기를 바라는 것이요 네 외아들이 병들기를 바라는 것과 진배없느니라. 모든 중생은 다 부처님의 외아들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믿건 아니 믿건 모든 중생들은 다 부처님의 어린 외아들이니라. 마땅히 존중하고 살펴야 하리니, 네 복덕과 지혜를 모두 이 중생들의 행복을 위하여 아낌 없이 내어 주라.네가 번 것 중에서 네 처자식과 부모 공양을 위하여 쓸 것만 놔두고 나머지는 다 다른 중생들의 행복을 위하여 내어 놓아라.그들이 입을 것과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어서 고통을 당하도록 놔두지 말라.그리하면 너의 어진 업이 마침내 저 부처님의 성품과 같이 평등하여지리니, 큰 바다가 모든 물을 다 받아 들이되 차별함 이 없이 평등하게 모든 중생들을 먹이고 높이 또한 평등하기가 오히려 냇물이나 강물 보다 더 평등하니라. 냇물이야 흐르면서 높낮이가 생기지마는 바다에는 그러한 높낮이가 없지 않으냐?

수자타야 ,가난한 이는 바로 너의 복전이니라, 수자타야,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저 과부는 너의 복전이니라. 수자타야, 병들어서 신음 하면서도 약 한번 변변하게 써 보지 못하는 저 병자는 너의 말 할 수 없이 큰 복전이니라. 힘 닿는 대로 네가 신경을 써서 네게 있는 재산과 힘과 지혜로써 긍휼히 여겨 베풀면 이것이야 말로 네가 부처님을 가장 잘 공양하는 아들 됨이니라. 부처님은 복전 중의 으뜸 가는 복전 인데 네가 이렇게 부처님을 공양하였는데 그 복이 어디 가겠느냐?

육체의 눈만 가지고 사물을 대하는 사람은 밖의 불상을 보고 절을 하고 공양을 하며 돈을 집어 넣지만 마음의 눈을 가지고 사물을 대하는 사람은 안의 마음을 보고 그 마음을 살펴서 병 듦에서 벗어가고 싶어 한다면 갖은 방편으로 그 마음을 병듦에서 벗어 나게 하고 가난과 곤궁 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면 자기의 재물과 풍요를 베풀어서 가난과 곤궁 함에서 벗어나게 하고 죽음의 공포에 사로 잡혀 있음을 보면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설하고 보여 줌으로써 그로 하여금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나니 부처님은 불상이던지 실상이던지 너의 공양이 따로 필요 할 만큼 곤궁하신 분이 아니니라.

어떤 아버지가 외아들을 집에 두고 잠시 출타하면서 이웃집 사람에게 부탁 하기를 “내 외아들이니 내가 없더라도 당신의 외아들인 양 여기여 보살펴 주면 마치 나에게 직접 베푼 것이나 진배 없이 여길 것입니다” 하고 부탁 하였다면 부탁을 받은 이로써 마땅히 떠나간 그 아비의 사진이나 형상을 보고 아침 마다 절하고 돈을 갖다 바칠 것이 아니라 그 외아들을 보살펴 곤궁하지 않게 함이 그 아비 된 자를 존경하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 물론 불상을 대하여 그리 하는 것도 마침내는 그 공동체가 유용하게 사용하겠지만 네 이웃의 부처의 외아들을 놔두고 형상을 찾아가 섬김이 부처의 법에 맞지 않느니라.

부처님은 형상으로든지 실상으로든지 너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분이시다.형상으로는 무정물이요,실상으로는 이미 법계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수자타야 무엇이 네 이웃이냐? 수자타야 네 마음이 가는 곳, 네 몸이 닿는 곳은 다 네 이웃이니라.네 마음이 가는 곳이 방 바닥이면 그 방바닥에 기어 가는 개미가 네 이웃이요,네 몸이 가는 곳이 숲속이라면 나무에 기대어 사는 벌레 한 마리가 네 이웃이다. 하물며 너를 믿고 의지하는 가축들일 까 보냐!

수자타: 하지만 유마님 그렇게 된다면 해충들이나 독을 가지고 남을 해치는 독사들 까지도 그냥 두게 되면 사람들을 해칠 것입니다.

유 마: 해충이나 독충의 경우에 그것이 너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 있는 것은 그냥 놔두어라.잠재적으로 너를 해칠 것이다 하는 이유만으로는 너무 지나치게 해치는 것이 되어 살생이 된다. 여기 한 예가 있다.

어느 산중 법당에 여름 이라 문을 죄다 열어 놓고 있어서 저녁 불공하려고 보니 빈대들이 우글거렸다 고 한다. 시자가 그것을 보고 없애자니 살생일 것 같고 놔두자니 온통 빈대로 뒤 덮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에 큰 스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문을 걸어 잠그고 살충제를 뿌려 없애라고 하였다.이 말을 들은 시자는 "그것은 살생이 되어 차마 어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더니 그 큰 스님께서 호통치시며 말씀 하시기를 "그러면 너는 법당을 빈대로 장엄 하려고 함이더냐? " 하여 마침내 빈대들을 살충제로 다 없애 버렸다. 이 일화에서 수자타야 너는 어느 편에 서겠느냐?

수자타: 참으로 그 큰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현명하십니다. 어찌 법당을 빈대로 장식하게 놔 둘 수 있겠습니까?

유 마: 일견 그렇게도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치 않는다.
빈대 한 마리는 하나의 마음이다. 거기에도 분명 나와 똑 같은 마음이 들어가 집을 짓고 살고 있다. 빈대의 업이라는 일을 짓고 빈대라는 집을 지어 거기에 들어가 사는 것이 바로 빈대이다. 비록 법당이 빈대 들로 어수선하긴 하지만,첫째 불상은 살과 피로 되어진 것이 아니니 빈대들이 암만 들러 붙어도 해가 되지 않으며,둘째,빈대들이 그나마 무슨 인연으로 부처님 법당에 가득 한지는 몰라도 혹 과거의 어떤 인연으로 부처님의 이름과 그 모습을 뵙고 싶어서 무리 지어 나타나 예불 하려고 함인지 누가 알겠느냐? 빈대들로 하여금 법당에 그냥 있게 하였어도 좋았을 것을 일부러 청소해 부렸으니 나 같으면 빈대들로 같이 예불에 참여하게 하고 법을 듣게 하여 그 인연으로 언젠가는 다시 사람 몸을 입어 부처님을 모시게 하였을 것이다.

내 생각일 뿐이지만,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당장에 나를 해치지 않는 것들은 저것이 독충이다 라는 이유 만으로 일괄하여 광범위하게 없애지는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옛 수행자들은 숲속에 거하면서 좌선을 할 때에 몸에 모기가 달라 붙고 벼룩과 이가 살았어도 일부러 떼어 놓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까지야 못 하더라도 일부러야 없앨 필요가 있겠느냐?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정한 수행자에게는 독충이나 맹수들이 함부로 해치려는 마음을 갖지 못한다. 저 사람은 나를 확실히 해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확신 한다면 그 어떤 어리석은 짐승이나 독충조차도 일부러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일부러 해치는 것은 오히려 사람 뿐이다.

수자타: 유마님,하지만 저는 손이 가난하여 겨우 제 입이나 풀칠 하는 주제에 마음만 있을 뿐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일입니다. 언젠가 돈을 벌면 반드시 유마님 말씀처럼 하겠지만 지금은 어떻게 손을 써 볼 입장이 아닙니다. 부끄럽습니다.

유 마: 수자타야, 네 마음이 그러하다면 네 마음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너무 조급해 하지는 말아라. 나는 다만 지금 네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만 말 하다가 여기 까지 오게 된 것 뿐이다.그것은 바로 살생을 그치라는 것이다.

이것은 네게 손이 가난 하다고 못 하는 것이 아니다.이것은 네가 나중에 시간이 나거나 돈을 벌어서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 자리에서 그치는 것이다. 마치 도둑이 도둑질을 그치는 것처럼 당장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침이란 이렇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네게 지금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남에게 먹이라는 것이 아니니라. 독 있는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이니라. 사람이 아무리 배가 고파도 독 이 있는 음식을 먹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도 독이 있는 음식을 자꾸 먹으려 하니 이 어찌 가련한 일이 아니겠느냐? 살생은 바로 독이 있는 음식을 네 마음에 삽입하는 것이니라.

살생이 마음에 가득한 사람은 설령 다른 생명을 먹여 살린다 해도 마침내는 자기가 잡아 먹고자 함이니 하는 짓이 다 살생의 업이 되느니라. 걸어도 살생의 업이요, 멈추어도 살생의 업이요,앉아도 살생의 업이요,누워도 살생의 업이 된다. 이 사람은 저 마당에 키우는 개 돼지 닭 소 오리 들에게 때 마다 기름진 음식을 주고 키우지만 살생의 마음으로 하는 까닭에 먹이를 줄 때 마다 살생의 업을 짓는 것이니라.

수자타: 그렇다면 유마님, 어떤 사람은 양계를 하여 생활하여 나가고 어떤 사람은 양돈을 하여 생활을 꾸려 나가고 어떤 사람은 목장에서 소를 길러 그것을 잡아다 팔아서 생활을 하는데 이 사람들이 다 살생의 업을 짓는 것이라고 합니까?

유 마: 수자타야,사람마다 다 저 나름대로의 깨달음이 있다. 눈 봉사에게는 눈 봉사의 방법으로 걷는 법이 있지만 눈 뜬 사람 만큼은 못하다. 저들의 생업이 다른 생명을 취하여서 만 영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들이 “이것은 법에 맞는 생업이 아니다” 라고 깨달을 때에 비로소 그침이 있다.

눈 봉사에게 아무리 갈 길이 바쁘다고 뛰어 가게 하거나 뛰어 가는 것을 보고 그치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눈 밝은 사람에게는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인 것이다. 눈 봉사가 뛰어가고 있으면 “당신은 뛰어 가는 것을 그치시오 반드시 화를 당할 것입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

생업을 잘 선택하여야 하는 것은 여덟 가지 부처님 법에 맞는가 안 맞는 가로 알게 되고.인격(목숨)이 천박한가 아니한가는 바로 이 여덟 가지에 해당하는가 아닌 가로 알게 된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바르게 목숨을 이어 가는 것이니라. 바르게 목숨을 이어 간다 함은 남의 목숨을 취하여 자기 목숨을 이어가지 않음을 말한다. 네가 부처님 법을 잘 이해 하였다면 너의 생업도 그에 맞게 잘 선택하여야 할 줄로 안다.그것으로 나에게 시비를 걸지 말아라.

그러나 만일에 어떤 사람이 살생을 생업으로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그가 만일 불자라면 理無碍(이무애)를 관하여야 하리라. 이무애를 관 함으로써 그는 말로는 설명 할 수 없는 고급 이치에 들어가 짓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는 안과 밖이 평등한 적멸의 즐거움을 잃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살생이란 없느니라. 이 이치는 단숨에 말 할 것이 못되므로 여기서 그만 두자꾸나.

수자타: 유마님, 오늘 제가 묻고자 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만,염려 하지는 마세요.저는 이후 일부러는 결코 다른 생물들의 목숨을 끊지 않겠습니다. 이 일은 제가 목숨이 있는 한은 그 모든 생에 있어서 감히 지켜 나갈 것입니다. 저 역시 태어날 때에 다른 것은 몰라도 저절로 부처님이름을 기억하게 되기 바라며, 기억하여서는 늘 생각할 것입니다. 어찌 이 거룩한 생각으로 그런 살생의 뜻을 내겠습니까?

유 마: 좋다 좋다. 수자타야 네 말이 참으로 듣기에 좋구나. 그래 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더냐?

수자타: 요즘 듣자 하니 여기 저기서 무슨 수련회니 공부니 하면서 참선 비슷한 아류의 공부 방법들이 유행이라 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가야산 자락 어디에선가 한다는 명상 방법인데 그들은 죽음이라는 것을 명상하며 깨달음을 얻는다 합니다.일주일 내지 3주일만 하면 확연히 깨달아서 너도 나도 다 자증하기까지 한다는데 과연 그것은 어떤 이치에 의한 것입니까?

유 마: ^^
수자타야, 사람 마다 다 저 나름대로의 경험과 이치가 있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인도의 요가 수행법은 매우 긴 역사와 전통에 근거하여 오늘 날 까지도 많은 수행자들이 요가적인 방법으로 나름대로의 어떤 초월적인 경험을 하고 있다. 부처님도 사실은 처음 출가하여서 이 요가 수행자들을 스승으로 삼고 초월적인 경험을 많이 하셨느니라.

아마도 이 지구상에서 인도라는 나라에서 발달된 요가 수행법만큼 잘 발달된 수행법이 달리 없지 않나 생각된다.기독교나 이슬람 계통에서의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고작해야 기도나 찬양 따위가 전부이므로 내면세계의 깊은 체험은 좀처럼 찾아 볼 수가 없고, 중국에서 발달된 도가 계통의 수행법은 컴퓨터의 이진법과 같은 음양의 이치에 비롯한 것이니 그 음양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엔 창조주란 무엇이냐 하는 것과 같이 결국엔 공허한 것이다.

음양이 통하는 보통세계에선 잘 먹혀 들어가지만 음양이 먹혀 들어 가지 않는 세계에선 도시 캄캄하기는 하나님과 마찬가지 일 뿐이다.또한 음이나 양을 하나의 기로 파악하는데 주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대신 기를 등장 시키는 것 뿐인데 이 모든 하나님이니 음양이니 氣이니 하는 것은 이제 과학이 담당해야 할 분야로 넘어온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인도의 요기들이 행하는 요가는 인간의 행복이 최소한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고 하는 주관사상에 고대부터 일찍 눈을 떴다는 데에 경의를 표 할 만 하다. 그 중에서 특히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하는 명상들은 인간에게 죽음이란 어떤 경험일까 하는 궁금증에 대한 것이다.미리 죽음에 근접해 봄으로써 실제 미래의 나의 죽음에 있어서 경험한 자로서의 意識을 가지고 잘 죽게 되기를 바라는 것에서 그러는 것이다.즉 미리 훈련을 해 놓는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죽기가 싫은데 거기에 근접하라니 정말 무시무시한 주문이구나. ^^

수자타: 죽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과연 경험 할 수 있는 것입니까?죽기 전에는 죽음이 아니므로 죽음에 아무리 근접 해 보았댓자 죽음을 경험 하는 것은 아니며,죽은 후에는 이미 죽어 버린 이로써 자기의 죽음을 경험했다고 볼 수도 없으니 과연 인간이 그것을 경험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죽었다 살아 났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보고 되기는 하지만, 그 경우에도 엄밀히 말하면 죽음을 경험 했다기 보다는(죽음을 경험 해다고 하는 것은 죽어 버린 경우이다) 죽다가 살아난 것을 경험 한 것 뿐입니다.

유 마: 글세다.. 죽음이란 뭘까? 그것은 과연 인간이 경험 할 수 있는 것일까?
나로서는 여러 번 죽어 보긴 했지만 기억에 없으니 그저 막연히 공포감으로만 기억 될 뿐이구나.^^

하지만, 죽음을 명상함으로써 깨달음을 신속히 얻는다는 것은 가짜 약을 파는 행위이다.네가 말 한 것처럼 죽음은 살아 있는 자로서는 경험이 불가능 한 것이다.달에 암만 가까이 근접 해 봤자 달에 착륙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달에 착륙 했음을 경험 했다고 할 수는 없다.마찬가지로 죽음에 아무리 근접해 봤자 진짜로 죽어 버리는 경우가 생길 망정 죽음을 경험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개미에게 아무리 점프를 설명 해 보았자 개미는 점프를 모른다.점프라는 것이 있다고 말 해 주어도 개미는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다.개미의 차원에서는 점프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죽고 나서의 일도 차원이 우리와 다르다.누가 알랴! 2001년에 죽은 사람이 후삼국시대에 태어 날런지,대한민국에서 죽은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태어 날런 지 ……. 죽음의 시간과 공간은 죽기 전의 시간과 공간과 일치 하리라는 법이 없다. 원인과 결과가 일정하다는 것은 이치가 일정 한 것이지 원인과 결과가 일치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수학에서는 차원이 무척 많다고 들었다.이론 뿐이지만 어쨌든 우리가 사는 3차원의 세계와는 다른 고차원의 세계는 얼마든지 수학적으로 증명이 된다.길이와 높이를 가지고 넓이를 잰다는 것은 우리 세계의 물리 법칙이지 길이도 높이도 없는 세계의 법칙은 아니다. 죽음은 우리가 경험 할 수 없는,그러므로 인식의 지평선에 있지 아니 하므로 죽기 전에는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는 사건이다.우리는 내일을 미리 경험 해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죽음을 미리 경험한다는 것은 만일 그러한 것을 경험했다고 주장 하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널리 사람들을 모은다면 그는 약장수이다.그 약이 진짜일지 아닐지는 꼭 먹어 보아야 알 것 인가? 수자타야, 내일을 경험 하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다만 오늘 내가 이러이러한 일을 해 두면 내일은 저러저러한 일이 생길 것이고 그러면 나는 이러이러한 일은 하고 저러저러한 일은 하지 말아서 내가 원하는 내일을 만나리라 하는 것이 전부인 우리들로서 내일 그 자체를 오늘 만날 수는 없는 것이다.그런데, 오늘 내가 죽는 연습을 해 둔다면 내일 죽는 일 밖에 더 만나겠느냐?

그리고 깨달음은 죽음에 대한 사소한 것이 아니다, 깨달음을 죽음에 대하여 쓰는 약이라고 안다면 그것은 감기에 MRI 검사기를 들이 대는 것과 같은 비율로 어긋나는 주장이다. 가소로운 일이다.그들이 만일 이러한 견해를 짓는다면 연습 한대로 남들 보다 일찍 죽을 것이 분명하다. 수자타야, 마음은 신묘하다.연습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이니라.

죽음에 대하여는 차라리 침묵으로 맞이 함이 나을지 모르겠구나.그것은 경험이다.내일에 대하여 우리는 아무런 소리도 지르지 않는다.그것은 경험일 뿐이다.그러나 경험이라고 하는 순간 이미 경험은 새로운 경험으로 대체되고 말 뿐이다.그러므로 진정한 경험은 없다.기억은 경험이 아니다.기억은 과거치이고 경험은 현재치인데 과거치로 현재치를 잴 수는 없으므로 기억은 경험이 아니다.마치 어제를 오늘이라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우리에게는 수자타야, 무엇 보다도 죽음보다도 더 시급히 극복하여야 할 문제들이 많다.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다. 네가 살생을 그치지도 못하면서 그 탐욕의 마음으로 죽음을 대하려 하는가? 어리석다 미물이여, 너는 너에게 죽임을 당한 모든 의식들의 저주로 한 순간도 편히 음계(陰界)에 머물지 못하리라. 또한 네가 까닭 없이 남이 와서 네 뺨을 후려 침을 당하여 팔을 걷어 부치는 성내는 마음을 극복 하지도 못한 채 죽음을 명상하려는가? 어리석다 미련한 것이여,조그만 한 것도 들지 못하면서 큰 것을 들려 하는 구나. 또한 네가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그 공동체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존경도 갖지 아니하고 죽음을 철학 하려는가? 어리석다 미혹한 것이여,살아 있을 때에 눈만 감아도 죽은 이 이거늘 하물며 죽음을 대함이겠는가?

수자타: 잘 알겠습니다.저도 이미 그런 수행법이 미심쩍게 생각되었습니다.부처님은 이러한 경우에 어떠하셨습니까?

유 마: 부처님 재세시 부처님의 명상법 중에 백골관이라는 명상법이 있다.이 명상법은 수행자가 무덤사이에 거주하면서 날 마다 죽어 날라오는 시체들을 관하면서 그 시체들이 시간시간 변하여 없어지고 드디어는 백골로 된 것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관법으로 행하는 것이다. 이 명상법의 주된 목적은 이 몸을 나라고 여기는 고질적인 습관이 강한 사람들에게서 이 몸에 집착 하는 마음을 제거 하려고 한 것인데 어떤 사람들은 도가 지나치게 되어 허무한 마음공부를 해버려 자살 하는 사람들이 생기곤 했었다.

부처님이 직접 살아 계실 때에 부처님 밑에서 공부를 하던 사람들도 그러했거늘 하물며 부처님이 없는 시대에 함부로 죽음을 관하는 공부를 함이겠는가? 아주 특이한 인연이 아니면 부작용이 심하여 권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다. 게다가 이 관법은 몸에 대하여 몸으로부터 욕심이 치성한 사람들에게 권했던 만큼 만일 몸에 대한 무아관(無我觀)이나 무상관(無常觀)이 이미 서 있다면 달리 꼭 그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이 좀 무식했다.예컨대 어떤 사람은 음욕이 강하여 부처님에게 출가 했어도 여자에 대한 음욕을 버리지 못하여 고민 하던 중에 자기의 거시기를 잘라 버리려고 하던 중 부처님이 마침 그것을 아시고는 그 비구를 찾아와 말씀 하시기를 “거시기를 잘라 버린다고 음욕이 잘라진다면 도를 못 이룰 사람이 없을 것이다.너는 마차가 뜻하는 대로 가지 않는다고 소를 죽여 버릴 셈이냐?” 고 꾸짖으셨다.

수자타: 말법 시대의 유행가들입니까?

유 마: 말법시대의 유행가들이다.
그러한 수행은 말하건대 살생 하나만을 그침 만 못하다 하겠구나.
살생을 그치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관법이니 즉, 죽음의 관법이 아니라 살리는 관법이니라. 부처님은 중생들을 살리려 오신 것이지 잘 죽으라고 오신 것이 아니다. 죽음이 비록 우리가 뚫어야 할 큰 관문이기는 하나 잘 죽기 위하여 부처님 법을 배운다면 죽을 줄 만 알고 살 줄은 모르는 바보천치의 법이리라. 비록 들어 올 때는 생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들어왔지만 들어 와서는 다시 생사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열반의 법이다.
수자타: ( 힉! 열반? 이 때닷!)

열반의 법에 대하여 말씀 하여 주십시오.
유 마: 콜록 콜록..( 유마의 기침은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져 열반의 법을 설할 수 가 없다. 설 할 수 가 없다. 설 할 수가 없다……..)

수자타: 유마님, 그만 하십시오. 또 기침이 나오니 안으로 들어가 쉬십시오. 저는 다음에 다시 와서 여쭈겠습니다.

유 마: 그려그려,, 에구 이 놈의 기침…언제나 나을 런지..안 나아도 그만이지만..
(수자타는 여느 때처럼 안으로 들어가 따뜻한 물을 만들어 주고는 유마의 유난히도 흰 머리 칼을 내려다 보며 말 할 수 없는 비애감에 젖어 유마의 마당을 빠져 나오며 생각 했다.)

수자타: (열반은 기침 소리이다. 왜냐하면 열반의 문제가 나오면 항상 기침을 해 대시니 열반이 기침소리가 아니겠는가? 아니면.. 열반을 설할 수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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