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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존의 대반열반의 큰 파도가 물러간 후 고요해진 숲속의 빈곳에서 여느 때처럼 앉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만 같은 일이었다.
여기를 가도 그분의 음성이 녹음되어 울리는 것 같았고,저기를 가도 그분의 고요한 발자국소리가 차박차박 쏟아져 들어 오는 것 같았다.
혹은 혼자서 혹은 다른 제자들과 어울려 세존께서 살아계실 때의 일을 추억으로 나누면서 하루를 소모하는 것이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그리움이라는 것이 아주 거추장스러운 부담으로 되어 돌아 온 적도 없었다.

그렇게 한 계절이 훌쩍 지나고,장마철이 다가와 안거기간에 문제가 생겼다.
세존의 열반 후 교단 내의 이미 번뇌가 다한 아라한들이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하나 둘씩 열반해 버리는 것이었다. 이러다가 아라한의 씨가 말라버리지 않나 싶을 정도로 열반은 유행처럼 번져 이미 상당한 아라한들이 열반해버렸거나 열반을 앞두고 있는 것이 그의 눈에는 또 하나의 걱정거리였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그는 숲속의 나무사이를 걷다가 우연히 다른 비구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세존의 열반으로 텅 비어진 자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하고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마치 그에게 일부러 들으라고 의도하기라도 하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 무엇 그리 걱정스러울 게 있겠소? 사실 세존께서는 너무 예민하셔서 늘 우리에게 아주 사소한 행동,이를테면,숲 속에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를 버리는데 까지도 하나하나 간섭하시면서 노파심을 나타내셨소이다.우리는 어린아이들이 아닌데도 마치 어린 아이를 대하듯 하셨소.사람이 먹다가 남은 것은 똥으로 나오게 마련이고,몸 밖으로 나온 것은 숲 속 어딘가에 버려지게 마련인데,그런 것들 하나에까지 일일이 규법을 매긴다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었소이다.그런 점에서 볼 때에 세존의 열반으로 이제 우리가 오히려 더 개선하고 개량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셈이니 그런 점을 깊이 고려해 봄 즉 하지 않겠소? “

이 말을 들은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뒤통수를 누가 단단한 목침으로 후려치는 것 같은 아픔이 왔다.

(나의 그리움은 저이에게는 몰가치한 정신의 남용에 불과한 것이었더란 말인가!)

그는 당장에 자기가 기거하는 동굴로 돌아 온 다음,세존의 제자로서 세존의 열반을 편리성과 연관시켜 미래의 안락함을 도모하는 의도들이 얼마나 해악적이며 또 오래 갈 것인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개개인의 성향은 출가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성향이란 다스려 지지 않은 조랑말 같은 것이어서 그냥 두면 망나니처럼 뛸 것은 뻔하다.
성향이란 빈 곳에 차는 공기와 같아서 저절로 움직인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뭔가 저 움직이는 성향들과 그것들의 앞으로의 끊임없을 도전에 대한 흔들림 없는 자세를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세존의 행적과 가르침을 망태기에 담아야겠다.나는 이 작업에 언어가 불가피하게 필요하다는 것에서 유위법이(언어) 무위법(열반)을 그려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 그리 썩 좋게 생각하여 오지 않았지만,그렇게라도 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는 무소의 그림을 여우로 그려낼 지도 모른다. 경이라 칭하고 그것들을 모으자!)

이렇게 결심한 그는 그러나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무려 45년 간의 세존의 가르침을 직접 받은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고,그 사람들 마다 각기 자기의 근성에 맞게 해석하고 이해한 마당에 그 모두를 다 모은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어떻게 용기를 내어 그렇게 해본다 한들 비온 뒤 나무 흔들기 밖에 안될 것 같았다.

이렇게 한참을 궁구하던 그에게 번쩍 떠오르는 섬광과 같은 아이디어!
(그렇다! 세존의 가르침은 불교이다.불교는 깨달음이다.마땅히 깨달음의 언어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의 몫이어야 한다.그렇다면,’이러저러하면 깨달을 것이다’ 가 아니라,’깨달은 이는 이러저러하다’ 고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이렇게 저렇게 들어서 깨달았다’가 아니라,’깨달은 이는 이렇데 저렇게 들었다’ 로 시작되어야 한다. 마땅히 아라한들로 구성되어지는 결집을 생각하자.)

아라한!
다툼이라고는 그 언어의 씨앗조차 마음에 없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모든 땅과 모든 하늘의 공경한 마음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해도 떳떳하다는 뜻을 가진 낱말이다.
음탐과 성냄과 우치는 그 뿌리조차 말리우는 잔인함을 가졌다는 뜻이다.
더 이상 배움의 자리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뜻을 가진 낱말이다.
몸뿐이 아니라,한 생각까지도 태어나지 않게 한다는 뜻이다.

그는 아라한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가 아라한인지 아닌지를 본능적으로 안다.

일단 그렇게 방향을 정하고 나자 교단 내에 아라한의 숫자가 그들의 열반으로 더 줄어 들기 전에 이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또한 아직은 아라한의 숫자가 적지 않음을 알고 그 규모를 얼마정도로 하여야 할지도 막막하였다.
너무 많으면 경을 결집하는 동안 적지 않은 기간을 공동생활 하는데 따른 부담이 녹녹치 않을 것이고,너무 적으면 경의 대의를 모으는데 또한 축약적일 수 있다.
이렇게 고민하다 보니 어느 새 밤 공기가 깊었다.

아침에 일어나 숲을 거닐며 경의 결집에 참여할 이들의 범위와 규모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대충 마음에 정하고 보니 아라한으로서 500명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500명이면 한 곳에서 지낼 만한 장소가 평소에 보아 두었던 계족산 칠엽굴이 안성마춤이고,재가신자들이 음식을 대어 주기에도 그리 부담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칠엽굴은 산 중턱 벼랑에 새 둥지처럼 천연적으로 생긴 제법 큰 굴이다.
날개가 있는 새와 신족이 있는 아라한만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아라한을 모으기에는 별도의 검증절차없이 효과적으로 모을 수 있다.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의사의 전달도 아라한의 타심통(他心通:다른이의 마음을 아는 힘)을 이용하면 이 역시 별도의 검증절차나 알림 없이 가능한 일이므로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기도 했다.

이렇게 생각을 굳히자 그는 굴로 돌아와 상수제자인 새샤드리를 찾았다.
그리고 그에게 세존의 십대제자 중 아직 열반에 들지 않은 나머지 제자들을 한 자리에 모이도록 했다.
그들과 이 일을 상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새샤드리가 그의 지시를 받고 막 산 아래로 내려 가려는 참에 스승이 다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올라가 공손히 서 있는 그에게 스승은 번복하는 말씀을 했다.

“아니다 새샤드리여,그럴 필요가 없다.나는 경을 결집 하려한다.아마 한 계절이 다 필요 할지도 모르겠다.너는 다른 십대제자들에게 가는 대신 왕궁으로 가서 왕께 아뢰어라.아뢰되,우리가 세존의 경을 결집하여 하니 약 삼개월간 오백의 대중들에게 매일 정오에 한끼씩 음식을 날라와 공양해 줄 수 있는가를 여쭈어라.”

세샤드리가 스승의 말씀을 받고 다른 동료 둘을 합쳐 셋이서 숲을 나와 왕궁으로 향하는 동안 그는 자기가 고쳐 먹은 생각에 흠은 없는지 다시 한번 찬찬히 점검했다.

(이 일은 느닷없이 하는 게 좋다.그렇지 않으면 사전 조율하는 데에만도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다.더군다나 십대제자 중 아난은 아직 아라한과를 얻지 못했다.그러나 그가 없으면 경을 모은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그는 세존의 말씀을 우물에서 퍼온 물을 물단지가 담고 있듯이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그렇다고 아직 번뇌가 있는 그를 참여 시킨다는 것은 여우가 사자의 굴에 들어있는 것과 같아 어울리지 않는다.이 참에 내 그를 부끄럽게 하여 반드시 사자로 만들고 말 것이다.)

그렇다.
십대제자 중 아난은 부처님을 직접 가까이 밤낮으로 그림자처럼 따르면서 모든 법을 들었고,게다가 그의 비상한 기억력은 삼십년 전의 말을 어제의 기억처럼 아주 분명하게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러나,세존이 열반 후에 그는 몹시 나태해져 버렸다. 아라한이었다면 결코 그렇게 나태해지지는 않았을 것이지만,그에는 또한 나름대로의 원인이 있었다.
바로 사람들의 추앙이었다.

세존의 열반 후에 사람들은 출가자 재가자 할 것 없이 모두 아난에게만 기울였다.
그에게서 세존의 냄새가 가장 깊게 배어 있었으므로 한 마디라도 더 세존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에게로 쏠려 있는 틈에 그는 마치 자기가 붓다 인듯한 착각에 자주 빠져 들어 하루종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세존의 말씀을 퍼 담느라고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수행자가 고요히 있어야 할 시간과 장소에서 멀리 있게 되다 보니,몸은 산 속에 있으나 마음은 시장 속에 있는 어물과 같이 흐느적거리기만 했다.

그러한 점을 그는 벌써 여러 번 아난에게 주의를 주며 스스로 정진할 것을 주문하였지만, 그 때 마다 아난은 법보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차마 그것을 물리칠 수 없노라고 하였다.
같은 항열의 제자가 유독 아난 하나만 아직 번뇌를 다 끝내지 못한 것이 마음에도 늘 걸렸던 참인 데,이 기회에 그를 부끄럽게 하여 분심(忿心)으로라도 정진하게 하여 그의 일을 마치게 도와 줄 심산이 들었다.그래서 그는 마음을 바꾸게 된 것이다.

성으로 들어간 새샤드리가 돌아와 그에게 왕이 기꺼이 뜻을 받들어 음식공양을 하겠노라고 대답한 것을 전하자 그는 즉시 자기의 물건들을 챙기고 떠날 준비를 하였다.
물건이라고 해 봤자 세존과 바꿔 입었던 가사 한벌 과 여벌의 누더기 가사 한 벌,발우,좌복,짚으로 엮어 만든 샌달이 전부인 그에게 달리 챙길 것도 없었다.

뉘엿뉘엿 지는 해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그는 터벅터벅 걸어 칠엽굴로 향했다. 칠엽굴은 양쪽 언덕이 비스듬히 기울어진 그렇게 깊지 않은 계곡을 아래로 둔 천연적인 굴이다. 석분처럼 돋아난 들꽃들 사이로 기웃둥히 걸어 올라가면 그리 높지 않은 절벽 중간에 새 둥지처럼 둥근 입구만 보이는 칠엽굴은 오래 된 넝쿨들이 수염처럼 얼키설키 바위틈을 휘감아 돌고있다. 비교적 외진 곳 산 아래 칠엽굴 밑에 다다라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10~15미터쯤 벼랑 위에 둥근 굴 입구가 보이고,그 입구 여기 저기에 새들이 만들어 놓은 둥지들이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르며 발아래 능선처럼 유연히 늘어진 계곡을 따라 멀리 왕사성까지 닿는 길을 꼬부랑 꼬부랑 눈에 넣으며 참 아름다운 저녁 한 때에 마침 오게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다.천천히 몸을 돌려 절벽 중간에 있는 칠엽굴을 올려다 본 후, 마치 걸어서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서서히 발자국을 옮기며 허공을 걸어 올라갔다.한 발 한발 허공을 내 디딜 때 마다 저녁 햇살이 몸을 떠받혀주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가 밟고 가는 것이 허공이 아니라, 햇살을 밟고 가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이 불 때 마다 너무 낡아 실오라기들이 너풀거리는 그의 노란 가사가 날개 전부인 채...

굴 입구에까지 오르자 그는 천천히 발을 내디뎌 칠엽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아라한을 모으는 방식을 택한 이유가 기발한 점이 여기에 있었다.
‘당신이 진정 아라한이오?’ 하고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굴 안에 들어간 그는 새삼 안이 예전에 본 것 보다 더 넓어 보인 것이 맘에 들었다.
500 명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엔 넉넉했다.
장마철이긴 하여 좀 눅눅했지만,그렇다고 박쥐나 다른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굴 입구에 서서 산 아래를 쳐다보니 잠간 개인 하늘 사이로 햇빛이 줄기줄기 온 숲속을 비추는 것이 여간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잠시 앉아서 휴식을 취한 후,해가 다 떨어지자 다시 넓은 굴을 혼자 빙 둘러가며 거닐면서 세존이 살아계실 때의 자기에게 마지막 남기신 게송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무도 대신 맛 볼 수 없는 그 만의 음식이었다.
소가 음식을 되씹는 기능을 가지고 때 마다 꾸역꾸역 되새김질하는 것은 오직 그 소만이 할 수 있고 맛 볼 수 있는 것처럼,이 게송은 오직 그 만이 되새길 수 있고,그 만이 맛을 알 수가 있었다.그래서 아직 아무에게도 내민 적이 없는 음식이었다. 감추고 싶을 만큼 아깝거나 신비한 것이어서가 아니라,내민다 해도 다른 이에게는 무미건조하거나 아무 맛도 느낄 수 없는 것이기에 무의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法本法無法 마음이라 하는 마음은 본래 없다.
無法法亦法 본래 없는 그 마음 또한 훌륭한 마음이다.
今付無法時 이 마음을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려 하는 이 때에
法法何會法 다시 어디에서 마음을 구하여 주고 받을 것인고“ (참고: 이는 전혀 유마식 해석이므로 읽는 자는 오해 마시길.)

게송을 쉼없이 읆조리는 그의 음성이 낭랑하게 동굴 안을 메아리쳐 마치 수백 수천의 마하가섭이 사방에서 현신하여 다 함께 낭송하는 것처럼 장엄하게 들렸다.
그는 게송을 한자 한자 천천히 씹고 또 되씹었다. 거의 몇 시간이고 계속했다.
한자 한자 염송할 때 마다 지난 겨울에 열반하신 세존의 모습이 뚜렷이 물상화되어 그려지므로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느 새 그의 외롭고 낡은 수레의 바퀴자국처럼 깊이 패여진 눈가에 맑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비록 그 아래 어깨가 둘이었지만 홀로있음을 변경시켜주진 못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는 홀로 이 마음을 전해 받고 있었다.
이 외로움…
그는 비로소 세존의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분이 왜 독존의 외로움을 가져야 했는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 인간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외로움의 고백이라는 것을 알았다.
동굴 바닥에 석순의 젖처럼 또박또박 맺혀 흐르는 눈물….
어둠이 낮 보다 더 밝고 훌륭했다.


새벽이 되자 동굴 입구에서 희미하게 날이 밝아왔지만,구름이 짙게 드리운 하늘엔 좀처럼 빛이 트일 것 같지 않은 날이다. 굴 입구에 나와 저 아래 희무끄레하게 이어져 흐르는 얇은 계곡물을 바라보며 오늘 할 일들에 대하여 그것이 얼마나 역사적인 사건이 될 것인지를 직감하는 시간을 가졌다.세존의 법이 법을 이어 받은 자기 개인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고, 또한 세존의 법이 개개인의 성향에 종속되어 유포되는 것을 막는 이 일은 뜻 있는 일임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동굴 한가운데로 돌아온 그는 가볍게 붓다와 그 법과 승가에게 귀의 하는 염송을 한 뒤,곧 선정에 들었다.
그리고 생각을 띄웠다.
어린아이가 띄우는 연처럼 분명하고도 활발하게 띄웠다.

‘ 세존의 모든 제자들은 들으시오.나는 가섭이고 여기는 칠엽굴입니다. 지금 열반을 생각하고 있는 분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광주리에 담는 일이 끝난 후로 잠시 미루십시오.
그리고 500의 아라한만을 모시고 세존의 말씀을 결집하고저 하니,이 뜻을 아는 분들은 속히 이곳으로 오시기 바라오. ‘

아,
그가 이 뜻을 띄우기를 마치자 마자 소리없이 맨 먼저 나타난 사람은 아니룻다였다.
세존의 십대제자 중 눈이 먼 그는 마음의 눈으로 맨 먼저 그의 뜻을 알고,알아채자 마자 마치 힘센 사람이 손을 구부리는 것과 같이 신속하고도 가볍게 칠엽굴 속에 와 있는 것이다.
아니룻다는 말 없이 사형인 마하가섭의 선정을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동굴 안 아무데나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두 번째로 온 사람은 수보리,세 번째는 부루나,네 번째는 가전연, 다섯 번 째 우파리,여섯 번째 라훌라...
이렇게 날아온 그들은 자세히 보면 서열 순으로 차곡차곡 모여드는 것이었다.
첫째인 사리불과 둘째인 목련은 세존의 열반에 앞서 열반하여서 올 수가 없었다.

그들은 서로서로 아주 짧은 순간에 서로의 마음을 본능적으로 주고 받으면서 교감한 다음 마치 달이 차례차례 이즈러지고 차례차례 차오르는데 조금도 어김이 없는 것처럼 약속이나 한 듯이 각자의 서열대로 하나씩 둘씩 당도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오백의 아라한도 거의 다 차갈 즈음 마하가섭을 포함한 499명의 아라한이 모이자 더 이상의 아라한은 오지 않았다.

그는 비로소 선정에서 나와 자리에서 일어나 열기로 가득찬 동굴 안의 아라한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여러 대덕들이시여. 저의 뜻을 살펴주어 고맙습니다. 이제 한 분의 아라한만 모시면 우리가 원하는 숫자가 채워 질것입니다,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기탄 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그의 말이 끝나자 대중 가운데 이름이 차브라 라고 하는 나이 든 비구가 일어나 말했다.

“ 대덕 마하가섭이시여, 교단 내에 아라한의 숫자가 500에 미치지 못하여 그러한 것입니까 아니면 뜻 하신 바가 따로 있어서 그러한 것입니까?

“존경하는 대덕 차브라시여, 교단 내에 아라한의 숫자가 모자란 것이 아닙니다.다만 그들은 저의 뜻을 살펴서 여기에 오시지 않는 것 뿐입니다.”

“마하가섭이시여 뜻을 닫지 말고 말씀하십시오.저희가 다 살피고 받들겠습니다.”

“ 이 자리에는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 이미 열반하신 사리불 사형과 목련 사형말고는 딱 한 사람이 안 계십니다. 아시다시피 아난 사제입니다.그러나 아난은 아직 번뇌를 다 여의지 못하여 법에 집착하고 있어서 제가 내는 생각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결집을 번뇌가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끼어 들면 그 한 사람이 만일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고 할 때에 번뇌가 끼어 들어 그만큼 경의 가치가 떨어지고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직 번뇌가 다 하지 못한 사람의 고백은 그것이 아무리 부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다 해도 ‘나는 이와 같이 들어서 아직도 번뇌를 다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법과 우리가 증득한 사실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한 고백을 모아 경이라 하여 후세를 위한다고 한다면 아무도 따르지 않을 것이고 따라 봤자 소득이 없는 경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경을 모으는 취지와는 사뭇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또한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 교단 내에서 아무도 아난 만큼 부처님의 말씀을 직접 잘 듣고 챙긴 사람이 이 세상과 저 하늘국토에도 없습니다. 그는 부처님을 25년 동안 모시면서 마치 한 우물의 물을 바가지로 퍼서 물단지 안에 옮긴 것처럼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의 샘물과 같은 기억을 통해서만이 오직 이 일을 잘 마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나는 나의 상수제자인 새샤드리로 하여금 경을 결집 할 것이니 왕에게 가서 석달을 음식공양을 청하도록 하였던 바,아마 지금쯤 그를 통하여 아난 사제도 이 모임의 낌새를 채고 있을 것입니다.그가 오면 나는 그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여 정진하도록 채근 할 것이니 여러분들은 잠자코 이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경을 어떻게 결집할 것이며,결집한 경은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를 논의하게 될 것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대중들은 저 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 없이 침묵의 좌정을 유지하는 가운데 아니룻다가 일어나 비록 두 눈이 멀었지만 정확히 좌중 가운데 나서며 대중들에게 말했다.

“ 세존의 가르침은 실로 방대하고 다양하여 종류별로 나누기 조차 어렵습니다.그것은 또한 가르침을 받은 한 사람 한 사람 마다 각각 자기의 근기에 따라 이해하고 응용하는 것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일관적인 해석을 내 놓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방대한 것을 대별해 보면 우리는 계율과 선정과 지혜로 압축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아난 사제는 비록 지혜는 많으나 선정이 약하여 지금까지 아라한의 과위를 얻지 못하였지만, 여기 우리의 우파리 사제께서는 우리들 중 누구 보다도 계율을 마치 자기의 몸처럼 따르고 실천하는데 으뜸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계율에 관하여는 우파리 사제가 마땅히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아니룻다의 말이 끝나자 마하가섭을 비롯한 모든 대중들은 아무 의의도 제기하지 않고 침묵으로 동의를 표시 했다. 이들이 침묵으로 동의를 표시 하는 것은 이미 세존의 관습을 본 딴 것이기도 하다. 세존은 살아계실 때에 상대방의 청을 언제나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한편, 이들이 칠엽굴에서 아난의 문제로 이야기 하고 있을 때,아난 ,본인은 마침 새샤드리로부터 일의 전말을 전해 듣고 있었다.소식을 들은 아난은 너무나 놀라고 다급하여 다른 사형사제들을 찾았지만 모두들 하나 같이 보이지가 않은 것이 이미 자기만 놔 두고 다들 칠엽굴로 간 것으로 추측하고는 섭섭한 마음 보다는 자기 없이 경을 모은다는 것이 얼마나 무익한 일인가를 잘 알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칠엽굴을 찾았다.

‘ 나 아니면 이 일은 그들만으로는 힘들 것이다. 내가 도와야 한다 내가…
그런데 사형께서도 그렇지 어찌 이 일을 나만 쏙 빼고 하신단 말인가! ‘

아난이 칠엽굴 아래에 도착 했을 땐 어둑어둑 날도 저물어가고 있었는데 마침 장마철이라 더욱 어두워보였다.
그는 칠엽굴이 저 만치 벼랑 중턱에 위치한 것을 몰랐다.
도무지 올라갈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새가 아니면 이를 수 없다면 소리를 칠 수 밖에 더 있는가?
그는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치켜들고 외쳤다.

‘ 사형! 접니다~ 아난 입니다~ ‘

몆번을 거듭 거듭 외치고서야 겨우 굴 입구에 나온 사형 마하가섭의 다섯 발가락 삐죽히 나온 샌달을 신은 발을 올려다 볼 수 있었다.

사형 얼굴이 보이자 반색을 하며 올려다 본 채 소리 쳤다.

‘사형,제가 어떻게 그곳에 오를 수 있습니까. 저를 좀 올려 주세요. 저도 동참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대번에 그는 얼굴이 샛노랗게 변하는 말을 들어야 했다.

“ 사자의 굴에 여우가 왜 온다는 것이냐?
재주가 있으면 올라 와 보아라.”

그의 이 한마디는 아난에게 가슴 아프고도 서러운 말이 되었다.
세존이 가신 후로 믿고 의지하는 것이라고는 사형 사제들 뿐인데 그 사형의 한 마디는 마치 오랫동안 믿어 온 사랑하는 연인 앞에서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수모를 갑자기 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는 그렇게 갑자기 당한 수모에 울대가 치솟아 올라오는 서러움을 느꼈다.
너무 너무 야속한 ‘방관자'로 돌변한 사형 앞에서 그는 서 있을 힘 조차 없어 보였지만 대지가 간신히 그를 받쳐주고 있었다. 그는 억울했다. 너무 억울했다

“사형이시여,제가 처음에 부처님의 시자를 맡기로 했을 때의 일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그 때 극구 사양했지마는 사형과 다른 사제들과 여러 대중들이 한결같이 제가 그 일을 맡는 것이 좋다며 천거하고 또 간청하여 제가 부처님을 시봉하게 되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 때에 저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마는 그 일을 수락했었을 때에 제가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제가 시자의 일을 맡는 대신 스스로의 깨달음은 미루겠다고 했던 말 말입니다. 그것은 아라한이 다른 아라한인 부처님을 시봉하는 것이 법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제가 아라한의 과위를 미루었던 것이지 스스로의 공덕이나 부지런함으로 보아서는 이미 아라한이 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야속하게 저를 여우로 몰아 부치십니까?”

아난은 말을 하는 동안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 그만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속 마음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숨겨봤자 아라한의 마음 앞에서는 큰 소리로 떠든 것과 같이 숨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사형이시여,정말 너무하십니다.사형 사제들이 오직 스스로의 깨달음과 정진을 위해서 또는 숲 속에서 또는 마을에서 또는 정사에서 매진하는 동안 저는 오직 부처님을 시봉하며 살펴드렸습니다. 만일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사형이나 다른 사제들이 했었을 것이고 그러면 나 스스로는 이미 충분히 아라한의 과위에 오르고도 남았을 것입니다.그러면 지금 사형 등이 아라한의 지위에 오른 것은 누구의 수고로 인한 까닭입니까?”

이렇게 원망하고 있을 때 마치 그의 속내를 이미 다 읽고 있는 듯,위에서는 준엄한 사형의 힐책이 이어져 내려왔다.

“ 그런 말하지 말라. 세존께서 열반 한 후 벌써 몇 계절이 지났는가? 세존께서 살아계실 때야 그렇다 하더라도 열반 하신 후까지 포함하여 그런 변명을 하려고 하는 것이냐? 때때로 나는 너에게 이제는 스스로를 위하여 정진할 것을 권고하였지만,너는 그 때마다 대중들의 법공양을 감당하느라고 듣지를 않아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 어찌 사형인 나에게 대어들 일이더란 말이냐? 마땅히 첫번째로 참회할 일이다.”

아난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사형의 준엄한 질책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 그리고 네가 지금 부처님을 시봉한 일을 마치 우리들을 위하여 희생한 것처럼 말을 하지만, 네가 부처님을 시봉하면서 오히려 불법을 쇠퇴하게한 일도 없지 않다. 이것은 만일 나나 다른 사제가 맡아 했다면 피할 수 있었던 일이다.
너는 어찌하여 여자가 교단내에 들어 오도록 부처님을 설득하였더란 말이냐? 이 일로 부처님께서는 깊이 탄식하사 불법이 5백년은 줄어 들었다고 하셨다. 이것이 그 첫째이다. 비록 네가 인정으로서 그녀들을 가엾이 여기고 또한 과거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 교단은 사부대중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그리 했다 하더라도 부처님께서 마땅치 않게 여기신 것을 세 번씩이나 간청하여 그 뜻을 꺽게 하여 여자의 출가를 이루게 하였으므로 이것은 세존을 잘 못 시봉한 것이다.

또 너는 세존께서 열반지로 향하실 때에 목이 마르다고 하자 물을 떠다 드리지 아니했다. 비록 그 때에 수레 오백 대가 강물을 건느며 흙탕물이 되었기 때문에 차마 떠다 드리지 못하였다 하지만,세존께서는 신통력으로 얼마든지 물을 맑혀 드셨을 것이다. 이것이 너의 두 번째이다.

또 너는 세존께서 열반을 결심 하기 전에 너에게 말씀 하시기를 ‘여래는 목숨을 뜻대로 늘여 한 겁이나 한 겁에 좀 미치지 못하게 머무를 수 있다’ 고 세 번씩이나 말씀하시며 은근히 권청을 기다렸을 때에 너는 귀가 멀었더냐 입이 막혔더냐? 왜 그렇게 더 머무르시도록 권청하여 드리지 아니 했더란 말이냐? 너의 그 소홀함으로 벌써 이 세상은 어두워졌고 중생들은 제도 받을 기회를 다 놓쳐 버렸다.비록 네가 악마의 장난에 취해 있었다 하더라도 세존의 제자로써 세존의 곁에 있으면서 악마의 술수에 걸려든 것 자체가 큰 수치이다. 이것이 너의 세번 째 참회 할 일이다.”

사형 마하가섭의 준엄한 질책을 들은 아난은 할 말을 잃었다.
이미 자기의 마음 속 까지 다 뛔뚫어 미리 변명할 말까지 벌레가 먹은 가지를 잘라 버리듯 잘라내어 버리며 소용 없게 봉쇄해 버리는 그의 잔혹함에 항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 가라, 여우새끼여, 가서 참회하라. 여기 사자의 무리에 낄 때가 아니다.”
그리고는 그는 굴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난은 굴 아래에서 한 참 을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그가 사라져 버린 굴입구를 올려다 볼 힘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않고 말았다. 다리가 후둘후둘 거려 일어 설 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은 후에야 겨우 그는 일어섰다.

해가 다 떨어진 어두운 산길을 다 헤진 걸음으로 터벅터벅 돌아 오는 그의 마음은 잔뜩 기대하고 믿고 찾아갔던 연인에게서 혹독한 배신과 경멸을 받은 후의 그 발걸음 보다 천배는 더 헤진 발걸음이었다. 어디에다 몸을 의탁한단 말인가?
세존께서 살아계셨다면…. 이리도 나를 혹독하게 대하진 않으셨을 텐데… 세존께서…
세존의 품이 너무너무 그립기만 했다.
그이 다정한 음성이 너무너무 그리웠다.
한번만이라도 다시 뵈었으면 …한번만이라도 다시 들었으면.. 한번 만이라도…

아난이 처소로 돌아 왔을 때에는 배신감과 억울함과 서러움은 모조리 부끄러움과 분노로 변해 버렸다. 그것은 마치 우유가 곧 신맛으로 변하는 것처럼 신속하게 변해 버렸다. 그렇다면 이 부끄러움과 분노는 다시 무엇으로 변할 것인가? 만일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다면 이 세상은 부끄러움과 분노에 노출된 채 모든 이별이 이별로 끝나 버릴 것이다.모든 헤어짐이 원망이나 더러는 저주로 끝나 버릴 것이다. 이 아름다운 작은 성자에게서 일어난 변화는 그러나 그런 것을 증명하지 않았다. 그는 부끄러움과 분노의 좌변기에 주저앉아 끙끙대지 않았다.그 대신 그는 천천히 걸었다.부끄러움과 분노는 곧 정진으로 변했다.그것은 마치 신맛이 곧 요구르트로 변하는 것처럼 신속하게 변했다.

하나의 길다란 직선 길을 수 없이 반복하며 밤새 걸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였다.
그 세계에서 다시 세존의 말씀들을 하나 하나 기억하며 걸었다.

처음엔 사형의 혹독한 내침을 이기려 세존에 대한 그리움으로 묵상하였었지만,차츰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뭉치 의식으로 회전하며 안의 것은 빠르게 겉의 것을 움켜쥐고 있고,겉의 것은 천천히 안의 것을 감싼 채 빙글빙글 마치 돌멩이가 던져진 연못 한 가운데의 소용들이 처럼 나선을 그리며 움직였다. 그것은 던져진 돌멩이의 크기와 모양에 정확히 일치하며 돌았다,조금도 더도 덜도 않고 정확히 일치했다. 형상이란 에너지의 모습이며 에너지는 안의 의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겉과 속은 조금도 다르지 않은 不二의 형상을 움켜쥐고 있고 또한 포태로 감싸고 있다.

허깨비라고 하여 법 밖의 물건이 아니며 진실이라 하여 법 안에만 잠겨져 있는 물건이 아니다.거짓과 참은 오로지 깨달음이 그렇다는 것에 불과한 그림자이다.

그는 이제 천천히 소가 되새김하듯 붓다의 말씀들을 되새겨보았다.
이제까지 다른 사람들에게만 퍼다 나르느라 미처 맛을 알아 보지 못했던 붓다의 말씀.
또한 붓다의 해조음 같은 음성의 모양에만 집착하느라 미처 알아 보지 못 했던 법의 감미로움을 맛보기 시작했다.

사념처(四念處)를 사유했다.
몸과 몸의 받는 느낌과 마음과 마음의 수용하는 법을 사유했다.
몸은 느낌을 따르고 느낌은 마음을 따르고 마음은 법을 따르고,다시 마음이 법을 받고 느낌이 마음을 받고 몸이 느낌을 받아내는 이것은 조건과 결과의 한 줄에서 늘 오락가락을 반복하는 것이다.마치 지금 내가 이 숲 속의 한 선상 위를 반복하여 오락가락 하는 것처럼. 그것은 그림자이며 허깨비이며 지어 감(有爲)이며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의 모든 중류(衆類)의 세계라는 것이다.

세계라고 하는 것은 늘 이렇게 허망한 것이며,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어지는 무상함 그 자체인 것이다.그것은 중생이 그러하기 때문에 세계도 그러한 것이 마치 저 돌멩이와 연못의 관계와 완전히 같은 것이다. 무상함은 중생의 것이지 붓다의 것은 아니다.

이렇게 그는 허망한 것에서 진실의 문으로 들어갔다.

진실의 문을 들어가 보니 창문마다에 죄다 밖에서 빛이 들어와 숲이 보이고 걷는 내가 보이고 사유하는 내가 보이고 호흡이 보이고 돌멩이가 보이고 땅과 하늘이 보였다.
그렇게 허망하여 도깨비이며 그림자이며 유위(有爲)라고 했던 것들이 방 안 가득 들어오고 있었다.
진실의 문은 그렇게 채워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그는 진실의 문에서 다시 허망한 들판으로 나왔다.

어느덧 그는 새벽에 까지 이러한 사념처를 들러 사유하다가 문득 피곤하다고 생각되어 잠시 들어 누우려고 베게를 베는 순간,퍼뜩 벼락치는 소리가 뇌벽을 울리듯 번쩍 울리는 것을 느꼈다. 평소 같았으면 요기들도 절대 그런 아리송한 동작이 오래 지속되지 않았을,그러니까 고개를 베게 바로 위에다 멈추고 오른 손은 땅 바닥을 짚고 눈동자는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허공을 더듬는 그런 이상한 포즈를 한 채 얼어 붙은 듯한 상태,그것이 더 이상 단 한 동작도 용납치 않는 것인지 그냥 방치하는 것인지 보는 사람으로선 알 수 없어서 하는 표현인 그냥 그대로 있을 뿐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참 후,그는 눕는 것을 버리고 마음을 조복 받는 자세인 결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는 시간과 공간은 둘이 아니다,마음과 몸은 둘이 아니다,진실과 거짓은 둘이 아니다,번뇌와 열반은 둘이 아니다 고 하는 불이의 법문을 수 없이 넘나들며 더 이상 양변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중도의 즐거움에 도취하였다.

장마구름 사이로 언듯 언듯 햇빛이 청동빗살무늬처럼 한 올 한 올 갈라져 숲의 이곳 저곳을 비추기 시작했을 때 아난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무리를 떠나 어제의 칠엽굴을 향해 걸었다. 어제는 그렇게 조바심을 내며 총총걸음으로 가던 길인데 오늘은 한 겁을 들여서라도 아주 천천히 가도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세존께서 붓다가야에서 이 마음을 얻으신 후 처음으로 녹야원으로 발걸음을 하실 때의 발걸음이 이와 같았을지 모른다.

걸으면서 그는 생각했다.
(나는 이미 여우의 몸을 버리고 사자의 몸을 얻었다.
그렇다면 나도 마땅히 아라한 비구들처럼 신족통으로 한번에 500의 대중들이 있는 칠엽굴 속에 도달하여야 하지 않을까? ….. 아니다. 나는 사형이 나를 내치던 그 때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그것이 우리의 예의일 것이다.)

칠엽굴 아래에 도달한 그는 어제의 헐떡거림이 아닌 고요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 사형이시여. 아난입니다. 여우의 몸을 버리고 사자의 몸으로 왔으니 저를 들여 보내 주십시오,”

이번에는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대신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음성만 들렸다.

“ 문은 열려있다.들어오라.”

아난은 사형 마하가섭의 목소리의 메아리가 굴 안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문득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의 번들거리는 머리에는 아직도 아침 햇살이 머무르고 있는 듯 반짝였다.

맨 먼저 달려 오듯 반기며 안아주는 사람은 바로 사형인 마하가섭이었다.
그는 햇살이 미처 그의 파르스름한 머리에서 미끄러지기도 전에 번득 몸을 들어내준 아난을 부둥켜 안고 그의 속이 팔손이 이파리 같이 넓은 귀에 속사이듯 말했다.

“ 사제여,나의 사제여,어제의 나를 용서해다오.나는 마음이 찢어져 죽는 줄 알았다.밤새 밤새 나는 사제를 생각하며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알지 않는가? 아라한의 한 마음을 어떻게 유지하는가를...”

아난은 그런 마하가섭 사형의 속삭임을 들으며 마치 세존께서 다시 오셔서 안아주시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렇구나, 누군가 안아 줄 때에는 마음에 균열이 서로 없어야 하는구나. 키가 차이가 나고 숨소리가 차이가 날 망정 마음이 서로 평등하여야 하는구나.)

아난도 기꺼이 팔을 벌려 사형을 껴 안으면서 말했다.

“사형이시여, 나의 도반이시여,저를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존께서 당신을 기다려 주셨듯이 사형께서도 저를 기다려주셨습니다.”

둘은 뜨거운 포옹을 풀고 마하가섭은 이제 막 다 채워진 500의 대아라한들을 향하여 침묵을 요구하며 선포하듯 말했다.

“ 여기 500의 큰 아라한이신 비구들이여,이제 사자의 법을 펼칠 때가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사자만 있고 여우는 없습니다. 모든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우리를 표방하거나 우리를 능가하는 모임은 없습니다. 설령 대범천의 하늘이라 할지라도 여기 모인 우리들의 머리털 한 올도 움직이지 못 할 것입니다. 세존의 열반으로 우리 교단은 어미를 잃은 사슴처럼 쓸쓸하고 별을 일은 밤배처럼 두려웠지만 이제 500의 부서지지 않는 결속의 힘으로 세존의 가르침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고, 세존의 가르침을 때가 있는 그릇에 담는 일을 막고, 후세의 모든 교학들에게 세존의 사자후를 그대로 듣게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열반은 그러므로 필요하다면 영구적으로 포기하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부디 이 거룩한 모임이 헛되지 않게 먼 후세에까지 유실되지 않고 방임되지 않고 첨가되지 않고 한 우물 물이 다른 물단지에 그대로 채워지듯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만일 이 법이 깨어지거나 새어나가거나 덧입혀 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서라면 나를 비롯한 여기 500의 대 아라한들은 재생에 필요한 약간의 번뇌를 남겨놓아 반열반 아닌 열반으로 세세생생 이 사바세계에 머물면서 이 경장들을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존께로부터 받은 은혜에 비하면 아주 가볍고 짧은 病같은 것입니다. 부디 여려 대덕들의 분명한 서원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나모붓다
나모다르마
나모샹카! “

마하가섭의 짧은, 그러나 분명한 의지의 표현을 담은 처음 말이 나가자 500의 대 아라한들은 한결 같은 음성으로 합장하며 입을 열어 합송하기를,

“ 우리들은 세세생생 이 사바세계에 머물면서 이 경장들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나모붓다
나모다르마
나모샹카!”

마하가섭이 입을 열었다.

“아난이여,이제 대중들이 증명하여줄 여래 응공 정변지 선서 세간해 명행족 천인사 조어방부 무상사 불세존의 말씀을 풀어라.여래는 처음 어느 곳에서 누구에게 어떤 법을 말씀 하셨는가?”

이에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 가운데 높이 마련된 붓다의 법의를 깐 법좌에 앉아 눈을 지긋이 감고 하나 하나의 장면들을 추억 한 뒤, 그리움과 추억이 담긴 어조로 그러나 분명한 발음을 유지하면서 온 하늘과 땅과 바다가 잠잠한 가운데 사자와 같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그때 세존께서 녹야원에서 다섯 수행자들을 위하여 초전법륜을 굴리시니……”

이러한 아난의 추억과 그리움이 가득 담긴 어조로 고개를 드높혀 눈가에 가득 이슬이 맺힌 채 낭낭하게 외워 나가니 500 의 대중들은 하나 같이 저절로 무릎을 꿇고 흐느끼면서 울음을 참는 소리가 아난의 법음을 덮지 않게 조심하였지만, 하나씩 둘씩 합해져 결국 칠엽굴은 아난이 외워 나가는 붓다의 말씀과 대중들의 때로는 콧물 삼키는 소리가 섞인 흐느낌 소리가 우열을 가리지 못할 만큼 가득차서 넘실넘실 굴 밖으로 울려 퍼져 나가니,이와 같이 꼬박 석달을 걸려 아난이 외우고 대중이 거듭 외워 확인하는 과정을 걸쳐 최초의 결집이 이루어졌다.

이로서,후세에 전하게 되어 그들의 은밀한 부촉과 호법으로 유실되지 않고 방임되지 않고 깨뜨려지지 않고 첨가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인연있는 중생들이 보고 들으니 이른 바.

경과 율이더라.
어질고 뜻있는 사람들의 좌표가 되어 혹은 바로 혹은 곁으로 혹은 길게 혹은 짧게 받아들이고 배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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