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나무 하나가 다 차지한 뒤뜰쪽으로 창호지를 바른 창문 하나가 외눈박이로 나있는 창가에 나그네와 주인이 마주하여 앉았다. 멀지 않은 곳에 일곱살 난 여자아이가 주저앉아 소변보다 생긴 것 같은 작은 폭포에서는 마지막 물줄기가 막계절을 타고 가느다랗게 흘러내리는 소리 들려 오고,작은 방안에서는 이제 막 흘러넣은 찻잔 속의 김이 어느 맑은 영혼이 승천하듯 모락모락 일어나 가는 허리를 흐느적 거리며 곧바로 허공으로 올라가 삼쳔대천세계의 꼭대기에 이를 때쯤 나그네는 물었다.
客: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라고들 합니만,색(色)과 공(空)은 무엇입니까?
主:색과 공은 밖으로는 세계를 말하고,안으로는 몸과 마음을 말합니다.
客: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조합으로 이루어졌고,몸과 마음 역시 시간과 공간으로 조합된 것에서는 같이 말 할 수 있겠습니다.하지만,세계는 무정물이고 몸과 마음은 유정물인데,어떻게 같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거울에 사물이 비추었다고해서 거울과 사물을 같이 보는 것이 아닙니까?
主:거울에 사물이 비칠 때 거울이 당신을 비추는 것인지 당신이 거울을 보는 것인지 누가 증명해줍니까? 또한 거울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계라는 거울에 당신이 비추는 것인지 당신이라는 거울에 세계가 나타난 것인지 누가 압니까? 또한 거울은 사물이 자기 앞에 나타날 때에만 비추지마는,허공은 모든 사물이 한치도 피할 수가 없는데,그러면 허공이 主입니까 사물이 主입니까?
마음에 한 생각도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와 같이 허공에는 한 티끌도 속일 수가 없습니다.그러므로 색과 공은 서로 즉(卽)하다고 하는 것입니다.어느 것을 主로 삼을 수가 없어서 하는 말입니다.
밖으로 세계는 물질과 허공으로 덮혀 있습니다.안으로 나(我)는 몸과 마음으로 둘려쌓여있습니다.몸은 색이고 마음은 공이며,물질은 색이고 허공은 공입니다.
다시 몸자체도 살펴보면 여러 물질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른바 크게 말하자면 지수화풍입니다.그러나 이 각각의 지수화풍 역시 인연으로 이루어진 색에 불과합니다.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왜냐하면 시간과 공간의 만남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 시간과 저 공간이 만나 이 만남을 이루었다가 그것은 다시 저 시간과 이 공간이 만나 저 만남이 되는 까닭에 인연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한번 만남은 영원한 만남이어야 하는데, 영원한 만남은 이름이 따로 고정되어야 하고,이름이 따로 고정되어야 한다면 누가 만일 아! 하고 소리 친다면 그 아! 소리는 없어지지 말아야합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그 아! 소리는 누가 아! 하고 소리를 만들기 전에도 아! 하는 소리가 있어야 합니다.그러나 이러한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그러므로 공이라 한 것이고,공한 까닭에 생긴 만남을 인연이라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내가 고요해졌다가 시장에 나가 여러 사람들과 만나 번잡해지는 것은 먼저 내 생각이나 의지와의 만남이 선행되고서야 이루어지는 바깥일들입니다.내가 무엇을 만지는 것은 만지자고 하는 나의 생각을 먼저 만나고야 이루어진다 이 말씀입니다.만일 나의 생각이 만지고자 하는 것을 떠나 있으면 만진다는 인연은 생기지 않습니다.
이 만지고자 하는 한 생각은 처음 부터 생긴 것(창조된 것)도 아니요,저절로 생긴 것도 아닙니다.다만 인연따라 생기고 인연따라 소멸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이 나오는 그 자리는 늘 공하다고 하는 것입니다.공한 까닭에 비로소 한 생각이 나오고,그 한 생각에 비롯하여 행주좌와(行住座臥)를 하며,행주좌와에 따라 몸의 모양이 다르며,몸의 모양이 다름에 따라 받는 과보가 다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색은 즉 공한 것이고 공은 즉 색인 것입니다.
색은 바로 한 생각을 말하고,공은 그 한 생각이 나오는 바로 그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같물질만을 들어 하는 말이 아닙니다.바로 내 한 생각을 들어 하는 말이기도합니다.
잘 살펴야할 것입니다. 이 한 생각을,, 그것은 필경 공이며,공한 것은 필경 한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