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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꿈을 꾸었다.
꿈 따위는 꾸지 않은지 이미 오래 인데,어쩐 일인지 간밤에 꿈을 꾸었던 것이다.
하늘의 태양이 갑자기 시커멓게 변하고 달 마저 빛이 없는 시커먼 공으로 변하고 말았다.
태양과 달이 그 빛을 잃어버린 틈새로 그 동안 별볼일 없었던 별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촛불처럼 더욱 기세를 높여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이 좀처럼 없었던 꿈에 여느 때 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세 발자국이면 사방이 닿는 조그만 천연동굴을 나와 천천히 숲속을 거닐고 있었다.
항상 거니는 그 숲은 이미 나무들마다 이름을 지어줘 부르며 아침 저녁으로 문안을 주고 받곤하였는 데,오늘따라 주고 받는 인사대신 불안한 예감이 섬짓섬짓 드는 것이 예전에 없던 일이다.

이름이 ‘끝섬’이라는 나무,경행의 맨끝에 반환점처럼 서 있는 나무여서 그가 만들어 준 이름이 ‘끝섬’인 나무에 다다랐을 때,갑자기 그의 발 밑이 지진처럼 흔들리는 진동에 현기증을 느꼈다. 이 심상치 않은 진동은 진원지를 알 수 없는 먼 거리에서 용트림처럼 꿈틀대어 온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그는 발걸음을 빠른 보행으로 바꾸어 동굴로 돌아왔다.

돌아오자 마자 그는 길상초로 엮어 만든 좌복을 꺼내어 엉덩이에 대고는 삼매에 들어갔다.
이 삼매는 맨 처음 그가 스승을 찾아 방황하고 있었을 때,어느 나무아래에서 만난 그 분이 가르쳐 준 그 삼매였다. 그는 이 삼매의 힘으로 그분을 만난지 여드레 만에 수다원을 지나 사다함을 지나 아나함을 지나 아라한의 과위에 들어 그분을 기쁘게 해드렸던 것이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왜 나에게 이런 예전에 없는 일이 생기는 것인가? 나에게는 이미 마음이 흔들림이 없으며,마음에 투쟁이 없으며,마음에 오고 가는 반연이 없어진지 오래 인데,왜 이런 불길한 조짐들이 나타나는 것일까? )

그는 천안(天眼)을 열어보기로 했다.
알고자 하는 일은 지혜의 눈(慧眼)으로 안다.
보고자 하는 일은 하늘의 눈(天眼)으로본다.
그런 그에게도 천안통은 남용하여 본 적이 없다.
보고싶으면 몸소 몸으로 가서 보는 것은 그의 일관된 고집이기도했지만,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는 그에게 아주 독특한 생활방식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마음의 눈을 오래간 만에 열어 보는 것은 이 일이 그 만큼 심상치 않다고 예감한 것이기 때문이다.

천안을 열어 봤을 때,그는 혼절할 만큼 놀라는 광경을 봤다.
겹겹의 사람들에 빽빽이 둘려 쌓여있는 금빛 나는 관(棺)이 보였던 것이다.
온 하늘과 땅에 가득 빽빽하게 차 있는 장엄한 기운이 서려 있는 가운데에 금빛 찬란한 관 하나가 숲속 한 가운데에 놓여져 있고,그리운 도반 아니룻다와 아난 등이 가지런히 앉아 슬픔에 잠겨 있는 모습들을 보았다.
그분이었다!
그분이 마침내 80수의 세수(世壽)로 대반열반에 드신 것이었다.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식인가!
이 무슨 마른 하늘에 날 벼락 떨어지는 소식인가!
땅이 흔들리는 것이 생각났다.
보잘 것 없는 별들이 태양과 달이 사그러진 후에 빛을 내는 꿈이 생각났다.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그분이 가시려고 그런 꿈이,그런 변고가 나타난 것이었구나…
그 꿈은 번뇌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징조로 생겨 난 것이었구나…

그는 천천히 천안으로 금관의 주변과 일의 진행과정을 지켜보고는 삼매의 힘으로 마음의 슬픔을,충격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른 때 보다 더 의식적으로 천천히 삼매에서 나와 천천히 무릎을 펴고 천천히 걸어 동굴 밖으로 나오려고 할 때에 마침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매일 아침마다 문안을 여쭙던 상수제자인 새샤드리가 들이닥치며 무릎을 꿇는 것도 잊은 채 숨가쁘게 말했다.

“스승님이시여,아까 어떤 장사꾼이 지나다가 저에게 전해 준 소식에 의하면,세존께서 이미 쿠시나가르에서 며칠 전에 열반에 드셨다 합니다.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여기서 저기까지는 사흘 내지는 나흘 거리인데 우리가 아무리 빨리 간다 하더라도 이미 다비식을 마쳤을 지도 모릅니다. 흑흑흑..”

그는 당황에 떠는 제자 새샤드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침착한 어조로 자기의 마음을 잠군 채 말했다.

‘새샤드리여,울지말라.우리의 일은 슬픔이 아니라 그리움일 것이다.슬픔은 그리움에 비하면 매우 짧고 보잘 것 없는 것이다. 가서 남은 제자들을 다 거두어 모아라.우리는 지금 곧 쿠시나가르를 향할 것이다.그들은 우리가 당도하기 전에는 결코 다비식을 마치지 않고 기다려 줄 것이다.

“스승님이시여,스승님께서는 이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소식에 놀라지도 않으십니까? 슬프지도 않으십니까?”

(아,이 철 없는 친구여,나의 슬픔 나의 비통함은 내가 먼저 그 분에 앞서 열반에 들지 못한 후회에 빠질 만큼 깊고 참혹하다.그러나, 우리는 이미 강을 네 개나 건너온 노련한 늙은이들이다.더 이상 건널 강도 없는 마당에 놀라움은 아무런 두려움도 주지 못한다)
고 마음으로 대꾸하며 그는 말했다.

“새샤드리여,너는 어서 가서 제자들을 모아라.시간이 없다.서두르자.”

새벽동이 제법 틀 무렵,그와 함께 주변에서 수행하던 모든 제자와 도반들이 그의 동굴 앞으로 다 모였을 때에 그는 동굴 바로 앞에 사람 무릎만큼 솟아나 평소에 그가 햇빛을 쪼일 때에 쓰던 바위 위에 올라 그들에게 침묵을 요구하며 말했다.

“여러 대덕들이여,방금 우리는 우리의 큰 스승이신 세존의 열반소식을 들었소.여러분 중에는 이 큰 비보를 당하여,슬픔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슬픔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미 슬픔을 극복한 사람 등으로 나뉘어 있을 것이오.그러나,아셔야 하오.세존의 열반은 대반열반이며,우리는 그분의 직제자들이오.나는 지금 신속히 대반열반지를 향하여 갈 것이니,슬픔을 참는 사람과 슬픔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여기에 남도록 하고,오직 슬픔을 이긴 사람들만이 나와 함께 저 쿠시나가르를 향하여 갈 것입니다. 슬픔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슬픔을 참는 사람은 지금 여기서는 가능할 지 모르나,만약 세존의 모습을 뵈면 참았던 것이 터질지 모르니 여기 남아 있는 것이 좋겠소.우리의 법에는 참는다는 것은 참지 못한다는 것과 아무 다름이 없습니다. 열반지에 가면 우리 출가수행승들만이 아니라,일반세속의 왕들과 대신들과 신자들 그리고 모든 하늘의 천신들까지 까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이 모여있는데,세존의 가르침을 직접 받고 배운 우리들이 하나의 주검 앞에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마음의 흠을 보인다면, 그들이 세존의 가르침에 의심을 하고 다함이 있고,한계가 있는 가르침으로 오해를 할 소지가 있으므로, 마땅히 자기 마음의 슬픔을 이미 극복한 사람만이 이 여행에 동참하여야 할 것입니다. 부디 내 뜻을 이해하여주기 바라오.”

삼삼오오의 대중들은 그렇게 하여 자기 마음이 이미 스스로 슬픔을 잘 극복한 사람들만 한쪽으로 모이고, 나머지들은 자기의 슬픔이 세속인들과 천인들에게 향기롭지 못하게 비쳐질 것을 우려하여 마음은 천 만 번 가고 싶지만, 세존과 세존의 수행승단의 아름다움을 위해 발걸음을 꺽기로했다.
그렇게 하여 모인 사람들이 약 500인이었다.

그는 남아 있는 대중들에게 충분한 위로와 인내를 당부하는 말을 남긴 뒤 이미 슬픔을 잘 극복한 사람들과 함께 무리지어 쿠시나가르를 향하였다.
두 줄을 지어 질서 정연하게 걸어 가는 그들의 발걸음마다에 묻어 일어나는 먼지들로 새벽의 숲길은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반나절을 걸은 후 대중은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숲 속에 들어가 쉬거나 좌선을 하고,한 팀은 두 사람 씩 나뉘어 마을로 나가 음식을 탁발하여 와서 하루 정오 한끼만 먹는 절제와 만족의 아름다운 의식을 나누어 가진 뒤,다시 차 한잔 마실 만큼 걸었을 때에 그 중 앞에 가던 사람이 문득 맨 앞에 가던 그를 불러 세우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덕이신 마하가섭이시여,잠시 제가 드릴 말씀이 있으니 대중(大衆)을 멈추도록 하여 주십시오.”

그는 천천히 등을 돌리며 그의 말대로 하기로 하고,두 줄로 걷던 대중을 향하여 오른 손을 높이 들어 멈추게 하고 근처의 나무 숲 우거진 곳으로 둥글게 앉도록 했다.
500 여명의 대중들은 이미 그런 움직임에 아주 잘 훈련된 사람들이어서 아무 소란 없이 조용히 ,마치 기러기가 한 곳으로 움직이듯이 무리 지어 둥글게 앉았다.

그가 그 할 말이 있다는 사람을 한 가운데로 나오게 한 다음, 말했다.
“대덕이신 피윳다시여,이제 말씀을 하십시오.당신은 아무 이유없이 대중들을 멈추게 할 사람이 아닙니다.당신은 희롱하는 말로 사람들을 불러 세우지도 않는 도반이십니다.여기 대중들에게 당신이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십시오,”

피윳다는 대중 가운데서 조용히 걸어 나와 대중들을 한바퀴 돌아보며 동료사슴이 동료 사슴들을 부르는 다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대덕들이시여,우리가 가는 곳은 우리의 걸음으로 사나흘은 족히 걸어야 하는 곳입니다.세존께서는 이미 열반에 드신 지 며칠 째라, 벌써 다비식을 마쳐버리고도 남을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우리를 기다려주고 있을 것을 기대하여 가고 있습니다만,만일 여기에서 사나흘을 더 지체하게 한다면 비록 현지에 계신 제자분들이야 우리를 위하여 더 기다리자고 할지라도,다른 세속인들의 원망이 말이 아닐 것입니다.그러므로 여러 대덕들의 장노이신 여기 마하가섭께와 여러분들께 우리가 가진 신통력을 써서 거기에 이르기를 제안하고자 감히 여러분의 발걸음을 세우게 하였습니다.여러분의 고견을 듣기 바랍니다.”

그의 말이 간결하게 끝나자 여기 저기서 웅성이는 소리들이 마치 벌들의 날개 짓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기도 했고,어떤 이들은 자기들 중에 으뜸 가는 지도자인 마하가섭을 바라보며 그의 대답을 듣기를 원했다.
그 중에 나이 많은 비구 하나가 앞으로 나와 말하기를 청하고는 가사를 고쳐 매고 말했다.

“존경하는 대덕 피윳다시여,대덕께서는 방금 우리가 신력을 써서 허공을 날아 세존의 열반지에 이를 것을 제안하셨으나, 우리들 중에는 비록 마음의 슬픔이나 기쁨따위에는 동요하지 않지만,신력에는 관심이 없어 체득하지 못한 분들도 적지 않게 계십니다.신력이 있는 분들이야 허공을 날아 열반지에 간다 하지만,이들 신력이 없는 분들은 어떻게 간다는 말입니까?
이미 우리는 마음의 일을 기준으로 하여 선발되어 열반지를 향하는 마당에 다시 신력을 기준으로 바꾼다는 것은 일관된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닌 것 같아 뜻 밖입니다.부디 이에 대한 고려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 말이 있자,여기 저기서 다시 웅성웅성 자기들 끼리 의견을 나누는 소리들로 숲은 별안간 시끄럽기 시작했다.

애당초 이 문제를 제기했던 피윳다 비구가 자리에서 나와 다시 한번 가사를 단정히 하고 말했다.

“ 그 점에 대해서 저도 이미 생각해봤습니다.제가 천안으로 살펴 보니,우리 대중들의 절반은 이미 신족통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만일 그들 신족력을 가진 분들이 신력을 가지지 않으신 다른 대덕들의 손을 잡고 간다면 아무 어려움 없이 세존의 열반지에 지금 이를 수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점은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사실 그랬다.
여기 세존의 제자 중에 한 사람도 세존의 얼굴을 친히 보고 가르침을 받지 못한 제자는 없었다.
모두 다 세존의 살아계실 때의 고요한 발걸음과, 잔잔한 파도가 해변에 닿을 때의 그윽한 목소리와,가늘고 긴 눈으로 늘 친구처럼 바라보는 그분의 눈빛을 기억하는 그들로서는 마땅히 이 여행은 신속하게 가지고 가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 중 절반은 이미 신족통을 아는 이들이었다.만일 그들이 신족통을 써서 가기로 했다면 힘센 사람이 팔을 구부리는 가벼운 힘과 손이 어깨에 닿는 짧은 시간으로 쿠시나가르에 벌써 도착했을 것이지만,평소 자기네의 규율에 결정적인 관여를 해온 마하가섭의 행보에 말 없이 따라 나선 것은 순전히 그의 평소의 원칙적인 수행방식과 습성을 잘 이해하는 까닭이었다.

그이라고 한시인들 빨리 쿠시나가르에 도착하고 싶지 않겠으리오마는 굳이 이렇게 신족통을 생각하지 않고 걸어가는 것을 택하는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으리라고 믿고 따르는 것뿐이었다.그런데 마침 마하가섭과 동열의 스님이 이 문제를 제기하니 수긍이 가는 면도 있는 것이다.비록 평소에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늘 경계하사 말씀 하신 바,신통력을 함부로 쓰지 말라고 하셨지만,이러한 급한 상황에서까지 해당하는 말씀은 아닐 것이라는 합리성에 기울고 있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마하가섭의 얼굴을 쳐다보며 더 이상 쓸데 없이 늦어지지 말자고 호소하는 듯 다그쳤다.

이에 대해 마하가섭,그는 마치 날쌘 제비가 연못 위를 한바퀴 도는 것처럼 여러 동료 비구들의 마음을 비행하듯 열람한 뒤,자기 이외에는 더 이상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황금색의 가사를 습관적으로 왼쪽 어깨에 둘러 걸치며 대중의 한 가운데로 나아가 말했다.

“여러 대덕들이여,방금 우리의 고귀한 도반이신 피윳다께서 이 일이 시간을 다투는 일이라 마지못한 일이므로 우리가 신통력을 써서 세존의 열반지에 이르러 그곳 사람들의 우리를 기다림으로 인하여 마음이 협소하여지지 않도록 배려하자는 뜻을 말씀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또한 신족통으로 가자는 뜻이 구차히 걷는 수고를 줄이려고 하는 것이 아님도 알고 있습니다.

일견 생각하면 백번 마땅한 일이기도 합니다.
사실 나로서도 오늘 새벽에 세존의 열반을 천안통으로 보아 알았습니다.
그래서 즉시 신족통을 써서 세존의 열반지로 향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 보니 그것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만일 신족통으로 하늘을 날아 거기에 이르면,이미 열반하여 몸을 누이신 세존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입니다.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세존의 앞에서는 몸을 단정히 하고, 발걸음을 죽였으며,목소리에 기침까지도 담그지 않으려고 조심하여 왔던 것을 생각하여 보십시오.그런 우리들이 신족통으로 그분의 열반지를 향할 것 같으면,이는 마치 저 태양과달이 스러진 후에 조그마한 별들이 구차하게 빛을 자랑하려고 하늘에 남아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그리하여 차마 나는 신족통을 쓰지 못하고 이 바쁜 와중에서도 우리의 걸음을 이용하여 사나흘의 길을 가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들만의 일이 아닙니다.
세존의 열반지에 참석하고 있는 무리들 중에는 하늘의 천신들까지 사람들 눈에는 몸을 숨긴 채 가득 차 있는 데,내가 아침에 천안으로 보니,그들이 하늘의 천신들로서 허공을 타고 내려왔어도 차마 세존의 열반하여 누우신 그곳 위로는 조금도 디디지 않고 오직 세존의 열반지에서 반나절 거리 위에서 내려와 몸소 땅 위를 밟고 걸어서 세존이 누우신 열반지를 들어 섰습니다.하물며 우리가 그들 천신들의 세존에 대한 예경에마저도 뒤져서야 되겠습니까?

그들은 우리를 기다려 줄 것입니다.

나는 부끄럽게도 일찍이 세존으로부터 두 곳에서 모두 그분의 마음 법을 전해 받았습니다.그분은 부족한 나에게 당신의 마음의 자리를 반분하여 나눠 앉게 하셨으며,미묘법장인 마음의 꽃을 들여 보여 나로 하여금 그윽히 계합하게 하셔서 정법안장을 갈무리하게 하셨습니다.

설령,사람들이야 초초한 나머지 다비식을 강행할 지라도 그곳에 이미 당도하여 나름대로 그 의식을 관장하고 있는 천신들이 막아 줄 것이며,설령 천신들이야 다급하여 다비식을 강행하고저 할지라도 여래이신 세존께서는 허락치 않으실 것입니다.우리들은 다비식에 늦지 않게 도착 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냥 이대로 걸어가시도록 합시다.그것이 우리의 법에 맞는 것이기도 하며,세존의 가르침에 마지막까지 충실한 것이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보잘 것 없는 우리들을 거두어 주셨던 세존의 은혜에 끝 없는 존경을 표시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일로 더 이상의 의견분할이 없었으면 합니다만 대덕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그의 말이 끝나자 대중들은 한결같이 합장을 하며 동의의 표시를 하였다.
이에 처음 이 문제를 제기했던 도반 피윳다 비구가 앞으로 나아와 정중히 마하가섭에게 사과하며 말했다.

“대덕 마하가섭이시여,참으로 깊은 의견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치 아니한 것은 아니었지만,실로 저의 짧은 생각으로는 미치지 못하였던 관찰이십니다.잠시나마 여러 대중들의 의견을 갈리게 했던 점과,귀중한 시간을 지체하게 했던 점을 사과합니다.저의 사과를 받아 주십시오.”

하며 그는 마하가섭의 무릎아래로 한쪽 무릎을 꿇고 정중히 합장을 했다.
그는 그런 그의 어깨를 추켜세워 일으키면서 아무 말 없이 끌어 안고는 다시 걷기를 재촉하였다.

첫날 밤은 아드비야 라는 숲속에서 지냈다.
몸에 지닌 것이라고는 걸망 하나와 그 걸망 속에 바루와 여별의 옷가지 한 벌이 전부였지만,종일 나흘 길을 사흘 길로 가기 위하여 평소보다 종종걸음으로 걸었던 것이고 보면 피곤하기도 하였다.낮에 마을을 지나오면서 두 팀으로 나누어,한 팀은 탁발을 하고 한 팀은 숲속에 머물며 좌선과 세존의 말씀들을 한데 모아 서로서로 나누어 암송하곤 한 것이 휴식의 전부였던 그들이었지만,아무도 등을 땅에 대고 헐떡이지 않았다.오히려 그들은 평소에 잘 만날 수 없었던 서로 서로를 갈대 숲처럼 잘 의지하면서 마하가섭을 중심으로 둘러 앉아 기억에 남는 세존의 모습과 말씀과 처음 만남과 선정과 계율 지혜에 관하여 의견을 나누면서,마하가섭의 사자음성 같은 법음을 듣기를 청했다.

이는 낮의 피윳다가 가사를 바로 하고 청법가를 읆조리면서 시작되었다.

“ 하늘의 태양이 사라지려 하고,달마저 기우려고 합니다.아직 젖을 떼지도 않은 아이가 어미를 잃은 것 같고,어린 사슴이 드넓은 초원에 덩그라니 내버려짐과 같이 쓸쓸하고 두렵습니다.슬픔보다는 어둠이,어둠 보다는 그리움이 더욱 우리들 가슴을 저미게 합니다.대덕이시여,태양의 빛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달빛이시여,우리로 하여금 저 세존의 사자후를 기억하게 하시어 그리움과 어둠과 슬픔을 잘 극복하게 하사이다.

청하옵건대 대덕 마하가섭이시여,여기 이 숲 속의 빈 자리(空)에 반쯤 내어 앉으셔서 나머지 반을 세존께서 왕림하시어 앉게 하소서. 저희들은 어린 사슴처럼 귀를 기울여 듣기를 바라나이다.”

피윳다의 이러한 청이 끝나자 대중들은 한결같이 익숙한 소리로 ‘듣기를 바라나이다’를 세번 합송하였다.

반쯤 눈을 내리깐 채 저녁 내내 침묵으로 일관하며 다른 비구들이 나누는 세존에 대한 추억의 말들을 들으면서 자기와 세존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며 주고 받았던 말들과 그 후 여드레 동안을 세존 곁에 머물면서 하루도 빠짐 없이 세존의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그 때의 일들을 추상하면서 눈망울 깊숙히 저녁이슬을 머금은 눈물을 보배처럼 감추고 있던 그는 피윳다의 숲의 정기를 죄다 눌러 엎고도 남을 만한 거룩한 청을 듣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밑둥이 잘린 나무그루터기 위에 피윳다가 깔아 놓은 그의 좌복 위에 새가 나뭇가지에 내려 앉듯 조용하게 걸터앉았다.그리고는 아주 느린 동작으로 대중들을 반원을 그리며 훑어본 뒤,슬픈 마음 가득한 것을 조금도 숨기지 않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 숲 속에 가득한 고요함에 비견할 만한 마음을 가진 대덕들이시여, 피윳다의 말씀처럼 우리는 이제 태양을 잃었습니다.태양을 잃은 우리들에게 달인들 있겠습니까? 비록 우리들이 그간 세존의 은혜로운 보살핌으로 일정한 부분 마음에 두려움이 없는 경지를 얻었다하나,그것으로 空果의 자리에 서기엔 마치 저 드넓은 하늘에 별들만 가득한 것과 같습니다.태양 없이 허공이 빛을 잃기는 별들이 아무리 수 많이 반짝거려봐야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처음에 아내와 함께 구도의 길을 가기 위하여 집을 떠나 마침내 세존을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합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도 각자 세존과의 처음 만남을 기억하실 것입니다.때때로 나는 우리가 만일 세존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지금쯤 어떻게 허송세월하고 있을 것인가를 상상하여보면 몸서리쳐집니다.

분명 우리는 지금쯤 저 외도(外道)들의 한 패가 되어있거나,또 하나의 외종(外宗)이 되어 일가를 이루어 귀신굴 속에 들어 앉아 콩깍지나 까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땅에서 심어 하늘에 맺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종일 허공에 마음을 심는 일 따위나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음에 삼독(三毒:탐욕.성냄.어리석음)은 커녕 단 하나의 사소한 음욕도 제거하지 못한 채,도리어 스스로를 속이고 지혜자의 지혜를 살생하며,지혜자의 자리를 도둑질하며,지혜자의 마음을 흐트러지게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아니,분명 그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계(家系)를 떠나고 연인을 떠나올 만큼 충분히 현명할 수 있었을는지 몰라도 결코 지혜스럽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마음을 보십시오.우리는 지금 얼마나 고요합니까? 아마 이 숲속의 모든 고요함을 다 모아 우리 앞에 내 놓는다 하여도 우리의 마음의 고요함에는 백 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아마 이 숲속의 새들의 크고 작은 모든 자유를 셈하여 하나도 남김없이 다 합쳐 우리 앞에 가져다 놓는다 하여도 우리 중에 단 한 사람이 누리는 자유로움에 비하면 어린아이가 만든 수채화처럼 지저분한 것일 뿐입니다.

이것은 다 세존의 은혜입니다.
이것은 그 분께서 스스로 목숨을 내어 놓아 모진 고통의 고행을 감내하시고도 얻지 못한 마음의 안타까움을, 문득 바쳐진 따뜻한 우유죽 한 그릇과 새벽에만 빛나는 샛별을 보시고 비로소 무엇을 얻을 것이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무엇을 가꾸고 무엇을 방임할 것인가,무엇을 고치고 무엇을 돋아나게 할 것인가,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등등에 대하여 확고한 신념을 이 세상과 하늘세상에 고루 내 놓으신 결과입니다.

그분이 펼쳐 놓은 법은 생각과 말과 몸이 한결 같은 것이며,구부러지지 않은 길이며,무엇보다 이 세상에 징검다리 사이의 강물처럼 흔하게 흐르고 있는 자연법적인 이치에 기울인 수고들을 피하게 하는 완벽한 법인 것입니다.

조금 거슬러 오르다가 종내는 도로 떠내려 오고 마는 위선적인 법이 아니며,그마저 손에 쥐고 내 놓지 않은 협잡한 무리의 깨달음이 아니라 손 안에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내어 놓으신 어버이 같은 자애로움에 우리가 천만다행으로 가피를 입은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는 우리가 천 만 억의 목숨을 들어 바쳐 갚는다 해도 부족할 것입니다.그렇지 않습니까?
이 숲의 은혜를 이 숲에 들어 사는 중생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대지의 은혜를 이 조그마한 숲이 어찌 알겠습니까?
숲 속의 허공을 날아 주는 새 한 마리의 자유를 증명하는 것은 땅 위의 그림자 뿐입니다.

우리의 이번 여행이 걸림이 없고 인색함이 없고 지침이 없고 다 함이 없고 소리가 없고 충돌이 없게 하는 것이 우리가 그 분으로 받은 은혜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오늘 밤은 달도 없습니다.저렇게 별들만 반디불처럼 반짝거리며 날개 짓 하고 있습니다. 나는 눈물이 납니다.무엇으로, 또 무엇 때문에 이 눈물을 굳이 감추려 하겠습니까?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내가 세존의 자리에 반분하여 앉는다 하여도 이 눈물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을 다시는 뵙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이 그분을 처음 만난 감동과 행복을 수정하게 하거나 무의미하게 하거나 감소하게 하지 못합니다.비록 항상 곁에서 같이 받들어 모시지 못하였다지만,그것은 그분과 나의 헤어짐에 의한 것이 아니라,믿음에 의한 나누임이었을 뿐입니다.

믿음은 한 곳과 다른 곳이 멀리 있을수록 더욱 돋보이는 법입니다. 한 발자국 거리에 평생을 같이 있는다 하여도 한 몸 속에 들어가지지 않는답니다.그렇다면 십리나 혹은 백리나 혹은 천리를 떨어져 있는다 한들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미 나눈 마음이 자리는 아무리 공간을 늘인다 해도 나누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와 그분과의 공간적 차이는 점점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비록 이 우주가 점점 커져 살찐 어미 닭처럼 부풀어 오른다 하여도 기쁨과 아픔의 공유 속도와 거리는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삼가 이 뜻과 말과 몸을 다하여 세세무궁토록 세존이신 석가모니 붓다에게 목숨마다 열반으로 은혜를 갚으며 귀의할 것입니다.

나모 붓다!
나모 다르마!
나모 샹카! “


마하가섭,이 거룩한 이의 아름다운 세존에 대한 추억이 끝나자 숲 속의 500마리의 사자와 같고 500마리의 사슴과 같고,또한 500마리의 어진 소와도 같은 무리들이 일제히 소리를 세 번을 연이어 ‘나모 붓다 나모 다르마 나모 샹카’를 암송하는 소리가 고요한 숲속의 밤의 적막을 깨는 유일한 흔적이 되었다.

아니 숲 속만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소리는 숲이 가두지 못하여 잽싸게 부풀어 터져 버리는 충전된 풍선처럼 고요함을 삼키며 전 우주를 항해하며 메아리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틀 째 되는 날.
상수제자인 새샤드리가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스승인 그의 곁에 갔을 때에는 그는 이미 나무 아래에서 좌선한 채 있었다. 아침이 되어 일어 난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하여 아침이 와 준 것 뿐이었다. 그는 밤새 등을 땅에 눕히지 않았다.그런 그에게 아침이 되어 일어난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지저귀는 가지가지 새들의 언어가 북적거리는 시장 속의 아녀자들의 언어처럼 구사된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는 새샤드리의 아침 문안을 받았다.

“새샤드리여,서두르자.내일 정오까지는 우리가 쿠시나가르에 도착 할 수 있어야 한다.그들이 이미 우리를 기다리느라 너무 많은 인내를 한 나머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대중들을 깨우고 서두르자.”

스승의 말을 깨끗한 물같이 떠 받드는 데 처녀의 물긷는 손만큼 곱고 우아한 마음을 가진 새샤드리는 황급히 숲 속에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를 청아하게 굴렸다.

일행은 다시 두 줄로 나란히 서열 순으로 서서 걷기 시작했다.
정오가 되어 어제 탁발을 하였던 팀이 숲속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나머지 팀이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마을마다 탁발을 하고는 그것을 둘로 나누어 한끼가 전부인 공양을 한 뒤,다시 종종걸음으로 쿠시나가르를 향했다.

어느 새 다시 해가 저물고 저녁이 되자 일행은 다시 근처의 아함비드라는 숲 속에 들어가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어제의 피윳다가 다시 드높은 열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로 가사의 먼지를 털어내고 대중들의 앞으로 나아와 그에게 법을 설해 줄 것을 거듭 청하였다,

“대덕시이시여,마음의 길잡이시며,붓다의 뜻이 담긴 그릇이시며,바르게 늙어 가는 어른이시여,우리들은 듣기를 바랍니다. 열반의 미묘한 법을 듣기를 바랍니다.세존께서 오신 것과 가신 것의 뜻을 알기 바랍니다.부디 오랜 걸음으로 피곤하여 계시지만, 마치 세존께서 남은 한 방울의 피와 땀을 이 땅을 딛는 모든 이들에게 뿌리는 것을 마다하시지 않은 것처럼 거절하지 말아주십시오.”

거듭되는 어떤 이의 간청과 대중들의 합창으로 청하는 자리에서는 간결한 성품도 고요한 성품도 수줍은 성품도 다 소용없는 법.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를 털어내고 다섯 발가락이 삐쭉삐쭉 튀어나온 짚으로 만든 샌달을 내딛으며 대중의 한 가운데로 나와 피윳다가 깔아 놓은 좌복 위에 앉아 달빛과 같은 은은한 눈빛으로 한 참을 침묵하다가 말을 꺼냈다.

“열반의 시간은 멀어지나 열반의 곳은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하나의 열반은 하나의 시간과 하나의 공간입니다.우리가 가는 곳은 과연 누구의 열반입니까? 우리는 과연 누구의 열반을 위하여 이렇게 가고 있는 것입니까? 세존입니까 아니면 우리 자신입니까? 열반지(地)는 가까워 오고 있으나,열반(의 시간)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벗들이여, 나의 벗들이여,
얼마나 많은 말을 하여야 열반을 남김없이 말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여 보았습니까?

얼마나 많은 목숨의 생과 멸의 수고를 하여야 열반의 묘법을 체득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여 보았습니까?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낀다면,열반은 말할 수 잇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낀다면,열반은 따로 체득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오시고 그렇게 가시는 것입니다.

한 조각의 빵을 먹는 것은 열반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무더기의 똥을 누는 것은 열반이 따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생은 사의 열반이며 사는 생의 열반입니다.
수 없는 생과 사는 수 없는 열반입니다.
이것은 헤아릴 수가 없고,분별하여 가려 낼 수가 없고,측량하여 선을 그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오직 붓다만이 알 수가 있다고 하는 그것입니다.

붓다!
무엇입니까?
그는 바로 나입니다.

누가 나입니까?
나는 바로 전부의 시간과 전부의 공간입니다.

그것은 나타나면 있는 듯하지만, 감추이면 또 없는 듯 한 것입니다.
그것이 법입니다.

이 법을 아는 사람이 바로 우리 승가입니다.
승가만이 이것을 아는 사람 곧, 법을 알고,
법을 아는 사람만이 시공을 알고,
시공을 아는 사람만이 나를 알고,
나를 아는 사람만이 붓다를 알고,
붓다만이 열반을 압니다.

더 이상은 오늘 몹시 피로합니다.
나모 붓다!
나모 다르마!
나모 샹카! “

그의 간결한 법문이 끝나자 숲 속은 기침 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고요함은 열반의 언어이기도 했지만,감동의 징표이기도 하듯…
그렇게 한 밤이 또 가고 있었다.


저녁이면 숲속에 들어가 각자 나무 아래에서 좌선과 휴식을 취하고 새벽이면 어김 없이 세존의 열반지를 향하여 걷곤 하는 강행군을 한지 사흘째 날, 마침내 그는 일행을 이끌고 쿠시나가르 사라쌍수 아래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그가 예견한 대로 조바심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의 의견에 밀려 벌써 세존의 관 아래로부터 불을 댕기는 온갖 노력을 하고 있었다.-이러한 노력은 벌써 며칠 전부터 다비식 준비를 다 마치고 상수제자인 마하가섭 등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충분한 인내심 후에 비롯한 것이었다지만-그러나,웬일인지 횃불을 참나무로 쌓아 올린 곳에 대기만 하면 불은 이내 꺼지고 마는 것을 꽤 오래 반복해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그 나라의 왕을 비롯한 사람들은 이 일이 대체 어인 연고로 생기는 일인가 하고 세존의 제자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사실 세존의 열반으로 인한 다비식은 전부 세속인들인 왕들과 재가 신자들,그리고 천신들의 몫이었다.
출가수행자들의 몫은 다만 다비식이 출가수행자들의 법에 맞게 하도록 지시를 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세존의 등신불을 관 속에 안치하여 다비식을 할 장작더미위에 옮길 때부터 말썽이었다. 사람들이 빙 둘러 사방으로 관을 들고 움직이려 해도 도무지 관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상한 일이다고 여기면서 좀 더 힘 있는 장사들을 추가하여 관을 옮기고자 했으나 허사였다. 관은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린 듯 흔들리지도 않았다. 이 일을 이상히 여긴 왕들과 대신들과 재가 신자들이 아난 등의 제자들에게 알리자 천안제일인 아니룻다가 천안으로 다듬어 보고는 그것이 천신들의 불만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리하여 아니룻다의 말대로 관의 한쪽 열을 천신들의 몫으로 나누어 주고 한 쪽만 사람들이 들도록 하여 운구하도록 하자 비로소 관이 균등히 허공으로 올라 한쪽은 사람들이 한 쪽은 천신들이 들고 다비대에 까지 옮기워진 것이었다.

물론 천신들의 자리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텅 빈 채로 말이다.이런 기이한 일을 이미 경험한 사람들이 이번에는 나무에 불이 붙지 않자 또 다시 동요하며 직제자인 아니룻다와 아난 등에게 찾아가 일을 보고하자 다시 아니룻다가 그것은 상수제자이신 마하가섭의 일행 500 여명을 세존꼐서 기다리시느라고 그런 것이라고 막 말을 하는 참에 마하가섭이 일행 500 여명의 대중들을 이끌고 저 멀리에서 장중한 걸음으로 들어 오는 것이었다.그들은 오랜 걸음이었지만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하가섭,
그의 마음은 비록 그가 이미 아라한의 과위에 올라 모든 ‘번뇌의 마음’씨앗을 다 말려 버렸다 할지라도 ‘번뇌가 아닌 마음’까지 버린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 지극히 순진한 마음에는 슬픔도 하나의 깨달음이었다.

번뇌에 타오르는 슬픔이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이들 만이 나눌 수 있는 이별의 슬픔을 감추지 않는 표정으로 천천히 세존께서 누우신 관을 향해 다가 갔다.

샌달을 즐겨 싣는 그의 발은 다섯발가락이 꾸부정하게 나와 대지에 차분히 균등하게 달라 붙어 있는 채 차라리 대지가 그를 옮기운다고 할 정도로 조용했지만,이슬과 같은 눈물은 인간세계에 인연으로 태어난 모든 이들의 그것과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두 손을 관에 얹은 채 소리 없는 눈물이 세존의 관 위를 흘러 참나무 장작더미 가지 사이로 빗물처럼 툭툭 떨어지고 대지를 촉촉히 적시고 있을 그 무렵,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그리움 탓이었을까? 황금빛의 관 밖으로 아주 천천히 세존의 발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마하가섭음 물론 그 뒤에 한쪽 무릅을 꿇은 채 다 같이 합장을 하고 있던 500 여명의 대중들과 그 뒤에 여러 겹으로 둘러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이 장엄하고도 신기한 광경을 보았다.그는 이 세존의 발현을 세존의 발이 발목까지 충분히 나타날 때까지 한참 동안을 바라보고 있었다.아니 그것은 세존의 발이 한참 동안을 말 없이 마하가섭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으리라. 마치 그 옛날 영산회상에서 세존께서 직접 그에게 연꽃을 들어 보이심으로 마음을 전하신 것처럼, 또는 다자탑에서 세존이 뒤 늦게 들어 오는 그에게 당신의 자리를 반분하여 비워주어 앉게 하시어 동등함을 인가하여 주셨던 것처럼,이제 마지막 그에게 마음의 족적을 남기시고저 함이라 생각하니 감히 소홀히하여 그 마음을 누수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는 일생일대의 최선을 다하여 세존의 발을 응시하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어지신 스승의 발목을 그리운 마음으로 한번 잡아 보고도 싶었지만,함부로 그리 하는 것이 자칫 마지막 그에게 보여주시는 세존의 뜻을 거스리는 것 같아서 끝내 참고 바라보기만 하였다.

세존의 발은 아름다웠다.발 바닥은 둥글게 원을 그린 선들이 마치 우주의 지도를 갈무리 해 놓은 것처럼 나선형으로 둘러 발목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으며,도톰한 살은 평생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걸어 다니신 흔적으로 남아 중생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 보지 않은 곳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것은 마치 그에게 세존의 음성과 같이 고요했으며 분명했다.

“가섭이여,나의 마음을 훔친 도반이며 제자여,나의 두 발을 보아라.네가 보는 이 두발은 내가 남아서 입으로 천마디 만마디를 더 말한다 하더라도 담지 못할 나의 마음이니라.내가 그대를 만나 비로소 나의 외로움을 덜었나니,그대 만큼 나를 잘 알아 주는 이가 이 세상과 저세상에 어디 있더란 말인가! 마치 내 마음을 내가 아는 것처럼 그대는 나의 마음을 이미 두 번씩이나 알아주었으니 이 세 번째의 마음을 모른다 하지 말라.그대가 본 것 그대로가 바로 나의 마음이니, 나의 마음 그대로가 곧 그대의 마음이 되리라.

우리의 만남을 기억하는가?
그 나무 아래에서 내가 선정에 들어 있던 때에 그대는 나를 찿아왔다.나는 지금도 그 때를 그대가 나의 이 두 발을 보는 것처럼 똑똑히 기억하고 있느니라.

가섭이여,나의 도반이며 제자여,아직도 그대는 그대가 내게 왔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가섭이여,내가 그대를 기다렸다가 내가 그대를 만났느니라.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그대가 나타나 준 것 뿐이었느니라.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지금도 그대는 나흘길을 사흘길로 걸어서 나를 만나러 왔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내가 그대를 나흘을 사흘로 기다려 준 것이니라.

참으로 잘 와주었도다 나의 도반이며 나의 제자여.그 누가 따로 있어 나의 도반이 되어주랴! 그대는 마땅히 내 마음을 전해 받았으니 여래의 도반이며 여래의 법을 이어 갈 제자이니라.그대는 기억하라.우리는 일찍이 영산회상에 마음의 법을 주고 받았다.나는 그때 이미 그대에게 열반의 미묘한 마음을 그대에게 전해 주었다. 또 다자 탑 앞에서의 일을 생각하라. 나는 그때 그대에게 나의 불신을 나누어 주었다.

이렇게 나의 마음과 몸을 전해 받은 그대가 있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날에 결코 열반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저 어린 중생들을 놔두고 여래가 열반에 드는 것은 옳지 않게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나에게는 그대가 있으니 내 할 일은 다 마쳤다고 본다. 더 남아 있다고 하여도 여래의 마음과 몸이 이 사바세계에 중복하여 있는 것 밖에 안 되느니라.

그러므로 가섭이여,나의 도반이며 나의 제자여, 너무 슬퍼하지 말라.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것은 우리의 법이기도 하다.나는 이제 마땅히 진정한 열반을 그대와 대중들에게 보이리라.이 열반은 대반열반이며,이 열반은 진정한 열반이며,이 열반은 유위(有爲)가 아니며,이 열반은 갔다가 다시 오는 것이 아니며, 이 열반은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이 열반은 하늘의 신들도 따라 할 수 없는 것이며, 이 열반은 다른 불국토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지켜보시는 열반이니라.

그러므로 가섭이여,석가모니 붓다가 없어졌다고 하지 말라.석가모니 붓다가 갔다고도 하지 말라.석가모니 붓다가 이곳에서 몸을 감추어 저곳에 이르렀다고 하지 말라. 여래는 32상 80종호의 더 없이 깨끗하고 완벽한 색신으로 왔었지마는 마침내 모든 相은 相이 아닌 곳에 들어감을 보이고자 한 것 뿐이니라.

삼천대천세계에서 누가 나의 몸을 흉내내랴! 하지만 이러한 몸도 마침내는 한 줌의 재로 남을 뿐이라는 것을 너희에게 보여주어 몸을 가진 이들의 비애와 서러움을 위로하고자 한다면 이는 여래의 큰 자비인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가섭이여, 나의 도반이며 나의 제자여, 여기 내가 마지막 그대에게 거듭 증명하여 보이는 나의 마음을 받으라.이 열반적정의 마음을 받으라.마침내 우리는 열반의 적정함을 저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리라.

나는 괴로움을 알았고,괴로움의 원인을 알았고 괴로움을 없앨 수 있는 것을 알았고,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알았느니라.그리하여 그렇게 말하였고 그렇게 가르쳤고 이제 그렇게 증명하려 하노라.

여래가 이렇게 증명하는 것은 오직 여래의 마음을 받는 이에게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그대는 이 증명을 가지고 훗날 다음의 부처가 다시 이 땅에 오실 때에 석가모니붓다가 이 세상에 그와 같이 와서 그와 같이 갔었음을 증명하여야 한다..그리하여 불가사의한 열반의 묘미를 증명하도록하라.

가섭이여,이제 그만 눈물을 거두고 대중들을 추스리고 위로하도록 하라.나는 여래가 온 것이 그와 같은 것임을 보이리라.”

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관에서 물러섰다.
세존의 발은 요술봉처럼 줄어들어 도로 관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 보였다.
사람들은 이 장엄한 광경에 눈물 흘리며 ‘나모 붓다’를 쉬지않고 열창하며 온 하늘과 대지를 덮어버렸다.

세존의 두 발이 모두 관 속으로 들어가자 마자 관은 스스로 공중에 떠 올라 위로는 불을 뿜고 아래로는 물을 뿜어대며,동서남북과 위 아래를 고루 운전하듯 운행하더니 더 할 수 없는 광명의 불을 내어 스스르 한 순간에 불타 올랐다.

한낮의 태양조차도 빛을 잃는 순간이었다.

숲은 온 우주를 다 비추고도 남아 돌만큼 밝고 밝았지만,사람들은 전혀 뜨거움을 느끼지 못했고,또한 눈이 부시지도 않았다.

유성처럼 떨어지는 생멸법(유위법)이었다.
허공처럼 다 함 없는 무위법이었다.

그는 자리로 돌아와 남은 제자들을 추스렸다.
제자들로 하여금 슬픔에 알맞게 물들이게 한 다음,제자리에 앉게 하여 한음성으로 나모붓다를 염송하게 하였다.그 장엄한 염송소리는 숲 속에 가득차고도 넘쳐 파도처럼 여울져 퍼져 나가더니 마침내 재가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도 ‘나모붓다’의 염송소리가 합창되기 시작하였다.
. . .
.....
......

세존의 대반열반의 큰 파도가 물러간 후 고요해진 숲속의 빈곳에서 여느 때처럼 앉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만 같은 일이었다.
여기를 가도 그분의 음성이 녹음되어 울리는 것 같았고,저기를 가도 그분의 고요한 발자국소리가 차박차박 쏟아져 들어 오는 것 같았다.

혹은 혼자서 혹은 다른 제자들과 어울려 세존께서 살아계실 때의 일을 추억으로 나누면서 하루를 소모하는 것이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그리움이라는 것이 결코 거추장스러운 부담으로 되어 돌아 온 적도 없었다.

(계속)


*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양해를 바랍니다.
유마와 수자타의 대화 전부가 그렇기도하지만,특히 이 글은 제가 평소에 관심있게 생각되었던 존자 마하가섭의 어떤 부분을 경전에 나와 있는 짧은 설명에 기대어 상상으로 꾸며 본 것입니다.마하가섭,두타제일로 알려진 부처님의 십대제자중 세 번째 서열에 해당하는 이 분의 행적은 참으로 묘연합니다.저는 개인적으로 늘 이 분의 좌선을 흠모하여 동경하고 있습니다.아직도 열반을 미루며 계족산이라는 인도의 산 속 바위를 뚫고 들어가 앉아서 다음 부처님(미륵부처님)의 출현을 기다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의발(옷과 발우)을 전한다고 합니다.제 마음 속의 스승이시기도합니다.감히 그려 보는 것은 스승에대한 그리움 때문이지 경망한 탓만은 아닙니다.부처님의 열반시와 그 후 이루어진 결집장면과 그 후 계족산으로 들어가신 일까지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상상해 보려 하는 것이니 경전과 차이가 많이 날지도 모릅니다.이것은 '유마와 수자타의 대화(25):어떤 만남' 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전에는 단 한 줄로 나와 있는 것을 순전히 저의 상상으로 그리는 것이니 사실과 다르다고 혹 비난하더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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