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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마음

6. 열반경(涅槃經)의 이구(二句)

 

"[열반경] 금강신품(金剛身品)에 이르기를 '볼 수 없되 분명하고 밝게 볼 수 있어 아는 것도 없고 알지 못하는 것도 없다' 하니 무슨 뜻 입니까?"

" '볼수 없다'는 것은 자성의 본체가 모양이 없어서 얻을 수 없는 까닭에 볼 수 없다고 하느니라. 그러나 '얻을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은 자성의 본체가 공적하고 담연하여 가고 옴이 없으나 세간의 흐름을 여의지 않으니 세간의 흐름이 능히 흐르지도 아니하여 탄연히 자재[自在]함이 곧 '분명하고 밝게 보는 것' 이니라.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은 자성의 모양이 없어서 본래 분별(分別)이 없음을 이름하여 아는 것이 없다고 하느니라.
'알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은 분별이 없는 본체 가운데 항사묘용을 갖추어서 능히 일체를 분별하여 알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이를 이름하여 알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하느니라.
[반야(般若)의 게송]에 이르기를 '반야(般若)는 아는 것이 없으나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반야는 보지 못하나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고 하였느니라."

 


7.불견유무[不見有無]가 진해탈[眞解脫]

 

"경에서 이르기를 '있음(有)과 없음(無)을 보지 않는 것이 참다운 해탈이다'고 하시니 어떤 것이 있음과 없음을 보지 않는 것 입니까?"
"깨끗한 마음을 증득하였을 때를 곧 '있음'이라 하고, 그 가운데서 깨끗한 마음을 얻었다는 생각이 나지 않음이 곧 '있음'을 보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얻고서, 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짓지 않는 것이 곧 '없음'을 보지 못함이니, 그런 까닭에 `있음과 없음'을 보지 못한다고 하는 것 이니라.
[능엄경]에 이르기를 '지견(知見)에 앎(知)을 세우면 무명(無明)의 근본이 되고 지견에 보는 것이 없으면 이것이 곧 열반이며 또한 해탈이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8.무소견(無所見)

 

"어떤 것이 보는 바가 없는 것입니까?"
"만약 남자나 여자 및 일체 색상을 보되 그 가운데에 사랑함과 미워함[愛憎]을 일으키지 아니하여 보지 못함과 더불어 같은 것이 곧 보는 바가 없는 것이니라."

"일체 색상을 대할 때는 곧 본다고 하거니와 색상을 대하지 않을 때도 또한 본다고 할 수 있읍니까?"
"보느니라."
"물건을 대할 때는 설령 보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물건을 대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서 보는 것이 있읍니까?"
"지금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물건을 대하거나 물건을 대하지 않거나를 논(論)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다고 하는 그 성품은 영원한 까닭에 물건이 있을 때도 보고 물건이 없을 때도 또한 보는 것 이니라. 그런 까닭에 물건에는 본래 스스로 가고 옴(去來)이 있으나 본다는 성품에는 가고 옴이 없음을 알지니, 다른 모든 감각 기관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바로 물건을 볼 때에 보는 가운데 물건이 있읍니까?"
"보는 가운데 물건이 서지 못 하느니라."
"바로 물건이 없음을 볼 때 보는 가운데 물건이 없읍니까?"
"보는 가운데는 물건 없는 것도 서지 못하느니라."

"소리가 있을 때는 곧 들을 수 있거니와 소리가 없을 때에도 들을 수 있읍니까?"
"역시 듣느니라."
"소리가 있을 때엔 설령 들을 수 있다고 하지만 소리가 없을 때는 어떻게 듣습니까?"
"지금 '듣는다'고 하는 것은 소리가 있거나 없거나를 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듣는다'는 자성은 영원한 까닭에 소리가 있을 때도 듣고 소리가 없을 때도 또한 듣느니라."
"이렇게 듣는 자는 누구 입니까?"
"이는 자기의 성품이 듣는 것이며 또한 아는 이가 듣는다고 하느니라."

 


9.돈오문(頓悟門)의 종지(宗旨)와 체용(體用).

 

1. 종지와 체용

 

"이 돈오문은 무엇으로써 종취(宗趣)를 삼고 무엇으로써 참 뜻(旨)을 삼고 무엇으로써 본체로 삼으며 무엇으로써 작용(用)으로 삼는 것 입니까?"
"무념을 종취로 삼고 망심이 일어나지 않음을 참 뜻으로 삼으며 청정을 본체로 삼고 지혜로써 작용을 삼느니라."
"이미 무념으로 종취를 삼는다고 말씀할진댄 무념이란 어떤 생각이 없는 것 입니까?"
"무념이란 삿된 생각이 없음이요 바른 생각이 없다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 것이 삿된 생각이며 어떤 것이 바른 생각 입니까?"
"있음(有)을 생각하고 없음(無)을 생각하는 것이 삿된 생각이요 있음과 없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른 생각이니라. 괴로움[苦]과 즐거움[樂], 나는 것[生]과 없어짐[滅], 취함[取]과 버림[捨], 원망(怨)과 친함(親), 미워함(憎)과 사랑함(愛)을 생각하는 것이 모두 삿된 생각이요, 괴로움과 즐거움등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른생각이니라."
"어떤 것이 바른 생각 입니까?"
"바른 생각이란 오직 보리(菩提)만을 생각하는 것이니라."
"보리는 얻을 수 있습니까?"
"보리는 얻을 수 없느니라."
"이미 얻을 수 없을진댄 어떻게 오직 보리만 생각 합니까?"
"보리는 다만 거짓으로 이름을 세운 것이라 실지로 얻을 수 없으며 또한 과거에도 미래에도 얻을 수 없으니 얻을 수 없는 까닭에 곧 생각 있음이 없느니라.
오직 이 무념을 진실한 생각이라 하는 것이니 보리는 생각할 바가 없는 것이니라.
생각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 생각하는 바가 없음이니, 다만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무념이란 모두가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짓 이름을 세운 것인지라 모두가 하나의 본체로서 같음이요 둘도 없고 다름도 없는 것이니라.
다만 일체처에 무심함을 알면 곧 이것이 무념이니 무념을 얻을 때에 자연해탈이니라."

"어떻게 하여야 부처님의 행을 하는 것입니까?"
"일체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부처님 행동이라 하며 또 바른 행동이라 하며 또 성스러운 행동이라 함이니,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있음과 없음 미워함과 사랑함등을 행하지 않는 것이니라.
[대율]5권 보살품에서 이르기를 '일체 성인들은 중생의 행동을 행하지 않고 중생들 은 이와같은 성인의 행동을 행하지 않는다'고 하였느니라."

"어떤 것이 바로 보는 것입니까?"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을 곧 바로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이라 합니까?"
"일체 색을 볼 때에 물들거나 집착함을 일으키지 아니함이니, 물들거나 집착하지 아니한다 함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므로 곧 보는 바 없음을 본다고 하는 것이니라.
만약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을 얻었을 때 곧 부처님의 눈이라 하나니 다시 별다른 눈이란 없느니라.
만약 일체 색을 볼 때에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면 보는 바가 있다고 하는 것이니 보는 바가 있음이 곧 중생의 눈이니라. 다시 별다른 눈을 가지고 중생의 눈이라 할 것이 없으니, 내지 다른 오근(五根)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2. 이성공(二性空)

 

"이미 지혜로써 작용을 삼는다고 말씀 하셨는데 어떤 것이 지혜입니까?
"두 가지 성품이 공(空)한 줄 아는 것이 곧 해탈이며 두가지 성품이 공하지 않은 줄 알면 해탈을 얻지 못하나니 이것을 지혜라 하며 또 삿됨과 바름을 요달하였다고 하며 또 본체와 작용을 안다고 하느니라.
두 가지 성품이 공했다고 하는 것은 있음과 없음, 선과 악, 사랑함과 미워함이 나지 아니한 것을 이름하여 두 가지 성품이 공하다고 하느니라."

 


10.돈오(頓悟)는 단바라밀(檀波蘿蜜)로 부터

 

"이 돈오의 문은 어디로부터 들어갑니까?"
"단바라밀(檀波羅蜜)로부터 들어가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육바라밀이 보살의 행(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까닭으로 단바라밀 하나만을 말씀하시며 어떻게 구족하여야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미혹한 사람은 다섯바라밀이 모두 단바라밀로 말미암아 나는 것인줄 알지 못한 것이니 오직 단바라밀만을 수행하면 곧 육바라밀을 모두 구족하는 것이니라."

"어떤 인연으로 단바라밀이라고 합니까?"
"단(檀)이란 보시(布施)를 말하느니라."
"어떤 물건을 보시하는 것입니까?"
"두 가지 성품을 보시해 버리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두가지 성품입니까?"
"선과 악의 성품을 보시해 버리는 것이며, 있음과 없음의 성품, 사랑함과 미워함의 성품,공과 공 아님의 성품,정과 정 아님의 성품과 깨끗함과 깨끗하지 아니함의 성품을 보시해 버려서 일체 모든 것을 전부 보시해 버리면 두가지 성품이 공함을 얻느니라.
만약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을 얻을 때에 또한 두 가지 성품이 공하다는 생각을 짓지 아니하며 또 보시한다는 생각을 짓지 아니함이 곧 진실로 보시바라밀을 실행하는 것이니 만 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진다고 하느니라. 만 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진다 함은 곧 일체 법의 성품이 공한 것이니, 법의 성품이 공하다 함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니라.
만약 일체처에 무심함을 얻었을 때에는 한 모양(一相)도 얻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자성이 공한 까닭에 한 모양도 얻을 수 없느니라.
한 모양도 얻을 수 없다 함은 곧 실상이니 실상이란 여래의 묘한 색신의 모양이니라.
[금강경]에 이르기를 '일체의 모든 모양을 여의는 것이 곧 모든 부처님이라 한다' 고 하였느니라."

"부처님은 육바라밀을 말씀하셨는데 지금 어떻게 하나를 말하며 능히 구족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바라건대 하나가 여섯 가지 법을 구족하는 까닭을 말씀해 주십시요."
[사익경]에 이르기를 '망명존이 범천에게 말하되
[만약 보살이 일체의 번뇌를 버리면 단바라밀이라고 하나니 곧 보시요, 모든 법에 대해서 일어나는 바가 없음이 시라바라밀이라고 하나니 곧 지계요, 모든 법에 대하여 손상하는 바가 없음이 찬제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인욕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모양을 떠남이 비리야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정진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머무는 바가 없음이 선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선정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희론이 없음이 반야바라밀이라 하니니 곧 지혜이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여섯 가지 법이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지금 다시 여섯가지 법에 이름을 붙이면 첫째는 버림과 둘째는 일어나지 아니함과 세째는 손상하지 않음과 네째는 모양을 떠남과 다섯째는 머물지 않음과 여섯째는 희론이 없음과 다르지 않느니라. 이와 같은 여섯가지 법은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짓 이름을 세움이요, 묘한 이치에 이르러서는 둘도 없고 다름도 없느니라.
다만 하나를 버릴줄 알면 일체를 버림이요, 하나가 일어나지 않으면 곧 일체가 일어나지 않거늘 미혹한 사람은 알지 못하고 차이가 있다고 모두 말 하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여섯가지 법의 숫자에 머물러서 오래도록 생사에 윤회하는 것이니라.
너희들 도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말하나니, 다만 보시의 법만을 닦으면 만법이 두루 원만해지거늘 하물며 다섯가지 법이 어찌 구족하지 않겠는가."
 

출처 : 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