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보안(普眼)보살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고 나서 무릎을 세워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이 모임에 온 보살들과 말법 세계의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보살이 수행하는 순서와 단계[漸次]를 말씀하여 주옵소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머무르며, 중생들이 깨닫지 못하면 어떤 방편을 써야 두루 깨닫게 하겠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저 중생들이 바른 방편과 바른 생각이 없다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런 삼매를 들을 때에 마음이 헛갈리고 답답하여 원각(圓覺)에 대하여 깨달아 들어갈 수 없을 것이옵니다. 바라옵건대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들과 말법 세계 중생들을 위하여 방편을 한번 말씀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말하고 오체투지하며, 이와 같이 세 번 청하여 거듭거듭 되풀이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보안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선남자야. 그대들은 모든 보살들과 말법 세계 중생들을 위하여 여래에게 수행하는 점차(漸次)와 생각하는 법과 마음 머무는 법을 묻고 또 갖가지 방편을 말해 달라고 하는구나. 너희들은 지금 자세히 들으라. 이제 그대들을 위해 말해 주리라.”
그때에 보안보살은 분부를 받들고 기뻐하면서 대중들과 함께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선남자야, 저 새로 배우는 보살과 말법 세계의 중생들이 여래의 청정한 원각의 마음을 구하려 하면, 바른 생각으로 모든 환(幻)을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먼저 여래의 사마타(奢摩他)5) 수행을 의지하고 계율을 굳게 지니며, 대중들과 편안하게 지내고 조용한 방에 단정하게 앉아서 항상 이렇게 생각하라.
5) 비바사나 수행법 이전부터 있었던 인도의 정신집중 수행법. 사마타(奢摩他)는 의역하여 지(止)ㆍ지식(止息)ㆍ적정(寂靜)ㆍ능멸(能滅)이라 번역한다. 산란한 마음을 멈추고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하는 수행법이다. 그래서 비바사나가 관(觀) 수행법(修行法)이라면 사마타는 지(止)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합쳐 지관(止觀)이라 하며 불교 천태종(天台宗)의 근본교리이기도 하다. 사마타와 비바사나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선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사마타에 의해 자아몰입에 들어간 후 지혜를 끌어내어 대상을 보는 비바사나 수행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집중과 관찰은 불도수행에 있어서 동전의 양면과 같다. 여기서 사마타는 정(定)에 해당되고, 비바사나는 혜(慧)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지관불이(止觀不二)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 나의 이 몸뚱이는 4대(大)가 화합하여 된 것이니, 이른바 터럭․치아․손톱․발톱․살가죽․근육․뼈․골수․더러운 몸뚱이들은 다 흙으로 돌아갈 것이요, 침․콧물․고름․피․진액․거품․가래․눈물․정기와 대소변은 다 물로 돌아갈 것이며, 따스한 기운은 불로 돌아갈 것이요, 움직이는 작용은 바람으로 돌아갈 것이다. 4대가 제각기 흩어지면 이제 이 허망한 몸뚱이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곧 이 몸은 끝내 실체가 없는데 화합하여 형상이 이루어진 것이 실은 허깨비와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네 가지 인연이 임시로 화합해서 허망하게도 6근(根)이 있게 된 것이니라. 6근과 4대가 합하여 안팎을 이루었는데, 허망하게도 인연으로 이루어진 기운[緣氣]이 그 안에 쌓이고 모여 인연의 모습이 있는 것처럼 되었으니, 이것을 임의로 이름을 붙여 마음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 허망한 마음이란 것은 만일 6진(塵)이 없었더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며, 4대가 나뉘어 흩어지고 나면 6진도 존재할 수 없느니라. 이 가운데 인연과 6진이 제각기 흩어져 없어지면 마침내 반연하는 마음도 볼 수 없으리라.
선남자야, 저 중생들의 환(幻)인 몸뚱이가 멸하기 때문에 환인 마음도 멸하고, 환인 마음이 멸하기 때문에 환인 경계[塵]도 멸하며, 환인 경계가 멸하기 때문에 환의 멸함도 멸하고, 환의 멸함이 멸하기 때문에 환 아닌 것은 멸하지 않느니라. 그것은 비유하면 마치 거울과 같아서 때가 없어지면 광명이 나타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몸과 마음이 다 환의 때[幻垢]이니, 때의 모습이 영원히 사라지면 시방세계가 청정해진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비유하면 만약 깨끗한 마니(摩尼) 보배 구슬에 오색(五色)을 비추면 방향에 따라 각각의 빛깔이 달리 나타나게 되는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보배 구슬을 보고 실제로 오색이 있는 줄로 아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원각(圓覺)의 청정한 성품이 몸과 마음을 나타내어 종류를 따라 제각기 호응하면, 저 미련한 사람들은 청정한 원각에 실제로 그와 같은 몸과 마음의 제 모습이 있다고 여기는 것과 같으니라. 이런 까닭에 환화(幻化)를 멀리 여의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생겨나는 몸과 마음이 모두 환의 때라고 말하며, 환의 때를 여읜 이를 보살이라 이름하거니와, 때가 다하고 상대할[對] 것도 없어지면, 상대와 때도 없고 상대니 때니 하는 이름도 없어지느니라.
선남자야, 이 보살과 말법 세계의 중생들이 모든 환을 증득하여 영상(影像)을 멸하면, 그때에 곧 끝없는 청정함을 얻으리니, 가없는 허공은 원각에서 나타난 것이니라. 깨달음이 뚜렷하고 밝은 까닭에 마음의 청정함이 나타나고, 마음이 청정한 까닭에 보이는 경계가 청정하고, 보이는 경계가 청정한 까닭에 눈이 청정하고, 눈이 청정한 까닭에 보는 의식이 청정하고, 보는 의식이 청정한 까닭에 들리는 경계가 청정하고, 들리는 경계가 청정한 까닭에 귀가 청정하고, 귀가 청정한 까닭에 듣는 의식이 청정하고, 듣는 의식이 청정한 까닭에 감각하는 경계[覺塵]가 청정하나니, 그리하여 코[鼻]ㆍ혀[舌]․몸[身]․뜻[意]까지도 다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눈이 청정한 까닭에 빛이 청정하고, 빛이 청정한 까닭에 소리가 청정하니, 냄새와 맛과 촉감과 법[香味觸法]의 경계까지도 다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6진(塵)이 청정한 까닭에 지대(地大)가 청정하고, 지대가 청정한 까닭에 수대(水大)가 청정하니, 화대(火大)․풍대(風大)까지도 다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4대(大)가 청정한 까닭에 12처(處)와 18계(界)와 25유(有)6)까지도 다 청정하느니라. 이들이 청정하기 때문에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4무애지(無碍智)7)와 불십팔불공법(佛十八不共法)8)과 37조도품(助道品)9)이 청정하나니, 이와 같이 8만 4천 다라니문까지도 모두 청정하니라.
선남자야, 일체 실상(實相)의 성품이 청정하기 때문에 한 몸이 청정하고, 한 몸이 청정하기 때문에 여러 몸이 청정하며, 여러 몸이 청정하기 때문에 시방 중생의 원각까지도 다 청정하니라.
6) 유(有)는 존재(存在)란 뜻. 중생이 나서 변경하고, 죽어 변경하는 미(迷)의 존재를 25종으로 나눈 것. ①4악취(惡趣:지옥ㆍ아귀ㆍ축생ㆍ아수라). ②4주(州:동불바제ㆍ남염부주ㆍ서구야니ㆍ복울단월). ③6욕천(欲天:사왕천ㆍ도리천ㆍ야마천ㆍ도솔천ㆍ화락천ㆍ타화자재천). ④색계(色界:초선천ㆍ범왕천ㆍ제2선천ㆍ제3선천ㆍ제4선천ㆍ무상천ㆍ5나함천). ⑤무색계(無色界:공무변처천ㆍ식무변처천ㆍ무소유처천ㆍ비상비비상처천). 이를 줄여서 3계(界)와 6도(道)라 한다.
7) 4무애변(無礙辯), 4무애해(無礙解)라고도 함. 마음의 방면으로는 지(智) 또는 해(解)라 하고, 입의 방면으로는 변(辯)이라 함. ①법무애(法無礙)는 온갖 교법에 통달한 것. ②의무애(義無礙)는 온갖 교법의 요의(要義)를 아는 것. ③사무애(辭無礙)는 여러 가지 말을 알아 통달치 못함이 없는 것. ④요설무애(樂說無礙)는 온갖 교법을 알아기류(機類)가 듣기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데 자재한 것 등을 말한다.
8) 18불공불법(不共佛法)이라고도 한다. 부처님께만 있는 공덕으로서 2승이나 보살들에게는 공동(共同)하지 않는 열여덟 가지. 신무실(身無失)ㆍ구무실(口無失)ㆍ의무실(意無失)ㆍ무이상(無異想)ㆍ무부정심(無不定心)ㆍ무부지이사(無不知已捨)ㆍ욕무감(欲無減)ㆍ정진무감(精進無減)ㆍ염무감(念無減)ㆍ혜무감(慧無減)ㆍ해탈무감(解脫無減)ㆍ해탈지견무감(解脫知見無減)ㆍ일체신업수지혜행(一切身業隨智慧行)ㆍ일체구업수지혜행(一切口業隨智慧行)ㆍ일체의업수지혜행(一切意業隨智慧行)ㆍ지혜지견과거세무애무장(智慧知見過去世無礙無障)ㆍ지혜지견미래세무애무장(智慧知見未來世無礙無障)ㆍ지혜지견현재세무애무장(智慧知見現在世無礙無障)을 말한다.
9) 37도품(道品)이라 하기도 한다. 열반의 이상경(理想境)에 나아가기 위하여 닦는 도행(道行)의 종류.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분(覺分)ㆍ8정도분(正道分)을 말한다.
선남자야, 한 세계가 청정하기 때문에 여러 세계가 청정하고, 여러 세계가 청정하기 때문에 마침내는 허공을 다하고, 3세(世:과거ㆍ현재ㆍ미래)를 두루 감싸기까지 모든 것이 평등하고 청정하여 동요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허공이 이와 같이 평등하여 동요하지 않기 때문에 본각의 성품도 평등하여 동요하지 않는 것임을 알며, 4대가 동요하지 않기 때문에 본각의 성품도 평등하여 동요하지 않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하여 8만 4천 다라니문까지도 평등하여 동요하지 않으므로 본각의 성품도 평등하여 동요하지 않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본각(本覺)의 성품이 원만하고 청정하며, 동요하지 않아, 원만함이 끝이 없으므로 6근(根)이 법계(法界)에 가득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6근이 두루 차므로 6진이 법계에 두루 참을 알아야 하고, 6진이 두루 차므로 4대가 법계에 두루 차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하여 다라니문까지도 법계에 두루 찬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저 묘한 본각의 성품이 두루 찬 까닭에 감관[根]의 성품과 경계[塵]의 성품이 무너짐도 없고 뒤섞임도 없으며, 감관과 경계가 무너짐이 없는 까닭에 다라니문까지도 무너짐도 뒤섞임도 없나니, 마치 백천 개의 등불을 한 방에 켜면 그 불빛이 두루 가득하여 비추지 않는 곳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깨달음을 성취한 까닭에 보살은 법에 얽매이지 않고, 법에서 벗어나기를 구하지도 않으며, 나고 죽음을 싫어하지도 않고, 열반을 좋아하지도 않으며, 계행 지키는 이를 공경하지도 않고, 계를 깨뜨린 이를 미워하지도 않으며, 오래 수행한 이를 소중히 여기지도 않고, 처음 공부를 시작한 이를 깔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온갖 것이 본각이기 때문이니라. 비유하면 눈을 뜨고 눈앞의 경계를 볼 때에 그 빛이 두루 차서 미워할 것도 좋아할 것도 없이 모두 보이는 것과 같으니, 광명의 본체는 둘이 아니어서 미워할 것도 좋아할 것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이 보살과 말법 세계의 중생들이 이 마음을 닦아 익혀 성취하면 거기에는 닦을 것도 없고 성취할 것도 없느니라. 원각이 두루 비추어 적멸(寂滅)이 둘이 없으니, 거기에는 백천만억 아승기 말할 수 없는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모든 부처님 세계가 마치 허공 꽃이 어지럽게 일어났다가 어지러이 사라지는 것과 같아서 가까이 하지도[卽] 않고 여의지도[離] 않으며, 얽매일 것도 없고 벗어날 것도 없으니, 중생이 본래 부처이고 생사와 열반이 지난 밤 꿈과 같은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되느니라.
선남자야, 지난밤의 꿈과 같으므로 생사와 열반이 일어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으며,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느니라. 증득한 것을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으며,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느니라. 또 증득하는 이에게도 지을 것[作]도 없고 그칠 것[止]도 없으며, 맡길 것[任]도 없고 멸할 것[滅]도 없느니라. 이와 같은 증득에는 주체[能]도 없고 대상[所]도 없어서 끝내 증득할 것도 없고 증득한 이도 없어서 일체 법의 성품이 평등하여 무너지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느니라.
선남자야, 저 보살들은 이와 같이 수행할 것이요, 이와 같이 점진(漸進)할 것이며, 이와 같이 생각할 것이요, 이와 같이 머물러 있을 것이며, 이와 같이 방편을 쓰고 이와 같이 깨달아야 하나니, 이와 같은 법을 구하면 헛갈리거나 답답하지 않으리라.”
그때에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기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안(普眼)이여, 그대 마땅히 알라.
일체 중생들의
몸과 마음은 모두 환(幻)과 같아서
몸은 4대(大)에 속하고
마음은 6진(塵)에 돌아가니
4대의 본체가 제각기 흩어지면
어느 것을 화합했다 하겠는가.
이와 같이 차례로 닦아 나가면
온갖 것이 모조리 청정해져서
동요치 않고 온 법계에 두루하리니
짓고 멈추고 맡기고 멸할 것도 없고
증득할 이도 없을 것이니라.
일체의 부처님 세상도
마치 허공 꽃과 같아서
3세(世)가 모두 평등하여
끝내 오고 감이 없느니라.
처음으로 발심한 보살들과
말법 세계의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 도에 들고자 하면
이와 같이 닦고 익혀야 할 것이니라.
출처 : 동국대학교 한글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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