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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마음

돈오입도요문론 [頓悟入道要門論] 

 

 

41. 무념(無念)과 돈오(頓悟)

 

1. 무념(無念)
"위에서 무념을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다 이해할 수 없읍니다."
"무념이란 일체처에 무심함이니 일체 경계가 없어서 나머지 생각으로 구함이 없음이며, 모든 경계와 사물에 대하여 영영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것이 곧 무념이니라. 
무념이란 참된 생각[眞念]을 이름함이니 만약 생각으로 생각을 삼는다면 곧 삿된 생각[邪念]이요 바른 생각[正念]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경에 이르기를 '만약 사람에게 육념(六念)을 가르치면 생각이 아님[非念]이다'고 하나니, 육념이 있으면 삿된 생각[邪念]이요 육념이 없으면 곧 참된 생각[眞念]이라 하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선남자야, 우리가 무념법(無念法) 가운데 머물러서 이와 같은 금색의 삼십이상을 얻어 큰 광명을 놓아서 세계를 남김없이 비추나니, 이 불가사의한 공덕은 부처님이 설명하여도 오히려 다할 수 없는데 하물며 나머지 승(乘)들이 능히 알 수 있으리오' 하였느니라. 무념을 얻은 사람은 육근(六根)이 물들지 아니하는 까닭으로 자연히 모든 부처님 지견에 들어가나니, 이러한  법을 얻은 사람은 부처님 곳집이며 또 법의 곳집이라 하나니, 곧 능히 일체가 부처이며 일체가 법이니라. 왜냐하면 무념인 까닭이니, 경에 이르기를 '일체 모든 부처님들이 모두 이 경으로부터 나오신다'고 하였느니라."

"이미 무념이라고 하면서 부처님 지견에 들어간다고 하니 다시 무엇을 좇아서 세웁니까?"
"무념을 좇아서 세우니 무슨 까닭인가? 경에 이르기를 '머뭄이 없는 근본을 좇아서 일체법을 세운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비유컨대 밝은 거울과 같다'고 하였으니 거울 가운데 비록 모양이 없으나 능히 만 가지 모양이 나타남이니, 왜냐하면 거울이 밝은 까닭에 능히 만 가지 모양이 나타나느니라. 배우는 사람의 마음이 물들지 아니하는 까닭에 망념이 나지 아니하고 아인심(我人心)이 없어져서 필경 청정하니 청정한 까닭으로 능히 한량없는 지견이 나느니라. 돈오란 금생을 떠나지 않고 곧 해탈을 얻나니 무엇으로써 그것을 아는가? 비유컨대 사자새끼가 처음 태어날 때도 사자인 것과 같으니 돈오를 닦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돈오를 닦을 때에 곧 부처님 지위에 들어가느니라. 마치 대나무가 봄에 순이 나서 그 봄을 여의지 않고 곧 어미 대나무와 같게 되어 함께 다름이 없는 것과 같음이니, 왜냐하면 마음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2. 돈오(頓悟)
"돈오를 닦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순식간에 망념을 없애버리고 영원히 아인심(我人心)을 끊어서 필경 공적하여 곧 부처님과 같게 되어 다름이 없는 까닭에 범부가 성인이라고 하느니라. 돈오를 닦는 사람은 이 몸을 떠나지 아니하고 곧 삼계를 뛰어나나니, 경에 이르기를 '세간을 무너뜨리지 아니하고 세간을 뛰어나며 번뇌를 버리지 아니하고 열반에 들어간다'고 하였느니라.
돈오를 닦지 않는 사람은 마치 여우가 사자를 따라 좇아 다녀서 백천겁을 지나더라도 마침내 사자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느니라."

 

3. 진여(眞如)와 무심(無心)
"진여의 성품은 실로 공한 것입니까, 실로 공하지 않는 것입니까? 만약 공하지 않다고 말하면 곧 모양이 있는 것이요 만약 공하다고 말하면 곧 단멸이니, 일체 중생이 마땅히 무엇을 의지해서 닦아야 해탈을 얻을 수 있읍니까?"

"진여의 성품은 공하면서 또한 공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진여의 묘한 본체는 형상이 없어서 얻을 수 없으므로 또한 공하다고 하느니라. 그러나 공하여 모양이 없는 본체 가운데에 항사묘용이 구족하여 곧 사물에 응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또한 공하지 않다고 하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하나를 알면 천가지가 따라오고 하나를 미혹하면 만가지를 미혹한다'하니, 만약 사람이 하나를 지키면 만가지 일을 마치는 것이니 이것이 오도(悟道)의 묘함이니라. 경에 이르기를 '삼라만상이 한 법의 도장 찍힌 바라' 하니 어떻게 해서 한 법 가운데에서 갖가지 견해가 나오는 것인가?

이러한 공업(功業)은 행함으로 말미암아 근본이 되니 만약 마음을 항복받지 아니하고 문자를 의지해서 증득하려 하면 옳지 못함이라.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여서 피차가 함께 떨어질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하여 자세히 살필지니라.

다만 일이 닥쳐옴에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일체처에 무심함이니, 이렇게 얻은 사람은 곧 열반에 들어 무생법인을 증득 하느니라. 이것을 불이법문이라 하며 또 다툼이 없다고 하며 일행삼매라고 하나니, 왜냐하면 필경 청정하여 아상과 인상이 없는 까닭이니라. 애증을 일으키지 않음이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며 보는 바가 없음이니, 곧 이것이 진여의 얻음이 없는 변론이니라."

 


42. 중생자도(衆生自度)

 

"이 논은 믿음이 없는 이에게는 전하지 말며 오직 견해가 같고 행함이 같은 이에게 전할 것이요, 마땅히 앞 사람이 참으로 신심이 있어 감당하여 물러가지 않는 사람인가를 관찰할 것이니, 이러한 사람을 위해 설명하고 보이어서 깨닫도록 해야 하느니라. 내가 이 논을 지은 것은 인연 있는 사람을 위함이요 명리를 구하고자 함이 아니니라. 다만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 천가지 경 만가지 논은 중생이 미혹하기 때문에 마음과 행동이 한결같지 아니하여 삿됨을 따라 대응하여 설명한 것이므로 곧 여러 차별이 있으나, 구경해탈의 이치를 논하는 경우 일진댄 다만 일이 다가와도 받지 아니하고 일체처에 무심하여 영영 고요함이 마치 허공과 같아서 필경에 청정하여 자연해탈이니라. 너희들은 헛된 이름을 구하여 입으로는 진여를 말하되 마음은 원숭이와 같아서는 안되느니라. 곧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서 스스로 속임이라 하나니, 마땅히 악도에 떨어지느니라. 한 세상의 헛된 이름과 쾌락을 구하지 말라. 모르는 사이에 억겁의 재앙을 받게 되는 것이니 힘쓰고 힘쓸지니라. 중생이 스스로 제도함이요 부처님이 능히 제도하지 못하나니, 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때엔 과거 모든 부처님이 티끌 수와 같아서 일체 중생을 모두 제도하여 마쳤을 것이어늘, 무엇 때문에 우리들은 지금까지 생사에 유랑하며 성불하지 못하였는가? 중생이 스스로 제도함이요 부처님이 능히 제도하지 못함을 마땅히 알라. 노력하고 노력하여 스스로 닦아서 다른 부처님의 힘을 의지하지 말지니, 경에 이르기를 '무릇 법을 구하는 자는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말라'고 하였느니라."

 


43. 동처부동주(同處不同住)

 

"내세에 있어서는 잡된 배움의 무리가 많을 것인데 어떻게 함께 살겠읍니까?"
"다만 그 빛을 온화하게 할 뿐이요, 그 업은 같이하지 말지니 장소는 같이하나 같이 살지는 아니 하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흐름을 따르나 성품은 항상하다'고 하였느니라. 다만 도를 배우는 사람은 스스로 일대사인연인 해탈의 일을 위할지니, 아울러 처음 배우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부처님 같이 공경하고 배우며, 자기의 덕을 높이고 남의 능력을 질투하지 말며, 자기의 행동을 살피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춰내지 아니하면, 일체처에 있어서 방해되고 장애됨이 전혀 없어 자연히 쾌락한 것이니라.
거듭 게송을 설하여 말하리라.

    인욕이 첫째 가는 도라        忍辱이 第一道라
    먼저 아인심을 없앨지니        先須除我人이니
    일이 옴에 받는 바 없으면    事來에 無所受하야
    참다운 보리의 몸이니라.        卽眞菩提身이로다.

 


44. 일체처(一切處)에 무심(無心)

 

"[금강경]에 이르기를 '보살이 아법(我法)이 없는 사람은 여래가 참다운 보살이라'고 말씀하시며, 또 '취하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아니하여 영원히 생사를 끊어서 일체처에 무심하면 곧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다'고 하였느니라. [열반경]에 이르기를 '여래가 열반을 증득하여 영원히 생사를 끊었다'고 하였느니라.
게송으로 말하노라.

    나는 지금 뜻이 매우 좋아서
    남이 욕할 때도 괴로움이 없고
    말없이 시비를 말하지 않나니
    열반과 생사가 같은 길이로다.
    내 집의 근본 종지를 사무쳐 알아
    본래로 푸르고 검은 분별이 없나니
    일체 망상의 분별은
    세상 사람이 밝게 알지 못함임을 알지니라.
     말세의 범부에게 이르노니
    마음 가운데 우거진 풀을 없애 버려라.
    내 지금 뜻이 크게 넓어서
    말하지 않고 일 없어 마음이 편안하나니
    종용하여 자재해탈이라
    동서 어디를 가나 쉬워 어렵지 않도다.
    종일토록 말 없이 적막하여
    생각 생각에 이치를 향해 생각하노니
    자연히 소요하여 도를 보아
    생사와 결정코 상관치 않는도다.
    내 지금 뜻이 몹시 기특하여
    세상의 침해와 속임에 향하지 않음이라
    영화는 모두 헛된 속임수이니
    헤진 옷 거친 음식으로 굶주림을 채우는도다.
    길에서 세상 사람을 만나 말하기를 게을리하니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를 바보라 하네.
    겉으로는 질린 듯 암둔해 보이나
    마음 가운데는 밝기가 유리같아서
    라후라의 밀행에 묵묵히 계합하나니
    너희 범부들이 알 바 아니로다.

내 너희들이 참 해탈의 이치를 알지 못할까 두려워서 거듭 너희들에게 말해 보이노라.

 


45. 필경정(畢竟淨)

 

"[유마경]에 이르기를 '정토를 얻고져 할진댄 마땅히 그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하시니 무엇이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입니까?"
"필경 청정으로 깨끗함(淨)을 삼느니라."
"어떤 것이 필경 청정으로 깨끗함을 삼는 것입니까?"
"깨끗함도 없고 깨끗함이 없음도 없음이 곧 필경 깨끗함이니라."
"어떤 것이 깨끗함도 없고 깨끗함이 없음도 없는 것입니까?"
"일체처에 무심함이 깨끗함이니 깨끗함을 얻었을 때에 깨끗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음이 곧 깨끗함이 없음이며, 깨끗함이 없음을 얻었을 때에 또한 깨끗함이 없다는 생각도 하지 않음이 곧 깨끗함이 없음도 없는 것이니라."
 

출처 : 디지털 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