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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가 온다,
내 마음엔 근심만 늘어 종일 근심만 쳐다 보았다.
근심은 마음이 되어 말한다.

수자타야, 나는 요즘 와서 더욱 부처님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느낀다.
일체가 다 이 마음이 빚어낸다는 이 한 마디를 하시기 위하여 부처님께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인내와 방편을 감당하셨을까 생각하면 감히 나 같은 범부 무지랭이따위가 차마 단 한마디도 거들어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이 분명한데도 때 마다 나는 다 “마음”이다 라고 말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나의 고충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나도 남처럼 아미타 국토를 말해야 하며,관세음 보살을 들먹여야 하며,다라니(주문)를 말해야 하며, 그리고 잘 외워지지도 않는 수지독경을 말해야만 하는 것일까? 부처님 없는 末法 시대에 누구처럼 묘법연화경을 암송하는 것이 그네들 근기에 맞다 하여야 하고,여러 보살 마하살의 이름을 선재동자처럼 찾아 다니며 다 부르라 하고, 선망 부모님을 위해선 지장 보살을, 어리석음 가운데 지혜를 위해선 문수 보살을,두려움 가운데 자비를 구하기 위해선 관음보살을 각각 찾아 모시며,(나는 잘 알지 도 못하는) 북두칠성의 칠성각을 찾아 절하고, 이 금강경은 반야경중의 경이니 잘 받아 지니면 세세의 악업이 감소하고, 이 반야심경을 잘 받아 지니면 원치 않는 악한 기운들은 반경 십이 유순 안에선 범접을 못하며, 이 능엄주와 광명진언과 천수 다라니를 외우고 독송하면 가지가지 악업들이 다 절로 소멸하니 소홀히 하지 말라고 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부적을 만들어 이 부적이 신묘한 힘이 있어 교통사고도 안 만나고 여러 횡사요절을 피하게 하여 주니 사서 지니라고 하면 될 것이겠는가?

아아, 수자타야, 실로 슬픈 일이다.
나는 비록 이 한목숨 금강보살의 금강저로 바수어져 가루가 된다 할지라도, 너에게 이 한 마음이다고 말 하고 죽으리라.

내가 전에 너로 하여금 관세음 보살님을 부르고 생각(念)하면 이 보살님의 위신력이 아름답고 원만하여 소리가 나는 곳에 메아리가 울리듯 신속하고도 뚜렷하게 감응하여 네가 꾸는 악몽이 끊어지고 머리 위에 수리처럼 감도는 탁한 기운들이 물러 가고,불가사의한 신력의 가피를 입는다고 말하여 네가 때 마다 끊임없이 염불하여 온 것을 안다. 수자타야, 그것은 네게 천주교의 습관이 남아 있어,성모의 성상과 비슷한 관세음을 들어 너로 하여금 부처님의 분위기와 친해 지게 하려고 가는 방향을 살짝 바꾸어 놓은 것 뿐이다. 하지만, 이제 때가 되었다.

모든 것은 다 이 마음이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아미타 부처님도,비로자나 부처님도, 문수 보살도,보현보살도,관세음 보살도,지장 보살도, 금강경도, 천수 다라니도, 이 마음을 떠나고 서는 만날 수도 만나지지도 만나서도 안된다. 그렇게 하여 얻어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 마구니 일뿐이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뚜렷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마음이다.

수자타야, 나는 이 마음으로 온갖 계를 만나며, 마음으로 온갖 계를 파한다.
나는 마음으로 온갖 선정에 들어가며 마음으로 선정에서 나온다.
나는 마음으로 지혜를 구하며 마음으로 지혜를 떠난다.
이 마음을 떠나서는 따로 단 한 물건도 얻지 못한다.
이것은 고독이다.
외로움이다.
이 보다 더 궁극적인 외로움은 없다.
온 숲을 다 헤쳐보아도 내가 이를 수 있는 곳은 그 숲뿐이다.

수자타야, 하지만, 이것은 천당을 주어서도 팔아서는 안되며, 지옥을 도려내서도 떠나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마음만이 홀로 惺惺寂寂(성성적적)함을 알기 때문이다.

일전에 어떤 이가 나에게 분개하며 강변했다.천당은 실재하는 영원한 곳이고 거기에만 가면 영생낙원이 들림 없다고…

아니다 아니다, 수자타야, 이것은 그들의 가여운 소견이다. 그의 처음 반석인 베드로가 살아 돌아 온다 하여도,베드로의 선생이신 예수가 다시 온다 하여도 그들이 만일 실상을 잘 알고 있는 깨달은 이라면 결코 그렇게 가르치지 못할 것이다.하물며 오늘 날의 선생들이겠는가? 아침과 저녁으로 수고 하는 것으로는 가상타 할 것이지마는,결코 구하는 그 천당은 구해지지 않을 것이다. 눈 먼 사람이 눈 먼 사람을 대대로 이끄는 격이니 눈 있는 사람만이 웃을 일이다.

천당은, 지옥은 말하자면 습관이다.
자기의 습관을 자기가 느끼는 것일 뿐이다.
그 느낌이 좋으면 천당이라 하고 나쁘면 지옥이라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 따로 영원복락의 천국이 있다고만 하니, 그 천당엘 가면 그 습관이 어찌 되겠느냐?

천당에 가서도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은 나쁜 것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는 이 습관에 의하여 그는 설사 그 천당에 간다 하더라도 좋고 나쁜 것을 떠나지 못한다. 그리고 좋고 나쁜 것은 각각 천당과 지옥이니 그는 반드시 그 천당에서까지도 다시 천당과 지옥을 만든다.
이러한 놀이는 중중무진(重重無盡)하여 양자가 원자 속에 있고 원자가 분자 속에 있고 분자가 세포 속에 있고 세포가 몸 속에 있고 몸이 땅속에 있고 땅이 지구 속에 있고 지구가 태양계 속에 있고 태양계가 일천 태양계 속에 있고 일천 태양계가 십만의 태양계 속에 있고 십만의 태양계가 백억의 태양계 속에 있고 백억의 태양계가 다시 하나의 양자가 되는 몸집의 다른 세계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알지 못하여 하는 믿음들인 것이다.

밖으로 펼치면 한량이 없는 마음이 곧 우주이고,안으로 접으면 한 티끌도 들어가지 않는 것이 곧 이 마음이니 이 마음을 떠나서는 지혜도 없고 선정도 없고 계도 없고 유도 없고 무도 없으며,너도 없고 나도 없다. 그런데 어찌 유독 천당과 지옥은 있겠느냐?

수자타야, 너는 이 유마를 만나 그야말로 눈 먼 거북이 바다 한 가운데서 나무 토막을 만난 것과 같은 인연으로 이 마음의 법을 듣고 있구나. 나는 너에게 지금까지 여러 가지를 속여 왔다. 속여 온 것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은 네가 잘 안다. 너뿐 만이 아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에게 나는 이 몸과 말과 뜻으로 다 속임만 저질러 왔느니라.

그러나,속일 수 없는 법을 가지고 너에게 말하거니와, 일체는 다 이 마음의 소작이다. 이 마음을 떠나서 따로 한 물건도 생기지도(生) 유지되지도(住) 변하지도(異) 없어지지도(滅) 않는다. 이 마음에 그 어떤 정의를 내리느냐는 그러므로 전적으로 그 마음의 주인의 일이다. 이를테면 네가 악하면 악심이 된다. 악심이 따로 있어서 악심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악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므로 악심이 만들어 진다. 이에는 그 반대 급부가 있어 항상 괴로움이 따르나니. 곧 지옥이다. 또한 네가 선하면 선심이 된다. 선심이 따로 있어서 선심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선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므로 선심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이에도 반대 급부가 있어 늘 평안하나니 곧 천당이다. 누가 있어 이 마음을 떼어내고서 따로 천당이니 지옥이니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수자타야,나는 너더러 저들 처럼 이러한 좋고 나쁜 법(유위법)을 숭상 하라는 것이 아니다.
좋고 나쁨을 숭상 하는 것은 유위법을 따름이다.
이 유위법의 최고선은 그저 하나의 천당 행 티켓을 쥐는 결과가 전부이니라.
너는 유위법을 따르고 싶으냐?
그것은 나그네의 법이며,여우의 법이며,보상의 법이며,유아의 법이며,썩은 사과의 법이니라.

어째서 나그네의 법이냐?
그의 안락은 인연에 의하여 이루어 진 것이므로 언젠가 그 인연이 다 하거나 다른 인연이 찾아오면 그 영광된 안락에서 나그네처럼 떠나야 하리니 비록 수다원과를 얻었다 하여도 천당과 이곳을 일곱 번은 오락가락 하는 수고를 하여야 하나니, 하물며 육단심의 믿음으로 하는 이들이겠느냐?그러므로 나그네의 법이라 한다.

어찌하여 인연인가? 태어남이 있으면 늙음이 있고 늙음이 있으면 병듦이 있고 병이 들면 죽음이 있다면 각각은 서로의 까닭으로 성립되나니 그러므로 인연으로 이루어 진 것이라 한다. 이것은 부처를 믿건 예수를 믿건 도올 선생을 믿건 또한 아니 믿건 현재의 진리이다. 이 진리에 의하여 모두는 태어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이는 법이라 하고 이렇게 말하지 않고 그것을 다 하나님이 천지창조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고 말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네가 눈이 있으면 보이는 법을 따르고 보이지 않는 법은 눈 없는 이들이 따르는 법이니 관여 하지 말라.

어째서 여우의 법이냐?
사자는 사람이 뼈다귀를 던지면 던진 사람을 물지만 여우는 던져진 뼈다귀를 물고 즐기느니라. 그러므로 사자 같은 사람은 창조주를 만나면 창조주를 바로 추궁하지만 여우 같은 사람은 창조주가 던진 창조물을 물고 더 이상 추궁하지 않으므로 여우의 법이니라.

또한 이것을 하여 저것을 바라므로 항상 보상의 법이며,
믿으면 천당 안 믿으면 지옥 하는 천박한 소견을 내므로 유아의 법이며. 내가 먹다가 버린 것이므로 썩은 사과이니라.

너는 부디 주인의 법을 따르고 사자의 법을 배우며 무상(無償)의 법을 즐기고 썩지 않는 황금의 법을 취하라.

수자타야, 이 마음으로 바로 들어가라.
다른 데로 돌아가면 피곤함이 없지 않으리라.
기왓장을 가지고 하루 종일 일년 삼백육십오일 천년 만년 갈아봤자 거울을 만들 수는 없다.
모래를 가지고 태양을 끌어다가 태양이 다 타 들어 갈 때까지 밥을 지어 봤자 밥은 만들어 지지 않는다.

마음으로 바로 들어가야 하느니라.
거기에 일상이 있고 일상을 잡아 먹는 블랙 홀이 있고 먹은 것을 토해 내는 화이트 홀이 있느니라.
거기에 3차원을 지나 4차원이 있고 10차원 또는 그 이상의 차원의 세계가 있느니라.
거기에 모든 생명점들과 존재 점들의 무수한 생멸이 있느니라.
그리고 거기에 바로 네가 바라고 바라는 사랑이 포근히 잠들고 있느니라.
마음에 바로 들어 가지 않는다면 하는 짓 마다 그건 다 기왓장으로 거울을 만드는 것이요, 이루는 족족 모래를 쪄서 밥을 만드는 것이라 남루하기 그지 없으리라.


유마와 수자타의 대화를 마치며...

"유마와 수자타의 대화"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그동안 긴 문장을 읽어 주신 여러님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유마님은 3대 기독교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오직 주 예수만 알고 성장하였습니다. 어릴적에, 한 때는 혼자 일주일 동안 문 걸어 잠그고 방안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오르지 기도만 하기도 하였습니다.

유마님는 어릴 때 부터 자주 아팠었습니다. 혼절도 자주 하였고요. 유마님은 지금도 자기가 유년시절에 아파 정신을 잃었다가 새벽에 깨었을 때, 유마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하시는 의사이신 아버님의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을 잃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어릴 때 부터 병마와 싸워온 유마님은, 계속 되는 감기 증상 때문에 병원에 가보니, 급성백혈병이란 진단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후 얼마 되지 않아 운명을 달리 하셨습니다.
유마님은 병원에서도 컴퓨터에 동전을 넣으면서까지 글을 올렸습니다. 물론 자신의 입원사실은 숨기고요..

유마님 유골은 화장을 하여 제주 남쪽 바다에 뿌렸습니다.


유마님은 아마 가족들에게 하고 푼 이야기를 글로 남겼을 것입니다. 유마님도 그런 글을 종종 올렸었습니다. 유마님 부친과 토론을 하면서 했던 말을 적어 놨다가 정리하여 올리는 것이라고...
조부께서 교회까지 세우신 집안의 장남이 사탄의 소굴에 들어 갔으니 부친께서 가만 있을리가 없겠죠. 부친과 마음놓고 많은 대화 끝에 부친께서 임종전에 하신 말씀이 "불교에도 무엇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저도 유마님 딱 두 번 뵙습니다. 그것도 경기도에 있는 "유마정사"점안식에 초대하여 처음 뵙고, 그리고 유마님 49제 때....

유마님은 늘 스승을 만나지 못함을 한탄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분은 저에게는 다시 없는 스승이셨습니다.


끝으로, 그 분의 소원 하신 바와 같이 내생에 다시 이 사바세계로 와서 동진출가하시여 부처님의 법을 종일토록 공부하시게 되길 빕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안영선 합장..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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