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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유마님,불교의 모든 가르침을 따라 가다 보면 결국 죽음이라는 최종적인 문제와 맞닥뜨리게 되는데,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죽음만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허무주의적이지 않을까요?

유마:그렇지 않습니다. 죽음을 회색으로 덧칠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생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생,노,병,사가 그것이지요.
아무도 이 카데고리에서 벗어나 인생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네 가지 카데고리인 생로병사는 각각 그 경계가 분명합니다만 그 경계점은 미세하여 잘 알아보지 못하고,현상은 거칠어 너무 민감하기 쉬운 까닭에 미세함과 거치름 사이에서 약간 겉돌고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마치 계절과 같습니다.봄,여름 ,가을 ,겨울이 각각 그 특징이 분명합니다만,겨울과 봄의 경계선은 이것은 겨울이고 이것은 봄이다 라고 아무도 딱 끄집어 낼지 못합니다.봄과 여름 여름과 가을도 마찬가지입니다.다만 한 겨울에 들어서야 비로소 아,겨울이다 하고 느끼고, 봄이 한창 되어서야 이것은 봄이다 하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그 사이사이 경계선은 너무나 미세하여 봄날인지 겨울날인지 잘 분간이 서질 않습니다.

생로병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각각이 서로 다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들의 연결선상은 언제나 미그적 미그적 하여 내가 태어나서 지금 늙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확 늙어지는 것도 아니요,내가 병이 들어 가는 것도 분명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확 병이 드는 것도 아니요,내가 죽어가는 것도 확실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확 죽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것들을 분명하게 감지해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이 중에서도 미세하고 거친 것이 있어서 생은 조금 거칠고 사는 몹시 거칠고 노는 미세하며 병은 조금 미세합니다.그래서 태어날 때의 고통이 만만치 않으므로 우는 것이고,죽을 때의 공포가 극심하여 다른 모든 분야를 압도하여 버립니다. 늙음은 아주 미세하여 내가 매일 거울을 보지만 알아차리기 힘들며, 병이 드는 것은 조금 후엔 다 알게 됩니다.

불교가 죽음이라는 제일 거친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다른 세 가지 것을 압도하게 때문입니다.이를테면 전쟁터에 나가면 먼저 적장을 베어 쓰러뜨리는 것이 관건인 것처럼 인생에서 죽음을 조복받아 놓으면 더 이상 겁 낼 것이 없기 때문에 항상 이 죽음을 모든 싸움의 최후 전장터로 삼는 것입니다.
그 나머지 생과 노와 병은 다 이 죽음을 이기기 위한 연습장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연습장을 갖다가 아주 살림집을 만들어 살기 때문에 나중에 죽음이 닥칠 때에는 그 살림집에 항구적으로 마련해 두고 즐기려했던 재산이 없어진다,섹스가 없어진다,명예가 없어진다 등등 발악을 하다가 그 발악하는 인연으로 덜컥 몸을 받으면 이른바 삼악도라 하는, 고(苦)는 예민하지만 도(道)는 무딘 곳에 태어나게 되면 그야말로 언제 빠져 나올지 알 수가 없는 삶을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客: 그렇다면 다른 종교,특히 기독교에서는 이 죽음을 이기는 것이 부활이라고 하여 종교의 중심테마로 삼고 있는데,무슨 흠이 있겠습니까?

유마: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죽은 다음의 일입니다.우리 불교에서 말하는 죽음은 죽는 그 한 순간의 일을 말합니다.죽고 나서의 일을 상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죽고 나서의 새로운 삶의 어떤 형태나 형질은 전적으로 죽을 때 그 한 순간의 그의 (性)질(質)에 달려있습니다.

항아리의 크기와 질은 진흙의 양과 성질에 의존하는 것처럼 이 성질이 질료(質料)가 되어 다음 삶을 결정하는 것은 매우 뻔한 일이기에 죽음이라는 그 거친 파도가 덮쳐 올 때 그의 한 생각 한 성품은 과연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음,또는 수행을 늘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때의 일을 염두에 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부활에 자기의 소망을 두는 것은 나무랄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먼저 나는 잘 죽을 수 있는가,즉, 부활에 합당한 질적인 죽음을 할 수 있는가,이것은 다시 죽는 그 한 순간에 마음이 미(迷)하여 캄캄한 미혹에 빠지지 않는가,이것은 다시 내가 평소에 마음이 迷하지는 않는가,이것은 다시 설혹 내가 평소 깨어 있을 때에는 迷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잠을 자거나,화를 내거나,섹스를 하거나,재물을 모을 때에는 迷하지 않는가 하는 것으로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일입니다. 굳이 하나님이나 부처님에게까지 가지고 가 보일 필요도 없습니다. 迷하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고 보면 불교가 죽음을 늘 면전에 두고 있는 것은 인생을 회의적이거나 염세적이거나 패배주의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바른 관찰(正見)의 관점에서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바로 미혹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천당 지옥,영생불사 부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그런 것에 미혹되어 있는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미 生과 老에는 충분히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病과 死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직도 그것을 살림집으로 만들고 있습니까?
당신의 선택입니다.
누구도 나무랄 일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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